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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의 신간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서평:
더 나은 자본주의인가 반자본주의인가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장하준, 부키, 1만 4천 8백 원, 367쪽

대공황 이후 최대라는 이번 경제 위기를 맞아 경제 관련 서적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진정으로 무엇인가를 배우고 고민하게 만드는 책을 만나는 것은 오히려 쉽지 않다.

그런데 장하준의 새 책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이하 《23가지》)는 분명 그런 책 중에 하나라 할 만하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23가지》의 서평뿐 아니라 ‘장하준을 칭찬하며’라는 제목의 사설까지 써서, 신임 노동당수인 밀리반드에게 장하준을 만나보라고 권할 정도로 극찬했다.

《23가지》는 신자유주의 정치인·경제학자·언론이 퍼트리는 흔한 23가지 주장들을 명쾌하게 반박하는 구체적인 사실과 주장으로 엮인 책이다. 흥미진진한 주장들로 구성된 이 책은 어느 작가가 표현한 것처럼 “통렬하면서 재미있다.” 특히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든다고 우리 모두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는 장하준의 주장은 최근 한국에서도 벌어진 부자 감세 논쟁에서 진보진영에 좋은 무기를 제공한다.

이번 책을 장하준의 이전 저작들과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롭다. 장하준은 “이전 책들이 주로 개발도상국의 시각에서 쓴 각론이었다면 이번 책은 선진국까지 포괄한 총론”이라고 밝혔다.

장하준은 이전 저작들에서 자유무역과 민영화, 지적재산권 강화, 금융 자유화 등이 경제 성장을 위한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신자유주의 신화를 반박해 왔다. 《23가지》는 이뿐 아니라 신자유주의 시대에 심화된 소득 불평등과 복지 제도 파괴, 계획 경제 등에 대한 주장도 비교적 자세히 하고 있다. 다시 말해, 개혁 지향적 모습이 더 분명하다.

이런 변화는 2008년 금융 위기로 신자유주의가 심대한 타격을 입자, 장하준의 자신감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시대의 우상

우선, 많은 언론들이 《23가지》의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라고 소개한 것을 살펴보자. 장하준은 “인터넷보다 세탁기가 세상을 더 많이 바꿨다”, “우리는 탈산업화 시대에 사는 것이 아니다”며 이 시대의 우상을 공격한다.

탈산업화론자들은 이제 투자 증대보다 지식의 발전이 생산성 향상과 경제 성장에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고, 한국의 진보진영 상당수도 이를 받아들인다.

자본주의 역사에서 신기술의 발명은 종종 새로운 성장 단계에 진입했다는 환상을 낳는다.

1990년대 말에도 미국을 중심으로 IT산업이 급속하게 발전하자 경제가 새로운 성장 단계에 진입했고 경제 위기는 옛 이야기라는 ‘신경제론’이 유행한 바 있다. 1920년대에도 자동차·라디오·전화의 대량 생산과 보급은 오늘날과 비슷한 환상을 유포했다. 그러나 이런 환상들은 1929년 대공황과 2000년대 초 IT 거품 붕괴로 처참하게 무너진 바 있다.

사실 장하준의 탈산업화론 비판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 성장은 투자의 증감에 달려 있다는 마르크스·케인스의 주장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이처럼 자본주의 사회에서 투자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은 옳지만 장하준의 분석을 곰곰히 살펴보면 그의 약점도 드러난다.

주주 자본주의가 문제인가

널리 알려져 있듯이 장하준은 신자유주의 시대에 주주 이익을 극대화하는 ‘주주 자본주의’ 때문에 투자가 줄어들면서 일자리가 줄고 성장률이 떨어진다고 주장해 왔다.

“배당금을 높이고 자사주 매입을 늘릴수록 사내 유보 이윤은 줄어들고, 그에 따라 투자도 감소된다.”(43쪽)

그러나 ‘주주 자본주의’론은 신자유주의 시대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아니다. 기업들이 배당 등을 늘린 것은 사실이지만 사내 유보 이윤 또한 증가했다. 현재 미국 기업들이 보유하고 있는 현금은 2조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한국에 상장된 6백여 비금융기업의 현금성 자산도 1백조 원이 넘는다.

