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권의 ‘8·15 사면’ 발표를 보면서 침통함을 지울 수 없었다. “광복 65주년을 경축하고, G20 정상회의를 앞둔 시점에서 화해와 포용으로 국력을 한데 모아 ‘더 큰 대한민국’으로 나아가는 전기를 마련”하겠다며 풀어 준 사람들은 대부분 비리를 저지른 재벌 총수, 여·야 정치인, 고위 관료 등 우리 사회의 특권층들이었다.

남은 임기 동안 정국 주도권을 잡고 정권 재창출을 노리며 돈줄인 재벌들에게 잘 보이고, 야당들을 구워 삶으려는 정치적 포석만 있었을 뿐 사법 정의를 바로 세우거나 해묵은 사회 갈등을 해결하려는 의지는 찾아볼 수 없었다.

선물 보따리를 기대 이상 받아든 제1야당은 그것이 ‘권력의 사유화’가 이루어낸 장물이란 사실을 알면서도 ‘이게 왠 떡이냐?’ 하며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표정관리 하기에 바빴다.

이렇게 특권층을 위한 정치적 흥정물로 타락해 버린 대통령의 사면권이 한 번쯤은 제대로 행사될 거라 기대하며 ‘주권자의 목소리’를 들으라고 외쳤던 사람들은 바보였다. 아니 저들이 주권자들을 철저히 농락하면서 바보로 만들어 버렸다.

8월 3일 우리는 청와대 앞으로 향했다. 정부가 인정하건 말건 이 나라에는 부당하게 옥고를 치루고 있는 양심수가 9백34명(7월 말)이나 된다는 사실을 알리려고.

생존의 벼랑 끝에서 살아남으려고 망루에 올랐던 철거민들에게 7년에서 4년에 달하는 중형이 선고됐다. “해고는 살인”이라고 외치며 정리해고에 맞서 온몸으로 항의했던 쌍용차 파업의 주역들은 아직도 감옥에 있거나, 천문학적인 손배 가압류와 ‘블랙리스트’ 때문에 변변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채 날품팔이로 연명한다. 한반도에서 전쟁을 막고 평화통일을 앞당기겠다는 일념으로 민간 외교를 벌였던 통일운동가들에게 들씌워진 국가보안법 멍에는 이 나라 민주주의의 현주소를 상징한다.

그래서 우리는 외쳤다. “권력형 비리 범죄자 엄벌하고 모든 양심수를 석방하라.” 양심수 사면을 촉구하는 서한과 노동자·시민 2천여 명의 마음이 담긴 서명지와 양심수 명단을 청와대에 제출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았던 문제가 터졌다. 경찰이 느닷없이 “집시법 위반”이라며 나를 비롯한 구속노동자후원회 활동가 2명에게 8월 17일까지 종로경찰서로 나오라는 소환장(피의자 출석요구서)을 발부했다. (소환을 계속 거부한다면 곧 체포영장이 발부될 것이다.)

소환장에 적혀 있는 번호로 전화를 걸어보니 전화번호도 틀렸다. 인터넷을 찾아 겨우 종로경찰서로 전화를 걸 수 있었다. 그날 구호를 두세 번 외쳤고, 참석자들이 정부를 비판하는 내용으로 연설을 한 게 문제라고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간다. 처벌을 하려고 둘러대는 억지논리였다.

기자회견은 그 자체가 사회에서 발생한 문제를 언론을 통해 널리 알림으로써 상대(주로 국가기관)에게 압력을 주기 위한 정치적 행위다. ‘표현의 자유’ 영역에 속하기 때문에 누구나 할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내용이나 형식은 자유롭게 할 수 있다고 본다. 게다가 기자회견의 형식이나 내용을 제한하는 법률도 없지 않은가?

그런데도 경찰은 ‘집시법’의 독소조항을 끌어들여 어떻게든 ‘불법’으로 몰아 처벌하려고만 한다. 이것만 봐도 현행 ‘집시법’이 ‘집회의 자유’를 보호하려는 법이 아니라 집회·시위를 준범죄행위로 간주하고 단속하려는 ‘공안통치법’이라는 걸 알게 해 준다. 이런 양상은 이명박 정권 들어 더욱 극심해졌다.

참고로 이번 기자회견은 구속노동자후원회뿐만 아니라 민가협 양심수후원회, 민주노총, 인권단체연석회의 등 50여개 인권·사회단체들이 함께했다. 우리는 해마다 8·15가 다가오면 이곳에서 어김없이 양심수 석방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경찰이 우리가 한 기자회견을 제지하거나 소환장을 발부한 적이 없었다. 법이 바뀐 것도 아니다. 진행방식도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왜 지난해 ‘불법’이 아니었는데 올해는 ‘불법’이란 말인가?

경찰은 궁색하게도 대법원 판례 — 경찰의 탄압 논리를 뒷받침해 주는 — 를 끌어다 댄다. 대법원 판례가 권위가 있다지만 모든 사람, 모든 사건에 천편일률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법률은 아니지 않은가? 이렇게 시민의 인권을 탄압할 때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대법원의 판례까지 들먹이는 경찰이 자신의 ‘공권력 남용’을 제한하는 다른 판례들은 왜 마음대로 무시하는 것인지 되묻고 싶어진다.

시민들의 절박한 기자회견을 마음대로 재단해서 ‘불법’으로 몰아가는 경찰의 행태는 ‘공권력 남용’의 극치다. 8월 3일 우리의 기자회견은 흠잡을 데 없이 평화로웠다. 오히려 그날 기자회견을 방해한 경찰의 행동이야말로 ‘불법’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우리가 경찰의 소환조사를 받아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이명박 정권은 도둑이 제 발 저리듯이, 정당성이 없는 부패 범죄자들을 무더기로 사면해 놓고는 할 말이 없으니까, 경찰을 동원해서 이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마저 짓밟으려 하는 것은 아닌가?

정당한 기본권을 행사했다는 이유로 부당하게 구속되거나 양심의 울림을 거스를 수 없어 악법에 불복종했던 양심수들의 가족은 하루하루 타는 가슴으로 어려운 생계에다 옥바라지까지 감내하느라 허리가 휠 지경이다. 이번에 또 특혜를 받은 재벌총수, 정치인들 가운데 가정이 파괴되거나 밥 걱정을 하는 사람은 없다. 민주공화국이라는 이 나라에서 인권의 무게가 달라도 이렇게 다를 수 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