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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븐 오븐든 방한 강연:
사회주의 신문과 대중 운동

앞으로 한 시간 반 동안 많은 질문과 토론이 오고 가길 바랍니다. 왜냐면 활동가, 사회주의자, 혁명가 들이 신문을 제작하고 판매하는 일에 그토록 몰두하는 이유가 언뜻 보기에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문을 제작하고 판매하는 것은 ‘다함께’와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만의 고유한 활동이 아닙니다. 사회주의 운동과 혁명의 역사를 살펴보면 많은 사람들이 신문 제작과 판매에 커다란 공을 들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18세기 프랑스 대혁명의 3대 좌파 지도자였던 마라, 에베르, 바뵈프는 모두 신문을 만들었습니다. 1840년대에 영국에서 역사상 최초의 노동계급 운동인 차티즘(인민헌장) 운동이 일어났을 때 그 운동의 양대 지도자였던 퍼거스 오코너와 브론테어 오브라이언은 〈북극성〉이라는 신문을 제작하는 데 많은 시간을 투여했습니다. 같은 시기에 독일에서 마르크스는 〈신라인신문〉을 제작하고 있었습니다. 레닌이 제1차세계대전 이전인 1912년에서 1914년 사이에 운동에 개입한 과정, 그리고 1917년 러시아 혁명에 개입한 과정은 〈프라우다〉 신문을 빼놓고 설명할 수 없습니다. 제1차세계대전 이후 독일 혁명을 이끌었던 두 지도자, 로자 룩셈부르크와 칼 립크네히트는 〈적기〉라는 신문을 만들었습니다. 룩셈부르크와 립크네히트는 반혁명으로 살해당했습니다. 그들은 살해당하기 바로 전 날에도 신문 기사를 마무리하기 위해 밤늦게까지 일했습니다. 다른 예들도 많습니다. 무솔리니의 감옥에서 옥사한 이탈리아 혁명가 안토니오 그람시는 〈신질서〉라는 신문을 제작했습니다. 1930년대 스페인 혁명의 지도자 안드레스 닌도 〈라 바딸리아〉라는 신문을 만들었습니다. 영국이 살해한 아일랜드 혁명가 제임스 코널리는 〈노동자 공화국〉이라는 신문을 만들었고, 트로츠키는 〈나셰 슬로보〉라는 신문을 만들었습니다.

큰 그림

그렇다면 이들은 왜 신문을 건설하는 데 그토록 많은 시간을 투여한 것일까요? 따지고 보면, 이들은 모두 행동을 중시한 사람들이었는데 말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이들은 모두 대중의 자주적 행동을 고무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두 가지 일을 해야 합니다. 사람들을 행동으로 이끄는 즉각적인 쟁점들을 다뤄야 합니다. 그러나 또한, 사람들이 더 큰 그림과 연관지어 자신의 당면 투쟁과 쟁점들을 볼 수 있게 해 주는 것도 필요합니다. 자신들이 혼자가 아니라, 더 많은 활동가들의 더 넓은 네트워크에 속해 있다는 것을 보여 줘야 합니다. 단지 그때 그때의 쟁점에만 관심이 있다면, 예컨대 임금 등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한 작업장의 파업에만 관심이 있다면 신문은 필요 없습니다. 메가폰만 있으면 됩니다. 단지 더 나은 세계에 관한 선전만 하고 싶다면 신문은 필요 없습니다. 더 나은 세계가 어떤 모습일지 설명해 주는, 언제든지 다시 찍을 수 있는 팸플릿만 있으면 됩니다. 하지만 여러 쟁점들의 연관성을 보여 주려면 사람들의 당면 투쟁들과 그 투쟁의 굴곡들을 더 일반적인 쟁점들, 더 큰 그림과 연관지어 설명해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개별 투쟁의 교훈들을 일반화하고 ‘무엇을 할 것인가’, ‘투쟁을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 하는 물음에 답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가장 성공적인 혁명적 신문과 사회주의 신문들은 바로 이러한 구실을 했습니다. 그 신문들은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관한 분석을 실었습니다. 예를 들어, 마라는 반혁명 세력의 음모에 관한 최근의 소식을 실었습니다. 1840년대 영국에서 오코너와 오브라이언은 경제적 착취에 대해, 그리고 아일랜드·자메이카 등 영국의 식민지에서 최근에 일어난 반란들에 관해 글을 썼습니다. 레닌은 국제 정세와 러시아 농촌의 계급 구조에 관한 글들을 썼습니다.

