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해방 연재 마지막 기사에서 정진희가 여성 억압의 근원과 사회주의 혁명의 본질을 살펴본다.


우리 사회에서 성 차별은 아주 흔하다. 강간, 저임금, 낙태 금지, 선정적인 여성 신체 묘사 등 다양한 여성 차별이 가정, 일터, 학교, 거리 등 곳곳에서 일어난다. 

이런 현실 때문에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 흔한 생각 ― 계급 사회를 전복하는 혁명이 일어난다고 해도 성 차별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 은 언뜻 옳은 듯 보인다.  

혁명이 일어나도 강간이나 성희롱을 저지르는 사람들은 여전히 있지 않을까? 공동식당이나 공동부엌을 만들어 가사를 사회화해도 결국 집안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요리를 하는 사람은 여자가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에는 여성 억압의 근원과 사회주의 혁명의 본질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깔려 있다.  

여성 억압이 언제나 인류 역사의 특징이었던 것은 아니다. 칼라하리 사막의 쿵족, 캐나다의 나스카피족 등 수렵·채취 사회를 연구한 여러 인류학자들은 이들 사회에서 여성과 남성의 관계가 평등하다고 밝혔다. 

체계적인 여성 차별은 계급 사회의 산물이다. 그리고 오늘날 자본주의에서 여성들이 겪는 억압은 체제의 작동 방식과 긴밀하게 관련돼 있다. 형편없는 보육 복지, 노동시장에 구조화된 성 차별, 성 상품화 등은 자본주의와 분리할 수 없다. 

여성 차별을 뿌리뽑으려면 억압을 영속화하는 구조를 분쇄해야 한다. 여성들이 평등하고 질 높은 삶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거나 제약하는 이윤 논리를 지탱하고, 노동계급을 분열시키기 위해 차별을 부추기는 지배계급의 권력을 분쇄해야 한다. 

물론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난 즉시 여성 억압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억압이 수천 년 동안 지속하면서 성 차별이 사람들의 일상생활(가장 친밀한 관계에서마저)에 깊숙이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정한 사회주의(착취와 억압이 없는 무계급 사회)를 건설하려면 혁명 뒤에도 옛 사회의 유산들 ― 성 차별뿐 아니라 인종 차별, 동성애 혐오 등 ― 에 맞서는 투쟁이 뒤따라야 한다. 

유산

많은 페미니스트들은 ‘계급 사회가 사라져도 가부장제는 계속 남는다’는 증거로 소련을 꼽곤 했다. 

우선 짚어야 할 점은 스탈린주의 관료들의 수사와는 달리 소련에서 계급이나 계급 적대가 사라진 적은 없었다는 사실이다.  

소련에는 사유재산이 없었지만 국가관료들은 평범한 노동자와 농민은 꿈조차 꿀 수 없는 어마어마한 특권을 누렸다. 노동자와 농민 대중이 만성적인 소비재 부족으로 고통에 시달릴 때, 관료들은 자신들만 출입하는 특별상점에서 물품을 공급받았다(1960년 전체 소매판매 중 3분의 1이 이런 특별상점에서 팔렸다).  

1960년대와 1970년대 소련의 소득 불평등은 서구와 비슷했다. 최상층 10퍼센트 가구가 차지한 소득(24.1퍼센트)은 최하층 10퍼센트 가구 소득(3.4퍼센트)의 일곱 배가 넘었다. 이런 격차는 미국과 스페인, 이탈리아보다는 적은 것이었지만, 일본과 스웨덴보다는 컸다. 

스탈린이 권력 투쟁에서 승리한 1920년대 말 이후 러시아에서는 파업이 금지되고 파업 참가자들은 사형 선고를 받았다. 노동계급이 아무런 권력을 지니지 못한 스탈린주의 러시아에서 ‘사회주의’는 한낱 관료들의 말장난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1917년 혁명 당시와 그 뒤 몇 년간 ‘사회주의’는 모든 착취와 억압이 사라지는 사회를 향한 수많은 노동자와 민중의 염원과 투쟁을 뜻했다. 

1917년 혁명으로 여성 해방을 위해 많은 조처들이 도입됐다. 완전한 투표권, 동일임금법, 유급 출산휴가, 무료 국립 보육시설, 낙태 합법화(여성이 요구하면 허용), 이혼 자유화 등. 이는 당시 가장 발전한 자본주의 국가조차 시도하지 못한 것들이었다. 그 중 일부는 오늘날의 기준에서도 급진적이다. 이를 테면, 여성의 선택권을 완전히 보장하는 낙태 합법화는 오늘날 서구에서도 드물다.  

전통적으로 여성이 담당해 온 일들을 공공 보육시설, 공동식당, 공동세탁소를 건설해 해결하려는 시도들도 있었다. 볼셰비키는 여성 해방을 촉진하기 위해 여성부(제노텔)를 만들었다. 제노텔 활동가들은 여성들의 혁명 참여를 고무하고 수세대 동안 이어져 온 차별의 유산에 맞서 투쟁했다. 

안타깝게도, 이런 시도들은 지속하지 못했다. 유럽에서 일어난 혁명, 특히 독일 혁명이 승리하지 못하면서 러시아 혁명이 고립됐기 때문이다. 14개 외국군의 침략과 내전으로 빈사상태에 빠진 1920년대 러시아에서 스탈린주의 관료가 부상하면서 혁명과 여성 해방 실험은 중단됐다.  

스탈린은 혁명의 성과물을 완전히 제거했다. 1930년대에 노동계급 착취와 농민 수탈이 무시무시하게 강화되는 가운데 반동적인 여성 정책이 시행됐다. 1930년에 제노텔이 폐지됐다. 순결과 모성이 찬양되고 낙태가 금지됐다. 수십 년 동안 성 평등 쟁점은 공식 논의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러시아 혁명은 결국 패배했지만, 그럼에도 노동자 혁명이 여성 해방을 위한 추진력이 될 수 있음을 잠시나마 보여 줬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여성 차별이 전쟁, 대규모 실업과 빈곤, 인종 차별, 환경 파괴 등 수많은 불의와 참상과 공존한다. 그리고 사회의 권력은 소수의 지배계급이 독점한다. 따라서 여성 해방은 사회 전체의 변혁과 분리될 수 없다. 

혁명이 일어날 때까지 마냥 기다려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여성들이 나날이 겪는 차별에 맞선 투쟁은 그 투쟁에 참가한 사람들뿐 아니라 노동계급 전체의 의식 변화를 위해서도 중요하다. 사회주의자들이 여성 차별의 온갖 측면에 맞서 적극 투쟁해야 하는 까닭이다. 

한편, 여성 차별에 맞선 투쟁은 체제를 뒤흔들 수 있는 노동계급의 힘과 결합될 때 가장 효과적일 수 있다. 체제 전체에 도전하는 혁명이 일어난다면, 여성 해방을 위한 급진적 실험이 또다시 활짝 꽃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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