게다가 배당금 지급이 사회 전체의 이윤량을 감소시키는 것은 아니다. 많은 배당과 연봉 지급은 부자들이 그 돈을 자기 집 금고나 장판 밑에 보관하는 것이 아니라면 금융기관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그리고 금융기관들은 그 돈을 다른 부문에 투자해야만 수익을 얻을 수 있다.

다시 말해, 신자유주의 시대에 기업과 금융기관이 보유한 돈은 늘어났다. 게다가 국가는 온갖 규제를 없애고 부자 감세를 추진하며 기업 투자를 유도했지만 부자들은 파생금융상품 등 투기에 매달릴 뿐 생산적 투자는 회피했다.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든다고 우리 모두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장하준은 부자 감세 논리를 통렬하게 비판하지만 투자 감소 이유를 분명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사실 장하준은 그 이유를 알고 있다. “[고성장기 한국처럼] 좋은 사업 기회를 계속 찾아낼 수 있는 나라에서라면 299개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고충을 감수하고서라도 너도나도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반대로 별로 돈을 벌 확률이 없는 곳에서는 29개를 허가받는 것도 너무 성가셔 보일 것이다.”(259∼260쪽)

결국 1970년대 이후 투자가 감소한 이유는 1백50여 년 전에 마르크스가 분명하게 지적한 자본주의의 ‘이윤율 저하 경향’, 또는 70여 년 전에 케인스가 모호하게 제시한 ‘자본의 한계효율 체감’과 관련 있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들이 밝혔듯이, 전 세계 자본주의는 1960년대 말 이후 이윤율이 떨어져 왔다. 복지·임금 삭감과 부자 감세 등의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부자들의 이윤 몫을 늘리려는 시도를 계속해 1980년대 이후 이윤율이 조금 올랐지만 그 수준은 1960년대 수준으로 회복되지 못했고 따라서 투자도 회복되지 않았다.

그런데 장하준은 이 점이 분명하지 않아 투자를 늘리는 궁색한 대안을 제시한다. 국가가 “각종 정책 수단(예를 들어 부자와 기업의 감세를 허용하는 대신 투자를 조건으로 제시)을 통해 부자들로 하여금 더 많이 투자하도록”(197쪽)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시대에 정부가 온갖 편의를 제공했음에도 투자가 늘지 않았는데 어떤 새로운 조건을 제시해 투자를 유도할 수 있다는 말인가?

반면, 케인스는 “투자의 다소 포괄적인 사회화가 완전고용에 근접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것 같다” 하고 급진적인 방안을 검토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물론 케인스는 부자들의 눈치를 살폈기 때문에 늘 부족한 대안만을 제시했지만 말이다.

결국 장하준의 대안은 어정쩡한 타협인 셈이다. 그런데 어정쩡한 타협 시도는 기업주들의 반발로 좌초되기 십상이다. 최근에 영국 정부가 재정적자 축소를 위해 약간의 은행세를 물리려하자 2008년 위기 이후에 영국 정부로부터 막대한 자금을 지원받은 거대 은행들이 해외로 이전하겠다고 위협하는 것을 보라. 기업 투자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려 할수록 재산 이전, 투자 철회와 같은 부자들의 반발은 더욱 거세질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민주적 계획과 통제

그런데도 장하준이 어정쩡한 타협안을 제시하는 이유는 “수많은 문제점과 제약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는 인류가 만들어 낸 가장 좋은 경제 시스템”(14쪽)이라며 스스로 한계를 만들기 때문이다.

이는 장하준이 소련의 붕괴를 보고 사회 전체의 계획 경제는 불가능하다는 점이 입증됐다고 생각하는 것과 관련 있다.