그러나, 이에 덧붙여, 그들은 매우 독특한 일을 했습니다. 그것은 부르주아 신문은 물론 단순한 급진적 신문과도 구별되는 사회주의 신문만의 특징입니다. 마라의 신문인 〈인민의 벗〉은 개별 독자들의 편지를 대량으로 지면에 소개한 최초의 신문이었습니다. 그 신문이 존재한 짧은 시기에 대략 3∼4천 통에 이르는 독자 편지가 신문에 실렸습니다. 종종 편집을 통해 분량을 줄여야 했지만, 수많은 개인들이 자신의 경험과 세계관, 자신들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앞으로의 행동 등에 관해 글을 보내왔습니다. 그들은 신문을 통해 마라와 연결돼 있었고, 마라는 지하로 숨어서 도망다닐 때조차 이 끈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자신의 인쇄기가 파괴된 뒤로 마라는 여러 인쇄소를 전전해야만 했습니다.) 마라가 마침내 도망자 신세에서 벗어났을 때, 그는 공개 연설을 할 수 없었음에도 파리시 선거에서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습니다.

차티스트 신문인 〈북극성〉은 노동자들이 파업, 지역 집회, 지역 시위, 공장 생활 등에 관해 쓴 수백 편의 보고를 지면에 실었습니다. 여러 부문의 노동자들과 급진파들이 지면에서 서로 소통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영국의 핼리팩스 시에 사는 어느 노동자는 신문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사람들은 길가에 서서 신문이 도착하길 기다렸습니다. 그것은 다른 어떤 일보다도 중요했습니다.” 당시에는 많은 노동자들이 글을 읽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신문이 도착하면 보통 글을 아는 노동자 한 명이 신문 기사를 낭독했고 약 20∼30명이 그를 에워싼 채 경청했습니다. 〈북극성〉의 이와 같은 인기는 조직상의 초점을 제공하는 생생한 보고들과 깊이 있는 분석을 결합한 덕분에 가능했습니다.

65년 뒤에 레닌의 신문인 〈프라우다〉도 매우 비슷한 형식을 취했습니다. 볼셰비키 당원이었던 지노비예프는 〈프라우다〉에 관해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프라우다〉는 지면의 절반 이상을 공장에서 일하는 남녀 노동자들의 편지에 할애했다.” 남녀 노동자, 병사, 수병, 재단사, 요리사 같은 사람들의 글이 신문의 절반을 차지했던 것입니다. 이들의 글은 공장, 막사, 노동계급 거주지의 일상에 관해 얘기했고, 사람들이 일상으로 직면하는 억압의 현실을 폭로했습니다. 그들의 편지는 훗날 러시아 혁명으로 분출되는 민중의 거대한 분노를 다른 무엇다 더 잘 표현했습니다.

〈프라우다〉

안토니오 그람시는 이탈리아에서 거대한 투쟁이 일어난 1919년과 1920년 ― “붉은 2년” ― 사이에 〈신질서〉 신문이 한 구실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노동자들은 이 신문을 정말 좋아했다. 〈신질서〉의 기사 속에서 그들은 최상의 자아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들은 〈신질서〉가 자신들이 느끼는 분노를 그대로 반영한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우리 자신을 해방시킬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우리 자신이 될 수 있을까? 〈신질서〉의 기사들은 분석 위주의 글조차 차갑거나 지식인 티가 나지 않았다. 그것들은 최상의 노동자들, 최상의 활동가들과 토론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그것들은 노동계급의 정서 중에서도 최상의 정서를 반영했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이 왜 오늘날에도 중요할까요? 오늘날 우리에게는 단지 반전 운동, 반자본주의 운동, 또는 임금 등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노동자 운동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새롭게 깨어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싸울 수 있다는 자신감이 부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각성은 고르게 일어나지 않습니다. 모든 곳에서 모든 부류의 사람들이 동시에 각성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과정은 불균등합니다. 특정 집단이나 계층에서 그 과정은 더 빨리 일어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얼핏 서로 별개처럼 보이는 개별 쟁점들을 계기로 급진화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러한 경로로 급진화하는 사람들에게는 자신들이 더 넓은 어떤 것의 일부임을 느끼게 해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연결

