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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험 보장성 논쟁:
운동 내 다수가 노동자 보험료 선제 인상을 반대한다

지난 4월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대표 등을 중심으로 한 진보진영 내 일부 인사들이 우리가 먼저 보험료를 올려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하자는 공식 제안을 한 뒤 이를 두고 찬반 논쟁이 벌어졌다. 7월에는 이런 제안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규합해 ‘모든 병원비를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이하 시민회의)를 발족하기도 했다.

이전 같으면 황당한 주장쯤으로 여겨질 수도 있었던 이 제안이 힘을 얻게 된 것은 진보신당이나 참여연대처럼 진보진영 내 영향력 있는 단체에서 활동하는 인물들이 시민회의 준비위원에 다수 참가했기 때문이다.

116주년 메이데이 집회에 참가한 보건의료노동자들 무상의료를 요구해야 한다.

특히 보건의료노조와 사회보험노조 위원장의 참여는 충격이었다. 두 노조가 기존에 활동하던 ‘의료민영화 저지 및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위한 범국민운동본부’(이하 범국본)에서 상당히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민회의의 주장은 곧 날카로운 비판과 반박에 부딪혔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이 지적한 것처럼 “왜 월급쟁이만 1년에 30만 원씩 더 내야 하는가?”

범국본에 참여하고 있는 단체들 중 시민회의 주장에 반대하는 단체들은 보험료 인상이 아니라 국고 지원을 늘리고 대기업에 세금을 부과해 건강보험 재정을 늘리는 정책 대안을 새로 마련했다.

경제 위기 시기에 이런 급진적 대안이 실현되려면 정부와 기업주들을 양보하게 만들 강력한 대중운동이 벌어져야 할 것이다.

물론 범국본에 속한 단체들이 모두 이런 급진적 전망을 갖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럼에도 많은 단체들이 시민회의 안에 반대하는 가장 큰 두 가지 이유는 첫째, 건강보험 재정 확대를 보험료 인상만으로 다 해결하려 하고 따라서 그 논리적 결론이 ‘선제적 보험료 인상안’이 된다는 사실 때문이다.

정부가 그동안 해 온 것처럼 보험료만 올리고 보장성은 늘리지 않으면 어떻게 하냐는 비판자들의 문제 제기에 시민회의 측은 이렇다 할 답변을 하지 않았다.

둘째, 보험료 인상을 운동의 슬로건으로 제시하자고 요구하고는 이에 반대한 다수 단체들을 비난하며 분열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일단락

몇 달 동안 논쟁에 직접 뛰어들지 않고 있던 주요 단체들이 태도를 정하면서 논쟁이 일단락되고 있다.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지난 9월 4일 중앙위원회에 제출한 자료에서 “‘선 건강보험료 인상’, ‘건강보험료 인상 원포인트 방식의 재원 마련’에 대해서는 여러 우려를 감안하여 재원 마련 방안을 다각화하고 … 국고지원의 확대, 사용자 부담 비율 상향 조정, 건강보험료 소득비례누진 적용 등을 추진하며, 총액예산제로 건강보험료 낭비 구조를 개선하도록 함”이라고 명시했다.

사회보험노조와 보건의료노조 내부에서도 시민회의 입장에 대한 조합원들의 반대가 상당한 듯하다. 참여연대도 시민회의의 선제적 보험료 인상안을 지지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시민회의 내부에서도 ‘1만 1천 원’이라는 표현을 계속 쓸 것인가를 두고 이견이 생겼다고 한다.

지방선거 당시 정책 공약에 시민회의 안을 그대로 담았던 진보신당도 지난 8월 31일 발표한 건강보험 대개혁 방안에서는 다소 달라졌다.

진보신당은 재정 확충 방안으로 “적정부담”, “고소득층 추가 부담”, “국고 지원율 및 사업주 부담률 증대”를 제시했다.

시민회의 출범 자료집에서는 한마디도 찾아볼 수 없는 문제의식 즉, 기업주와 노동자 사이의 보험료 부담 형평성 문제가 여러 차례 거론됐다.

물론 진보신당의 대안이 시민회의의 안을 일관되게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재정 확충 방안 제목에 있는 ‘1만 1천 원의 기적+@’이라는 표현이 그것이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시민회의의 주장은 곳곳에서 비판과 반발에 부딪히며 입지가 좁아지는 듯하다.

노동자들이 보험료를 더 내야 하는지, 그렇다면 얼마나 더 내야 하는지는 앞으로도 계속 논쟁의 대상이 될 것이다.

이제 대부분의 단체가 선제적 보험료 인상안을 지지하지 않기로 결정한 만큼, 건강보험 개혁 운동에 동참하고 있는 모든 단체들이 ‘본인부담 1백만 원 상한제’ 요구를 중심으로 단결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