물론 장하준은 사람들의 상식에 도전해 “우리가 여전히 계획 경제 속에 살고 있다” 하고 주장한다. 세계 무역량의 3분의 1은 거대 다국적기업의 내부 거래고, 각국 정부는 거대 공기업들을 운영하고 연구개발의 대부분을 담당하며, 기업들은 철저한 사업 계획 하에 움직인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발전에 따라 거대 기업이 지배하는 경제 영역이 점점 더 확대되어 왔다. 이는 자본주의 경제에서 계획에 따라 운영되는 영역이 사실상 늘어나고 있음을 의미한다. … 만약 이 화성인이 지구상의 기업[계획, 조직]을 녹색으로, 시장(거래)을 빨간색으로 표시하면 어떤 형상이 나타날까. 그것은 아마 ‘녹색 점을 연결하는 빨간 선의 네트워크’가 아니라 ‘빨간 선으로 상호 연결된 큼직한 녹색 영역들의 집합’이 될 것”(274∼275쪽)이다.

마르크스는 개별 기업에서 자본가들의 독재적인 계획을 노동자들의 민주적 계획으로 대체하고, 사회 전체의 계획도 노동자들이 참여해 결정해야만 사회적 자원을 인류의 번영을 위해 사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장하준은 소련의 예를 들며 전체적인 계획은 불가능하고 부자들의 의지에 좌우되는 시장이 여전히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 근거는 “[소련] 경영자들 입장에서는 이런 기술로 좋은 상품을 생산해서 경영 성과를 올리려 발버둥칠 만한 인센티브가 부족했다”(265쪽)거나 “생산력이 발전하면 경제가 더 복잡해져서 중앙에서 계획을 수립하는 것 역시 더 어려워진다”(267쪽)는 ‘상식’적인 것들이다.

그러나 이 반박은 장하준이 소련을 비판한 다음 주장과 모순된다.

“인간을 우주로 보낼 능력을 가진 나라에서, 국민은 빵이나 설탕 같은 기초 식료품 하나를 사려 해도 길게 줄을 늘어서야 한다. 대륙간탄도미사일과 핵잠수함은 문제없이 대량 생산해 내지만 괜찮은 텔레비전 하나도 제대로 만들지 못한다.”(264쪽)

소련의 지배자들은 생필품을 만들 인센티브는 없었는지 모르지만 핵무기를 만들 인센티브는 있었던 것이다. 경제가 복잡해져 중앙 계획이 불가능하다는 주장은 복잡한 최첨단 부품이 텔레비전·휴대폰·자동차보다 훨씬 많이 들어가는 대륙간탄도미사일과 핵잠수함을 소련이 문제없이 대량 생산했다는 주장과 모순된다. 오히려 소련 인민들이 곤란을 겪은 것은 빵과 설탕처럼 단순한 계획으로도 대량 생산할 수 있는 물자가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장하준은 “규칙을 정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들이 내리는 결정에 따라 일어나는 일들의 방향과 결과도 결정이 된다”(16쪽) 하고 말한다. 그런데 소련에서는 “규칙을 정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들”이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과 군사적 경쟁 압력에 따라 핵무기와 핵잠수함 등에 자원을 집중하기로 결정하고 생필품 부문에는 자원을 배분하지 않았던 것이다.

아래로부터 사회주의

결국 소련 사회에는 이윤 추구에 목숨을 걸고 노동자들을 쥐어짜는 개별 자본가들의 독재적 계획은 없었는지 모르지만, 대신 서방과 군사적 경쟁에 목숨을 걸고 노동자들을 쥐어짜는 관료들의 독재적 계획이 있었다.

따라서 소련의 실패는 마르크스가 말한 노동자들이 운영하는 민주적 계획 경제의 실패를 보여 주는 사례가 아니다.

소련에 대한 분석과 논쟁은 20여 년 전에 사라진 체제에 대한 옛 이야기가 아니다. 이것은 세계경제가 위기에 빠진 요즘 대안 논의에 당장 영향을 미친다. 앞서 살펴봤듯이 장하준은 위기를 끝내려면 투자 증대가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그 방안은 자본가들의 방해에 손쉽게 무력화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규칙을 정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들”이 정한 규칙을 뛰어넘는 전망을 가져야만 그들의 위협에 맞서 싸울 수 있다. 나아가 그 힘으로 평범한 사람들이 규칙을 정해 사회적 부를 인류의 복지를 위해 제한없이 사용하는 사회를 만들 수도 있다.

장하준이 끝내 말하지 않는 부분이 이것이다. 그리고 이런 대안은 ‘아래로부터 사회주의’를 주창한 고전적 마르크스주의로부터 나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