두 가지 차원에서 더 넓은 어떤 것의 일부분입니다. 우리 모두는 2월 15일 이후 우리가 더 넓은 어떤 것의 일부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단지 서울에서 행진한 수천 명의 일부였을 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행진한 1천5백만∼2천만 명의 일부였습니다. 우리는 정보 수집을 통해 이 사실을 알아 냈습니다. 일단 자신이 더 넓은 운동의 일부임을 자각하게 되면 투쟁에 연속성이 생깁니다. 사람들은 단지 같은 날 함께 행진했다는 뜻에서만 더 넓은 무언가의 일부라고 느끼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불의에 저항하는 더 광범한 전통의 일부라고 느끼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신문이 그러한 전통과 연결점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신문을 통해 사람들은 자신들이 마라나 로자 룩셈부르크와 같은 전통의 일부임을 알 수 있고, 오늘날 자신들의 투쟁이 에콰도르 원주민들의 투쟁과 연결돼 있고, 뭄바이에서 힌두 국수주의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투쟁과도 연결돼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신문은 각종 투쟁들에 대한 보고와 이 모든 투쟁들이 연결돼 있음을 보여 주는 분석을 통해 바로 이런 그림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오늘날의 사회주의 신문 사례를 소개하겠습니다. 2월 15일 영국에서 반전 시위에 참가한 사람들은 대부분 다른 문제들에 대해서도 강한 분노를 느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서로 다른 여러 쟁점들을 서로 연관지어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하지는 않았으며, 그 과정이 순전히 자생적인 것도 아닙니다. 2월 15일로 가는 길목인 지난해 11월과 12월 영국 소방수 노동자들의 파업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반전 운동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전쟁에 반대하면 당연히 소방수들의 임금 인상 파업도 지지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반전 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은 〈소셜리스트 워커〉에 실린 전쟁 관련 기사가 마음에 들어서 신문을 구입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신문 지면에 소방수 파업에 대한 보고 기사도 실었고, 전쟁에 반대한다면 소방수들을 지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실었습니다. 한편, 많은 소방수들도 〈소셜리스트 워커〉를 즐겨 읽었는데, 그것은 매주 그 신문에 소방수 파업에 대해, 앞으로 파업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그리고 소방수들이 처한 조건에 대해 소방수 자신들이 쓴 기사가 실렸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모든 소방수들이 자동으로 전쟁에 반대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특히 9·11 테러 당시 뉴욕에서 수많은 소방수들이 희생당한 것을 생각한다면 말입니다. 그래서 소방수 파업에 관한 글들은 파업과 전쟁의 연결 고리를 보여 주려 했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는 정부가 돈이 모자라 소방수들의 임금을 올려 주지 못한다면서도 전쟁에는 엄청난 돈을 쏟아붓고 있다는 것을 들춰 냈습니다. 이런 식으로 신문은 서로 다른 두 부문의 활동가들을 연결시켰습니다. 반전 운동가들을 노조활동가·소방수 들과 연결시킨 것입니다.

그런데 신문이 제공하는 일반적 그림(분석)을 다루는 글과 당면 쟁점을 다루는 글이 각각 지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예컨대, 영국에서 1980년대 후반은 사회주의자로 살아가기에 정말 힘든 시기였습니다. 사실, 부자가 아닌 이상 누구에게나 끔찍한 시기였죠. 광부 파업이 패배한 직후였습니다. 영국에서 17년 만에 일어난 가장 큰 계급 전투가 패배로 끝난 것입니다. 그래서 노동자들과 활동가들은 당장의 경험에서 교훈을 이끌어 냈습니다. 하지만 그 교훈은 “파업은 할 짓이 못된다. 파업을 한다 해도 그것은 지는 게임이다”라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신문은 활동가들에게 논쟁을 제기해야 했습니다. 활동가들과 노동자들의 결론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었기 때문에 신문은 그들에게 의존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변하고 있습니다. 자신감이 상승하면서 사람들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결론을 이끌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사회주의노동자당은 사람들에게 보고 기사를 되도록 많이 쓰라고 독려하려 합니다. 노동자들의 기고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들, 예컨대 학생들의 기고도 많이 받으려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보고 기사를 쓰면서 사회가 돌아가는 방식과 운동을 발전시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나름대로 연결점을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의 시야는 내부가 아닌 외부로 향합니다.

