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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한국 노동자들이 프랑스 노동자들처럼 싸울 수 있을까?

혈관에 피가 흐르는 사회주의자라면 프랑스 투쟁 소식에 크게 힘을 받았을 것이다. 친구나 동료에게 ‘우리도 프랑스처럼 해야 해’ 하고 말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주장을 했을 때 ‘그러면 좋겠지만 이 나라에서는 그런 일이 가능하지 않아’라는 답변을 많이 들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프랑스인들은 별것도 아닌 것에도 바리케이드를 쌓을 준비가 된 사람들인 반면, 이 나라에서는 시위나 파업을 욕하는 사람이 더 많다고 말한다.

그런데 대다수 사람은 프랑스 노조 조직률(8퍼센트)이 한국(10퍼센트)보다 더 높지 않다는 점을 알고는 놀란다.

그러나 95퍼센트의 프랑스 노동자들이 단체협약 적용 대상이다. 노조에 속하지 않은 노동자들에게도 단체협약 내용이 적용되며, 이 노동자들은 노조들이 자신을 위해 협상한다는 점을 잘 안다. 반면에 이 나라에서 노조에 속하지 않은 노동자들은 거의 단체협약 내용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 하지만 ‘강성 노조’의 투쟁 효과가 나머지 부문에도 파급되는 게 사실이다.

따라서 노조 조직률이 낮으면 싸울 수 없다는 말은 틀린 것이다.

그렇다면 프랑스 노조 지도자들이 더 우수한 것일까? 한국의 노조 지도자들과는 달리 프랑스 노조 지도자들은 사자후를 토하는 선동가들인가?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정도의 차이는 약간 있지만 근본적 차이는 없다. 연금 개악 반대 투쟁에서 프랑스 노동총동맹(CGT) 지도자 베르나르 티보는 결정적 국면마다 기층의 압력을 받아서야 운동을 전진시키곤 했다.

전통

역사적 배경은 어떤가? 프랑스 노동자들은 대충이라도 자국 혁명 전통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나라도 4·19 혁명부터 1980년 광주항쟁, 1987년 민주화 항쟁으로 이어지는 전통이 있다.

그럼 차이는 무엇인가? 지난 25년 동안 프랑스 노동자와 학생 들은 ─ 패배와 후퇴도 있었지만 ─ 대단한 승리를 거두기도 했다.

1995년에 대규모 파업과 시위로 알랭 쥐페 총리가 물러났다. 또, 2005년 파리 외곽 빈민가의 반란은 광범한 분노를 산 최초고용계약을 철회시킨 2006년 파업과 학생 시위로 연결됐다.

사람들은 싸우면 이길 수 있고, 전투적으로 싸울수록 더 많이 얻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얻었다.

이 나라에서도 정부의 노동법 개악을 막아낸 1997년 노동자 파업이 있었고, 우파의 반동 시도를 저지한 2004년 탄핵 반대 투쟁이 있었다.

또, 2008년에는 우파 정부를 쩔쩔매게 한 1백만 촛불항쟁도 있었다.

그러나 한국 노동자들은 1997년 IMF 위기와 구조조정을 거치며 겪었던 고통과 불안감을 기억하고 있다. 고용불안과 비정규직화가 이어졌고 투쟁으로 공격을 막아내기도 했지만 패배와 양보 교섭의 기억도 남아 있다. 특히 그 후 몇 차례 있었던 노동법 개악도 민주노총 지도부의 우유부단한 대응 때문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물론, 그것은 이 나라 노동자들의 어떤 한계 때문이 아니라 노조 지도자와 개혁주의 지도자들의 실패 때문이었다.

그래서 한국의 노조와 기층 조합원들은 여전히 강력한 잠재력을 갖고 있지만 확신과 자신감이 높지 않다. 더구나, 그들의 지도자들이 자꾸 후퇴를 부추기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이런 상황은 변할 수 있다. 그것도 빨리 변할 수 있다. 프랑스의 높은 투쟁 수준은 누적적 과정이었다. 처음에는 자신감도 낮았고 노조 지도자들의 진정한 의도를 의심하는 회의적 정서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활동가들은 노조 지도자들의 파업 호소가 연 기회를 이용해 파업과 시위를 조직했고, 투쟁의 수위가 눈덩이 불듯이 커졌다. 노동자들이 대중 운동이 가능하다는 것을 점차 깨달으면서 자신감이 커졌다.

따라서 한국 노동자들이 ‘프랑스의 길’을 가기를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것은 답이 아니다. 우리는 그것을 주장하고 조직하고 노동 운동 내 비관론에 맞서 투쟁을 벌여야 한다. 반격이 먹힌다는 것을 사례로 입증해야 한다. 저항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전염되듯이 확산된다.

최근 현대차 비정규직, 기륭전자, KEC 점거 파업 등에서 노동자들의 전투성과 저항 정신은 인상적이다.

이 투쟁(과 다른 여러 투쟁)은 한국 노동자들이 얼마나 분노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 준다. 이런 분노는 프랑스식 저항을 불러올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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