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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의 저출산 대책:
실질적인 대책 없는 생색내기

정부가 저출산대책(‘2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또 내놨다. 추석 직전에는 ‘국민경제대책회의’를 열어 내년부터 소득 하위 70퍼센트까지 보육료를 전액 지원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세계 최저 수준이라는 출산율을 올리고 여성 노동력을 활용하기 위해서 정부도 뭔가 내놔야 했을 것이다. 지방선거 참패 이후 레임덕 위기를 면해 보려고 ‘친서민’, ‘공정사회’ 따위의 간판을 걸었는데 뭔가 보여 줄 게 있어야 한다는 생각도 작용했을 것이다.

퇴근 후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데리고 귀가하는 여성 노동자 - 여성 노동자들이 이중의 굴레에서 벗어나려면 육아를 사회가 책임져야 한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저출산 대책들은 정부의 다른 ‘친서민’ 정책들처럼 생색내기 수준이거나 여성들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내용들이 많다.

정부는 보육료 전액 지원 대상자를 하위 70퍼센트까지 늘리겠다고 하지만 이번 계획이 특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2012년까지 무상보육하겠다던 이명박의 대선 공약과 2009년에 보건복지부가 세운 계획 — 2012년까지 하위 80퍼센트까지 보육료 전액 지원 — 에도 못 미친다.

국공립 보육시설

게다가 이번 저출산 대책에는 꼭 필요한 국공립 보육시설 대폭 확충 계획이 빠져 있다. 국공립 보육시설은 민간 보육시설보다 비용도 저렴하고 질이 좋아 많은 사람들이 선호한다. ‘꿀꿀이죽’ 사건이 보여 주듯 수익을 남기는 데 혈안이 된 민간보육시설의 형편 없는 보육 서비스 때문에 민간시설에 아이를 맡긴 부모들은 불안하기만 하다.

그런데도 전체 보육시설 중 국공립 보육시설은 전체의 5퍼센트가량밖에 되지 않는다. 전체 아동의 11퍼센트만이 이용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는 원래 2010년까지 국공립 시설 2천7백 곳을 확충하겠다고 했지만 말뿐이었는데, 이번에는 아예 계획에서조차 빠졌다.

정부는 국공립 보육시설 확충은커녕 오히려 우수한 보육시설을 ‘자율형 보육시설’로 전환하도록 허가하겠다고 발표했다. ‘자율형 보육시설’이 되면 정부의 기본적인 지원은 중단되고 어린이집과 부모가 협의해 보육료를 얼마든지 올릴 수 있다. 결국 ‘자율형 보육시설’은 부잣집 아이들이 다니는 ‘귀족 어린이집’이 될 공산이 크다. 유아기부터 노골적인 계급 차별이 시작되는 것이다.

휴직 전 임금의 40퍼센트까지 육아휴직급여로 제공한다는 계획도 문제가 많다. 이 제도를 도입하면 지금보다 더 많은 육아휴직급여를 받는 사람이 생기긴 하겠지만, 육아휴직 급여 하한선이 여전히 50만 원밖에 안 돼 보육료 지원 인상이 가장 절실한 저임금 노동자들에게는 별로 혜택이 없다. 정부는 최대 1백만 원까지 받을 수 있다고 하지만, 이 정도를 받으려면 월 평균 급여가 2백50만 원이 넘어야 한다.

이조차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육아휴직급여는 고용보험에서 지급되는데 비정규직 중 고용보험에 가입한 비율은 37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

이런 불충분하고 차별적인 지원이 아니라, 누구나 충분한 육아휴직비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가령, 스웨덴에서는 3백90일 동안 정규 임금의 80퍼센트가 육아휴직급여로 나온다. 나머지 90일은 월급에 상관 없이 월 5천4백 크로나(약 86만 원)가 지급된다. 이명박의 ‘선진화’에는 왜 이런 사례가 포함되지 않는가.

또, 여성만이 아니라 남성도 육아휴직을 실질적으로 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국의 남성 노동자들은 OECD 국가들 중에서 가장 긴 노동시간, 임금보다 형편없이 낮은 육아휴직비 때문에 실제로 육아휴직을 거의 사용하지 못한다. 평등한 육아를 위해서 노동조건 후퇴 없는 노동시간 단축이 필요하고, 육아휴직비도 대폭 올려야 한다.

육아 때문에 여성들이 직장을 그만두는 일도 없어야 한다. 정부 스스로 지적하듯이, 한국은 여전히 육아기 여성들의 경력 단절 현상이 두드러진다. 그러나 이 문제를 해결할 근본적인 대책은 하나도 제시돼 있지 않다.

9월 29일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장 앞에서 이명박 정부의 ‘저출산 대책’을 비판하는 여성·노동단체 활동가들 - 여성 노동자들이 이중의 굴레에서 벗어나려면 육아를 사회가 책임져야 한다.

유연근무제를 확대하겠다는 계획도 심각한 문제다. 이것은 기존의 일자리를 반으로 쪼개 질 나쁜 일자리 두 개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또, 여성들이 안심하고 직장을 다닐 수 있도록 양육을 사회가 책임지는 방식이 아니라, 여성들이 직장 다니면서 육아도 책임지라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정부는 유연근무제를 통해 불안정고용을 확대하고 전반적인 노동시장 유연화를 꾀하려 한다. 따라서 유연근무제 확산은 단지 여성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부가 ‘저출산 위기’라며 호들갑을 떨면서도 이렇게 턱없이 부족한 대책밖에 내놓지 않는 이유는 여성들의 보육 부담을 더는 데 필요한 비용을 투자할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는 4대강 사업에는 엄청난 돈을 쏟아부으면서도 보육 지원에는 이토록 인색하다. 결국 보육 부담은 여성들에게 계속 전가될 것이다.

이런 생색내기 지원이 아니라, 진정한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해 보육 지원을 대폭 늘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