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해에 취약한 체제

 

지난해에 이어 또다시 끔찍한 수해가 발생했다. 서울과 인천을 제외한 전 국토를 강타한 태풍 ‘매미’로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고 집과 재산을 잃었다. 8월 말 현재 사망한 사람은 130명에 이르고 공식 집계로만 4조 7천8백억 원이 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노무현 정부는 서둘러 피해 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하지만 피해 보상 규모가 크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난민 신세로 전락할 예정이다. 지난해 태풍 ‘루사’ 때 집을 잃은 수재민들은 지금까지 컨테이너에서 살고 있다.

또다시 많은 사람들이 혹독한 겨울을 맞이하게 됐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는 이번 태풍이 “유례 없는 초대형 태풍”이라는 점만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해마다 홍수와 태풍 등으로 수해가 되풀이되는 상황에서 하늘 탓이나 하는 것은 책임 떠넘기기일 뿐이다. 청와대를 비롯한 국가 기관들이 이번 태풍 때 보여 준 행동은 관료적 무사안일 자체였다. 노무현은 태풍이 오는 날 저녁에 한가하게 뮤지컬을 관람했고 많은 시·군·구 당국은 대피 방송조차 하지 않았다.

이번 태풍 역시 천재(天災)가 아닌 인재(人災)라는 사실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 부실 공사: 지난해 태풍 ‘루사’ 때 입은 수해 복구 공사는 1년이 되도록 70퍼센트밖에 이뤄지지 않았다. 게다가 땜질식으로 이뤄진 복구 공사는 이번 태풍으로 다시 무너져 내렸다. 이번 태풍의 피해자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지난해 태풍 ‘루사’ 때도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다. 부실 공사 때문에 지난해에 이어 올해 또다시 수해를 입은 강원도 정선군 주민들은 지난 9월 22일 정선군청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였다.

● 매립지:마산 지역에서 피해가 난 지역은 모두 매립지였다. 매립지에는 재난 예방 시설이 없었다. 감사원은 이미 지난 1996년에 마산만 매립지가 침수될 가능성을 지적했다. 부산 녹산국가산업단지 역시 매립지인데도 방재 시설이 없어 커다란 피해를 입었다. 산업단지측이 분양가를 낮추기 위해 바닷가 쪽 완충 녹지를 대폭 축소한 게 피해를 늘렸다.

● 낙동강 유역의 상습 침수: 환경운동연합은 낙동강 홍수의 원인이 “하천의 직선화, 습지의 오용, 하천 구조물들의 유수 방해 등에 따라 과도하게 높아진 강 본류의 수위” 때문이라는 조사 결과 보고서를 발표했다.

● 신자유주의가 낳은 재앙: 148만 가구와 79개 산업단지가 순식간에 암흑에 빠진 대규모 정전 사태의 배후에는 신자유주의가 있다. 대규모 정전 사태는 송전철탑과 전봇대들이 대거 무너진 탓인데, 한국전력공사가 비용 절감을 위해 송전철탑과 전봇대를 태풍에도 견딜 만큼 깊게 묻지 않았음이 드러났다. 정전 사태로 빗물펌프장이 가동 중단돼 범람하는 바람에 피해가 더욱 커졌다.

1997년 이후 자치단체들의 방재 담당 인력은 20퍼센트 이상 줄어들었다(감사원 조사). 기초 지자체의 재난 관리 담당 공무원 숫자는 한두 명뿐이다.

● 지구 온난화: 영국 이스트 앵글리어 대학 기상연구소의 연구 결과, 현재 지구의 기온은 2천 년 만에 최고다. 한반도 부근 해수면의 온도는 100년 전에 비해 0.6∼2.5도 상승했다. 많은 기상 전문가들은 잦은 비와 태풍의 형성이 온난화와 관계 있다고 말한다. 산업 활동에 따른 온실 가스 배출량 증가가 온난화를 가속시키고 있다.

 

심각한 환경 파괴로 자연은 갈수록 예측하기 힘들게 변화하고 있지만 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노력은 후퇴하고 있다. 내년도 수해 방지 예산은 2조 2천억 원으로 올해의 2조 5천억 원보다 되레 줄었다. 체제는 갈수록 자연 재해에 더욱 취약해지고 있다.

정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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