여성 노동자

이것이 어떻게 적용되는지, 그리고 투쟁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보여 주는 사례가 있습니다. 영국 북부에 있는 한 병원에서 매우 낮은 임금을 받는 여성 노동자들이 파업에 들어갔습니다. 우리는 그 소식을 듣고 기자 한 사람을 취재하러 보냈습니다. 그가 취재해서 보낸 글에서는 그 여성 노동자들의 정서가 흠뻑 묻어 나왔습니다. 그들은 끔찍한 저임금을 받았습니다. 그들의 불만은 수많은 노동자들이 점점 피부로 느끼고 있었던 불만이었습니다. 삶이 더 각박해지고 있다는 느낌. 직장에서 느낄 수 있는 작은 행복조차 박탈당하고 있고, 이제는 하기 싫은 일을 더 많이 해야만 한다는 느낌. 삶이 망가지고 있다는 느낌. 환자 돌보는 일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회계 업무에만 능한 정장 차림의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병원을 장악했다는 느낌. 그러던 어느 날 더는 못 참겠다며 파업을 결정한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 그리고 파업을 통해 그들이 느꼈던 해방감도 기사에 반영됐습니다. 만약 이것으로 끝이었다면 그 기사는 단지 사람들이 한 번 읽고 감동받을 수 있는 흥미로운 한 편의 기사로 끝났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신문은 여러 군데에서 팔렸고, 특히 병원에서도 팔렸습니다. 약 3주 뒤에 우리는 영국의 다른 지역에 있는 병원에서 일어난 또 한 건의 파업 소식을 접했습니다. 그 병원에도 앞서 얘기한 병원 노동자들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여성 노동자들이 있었습니다. 아무튼 우리는 다시 기자 한 사람을 보냈는데, 앞서 말한 병원과 똑같은 그림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매우 중요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이번 경우에는 노동자들 가운데 한두 명이 어디에선가 〈소셜리스트 워커〉 신문을 구입했던 것입니다. 병원이 아니라 거리 가판에서 구입했습니다. 그들은 앞서 말한 병원 노동자들의 파업에 관한 기사를 읽었고, 동료들에게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런던 북부의 병원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그들은 이런 문제들을 가지고 파업을 했다더라.”

이렇게 신문은 한 병원의 교훈을 다른 병원에 이식했던 것입니다. 이를 통해 신문 제작, 보고, 판매 활동이 어떻게 투쟁을 보급시키는 데에 이바지할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물론 두 병원의 사례를 소개한 각각의 호(號)에는 전쟁 관련 기사도 실렸습니다. 노동자들 가운데 일부는 전쟁에 반대했고, 아주 소수는 전쟁을 강력히 지지했으며, 대부분은 이도 저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전쟁을 분명히 반대하지 않는 노동자들도 우리 신문이 그들의 투쟁에 관한 진실을 보도했기 때문에 우리 신문을 존중했습니다. 덕분에, 전쟁에 반대하는 노동자들은 아주 쉽게 주장할 수 있었습니다. “당신의 투쟁에 관해 진실을 말하는 신문은 오직 〈소셜리스트 워커〉뿐이라는 것은 당신도 경험을 통해 알지 않느냐? 그렇다면 전쟁에 관해서도 〈소셜리스트 워커〉가 진실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잠깐 한 가지 쟁점을 짚고 넘어갈까 합니다. 하나는 신기술의 시대에 신문은 과거의 유물이라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사실, 사람들은 여전히 신문을 사서 읽으며, 정보를 얻는 수단으로 신문을 더 선호합니다. 왜냐하면 신문은 직장이나 지하철 같은 장소에서도 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터넷은 신문을 대체할 수 없습니다. 물론 인터넷은 매우 유용한 정보 검색 도구입니다. 저 자신도 〈소셜리스트 워커〉에 기사를 쓰기 위해 인터넷을 자주 이용합니다.

하지만 문제도 많습니다. 아마 여러분도 이런 경험을 많이 하셨을 겁니다. 괜찮다 싶은 글을 하나 발견했는데, 알고 보니 누군가가 사실 확인도 하지 않고 단지 자기 생각을 끄적거려 인터넷에 올렸는데 그 내용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포장되는 경우를 보셨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주의 신문에는 정보를 중앙으로 수집하고 사실 관계를 확인하는 편집 부서가 필요한 것입니다. 2월 15일 직후에 우리는 그 날의 국제 시위를 보도하기 위해 〈소셜리스트 워커〉 호외를 냈습니다. 그 호외를 읽지 않고서는 그 날 일어난 일을 정확히 알아 낼 방법이 없습니다. 아니, 한 가지 방법은 있습니다. 한 주 내내 인터넷을 검색하고, 세계 곳곳의 활동가들에게 전화를 걸고, 사실을 확인하고, 보고 내용을 수집하고, 그렇게 입수한 정보들을 하나의 완성된 그림으로 모아 붙이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더라도 제가 저번 토론회에서 말씀드린 한 가지 정보만큼은 결코 입수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영국의 380개 작업장에서 반전 행동이 있었다는 정보 말입니다. 우리 자신은 오직 SWP 자체의 네트워크를 통해서 이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인터넷

이 모든 과정은 오직 신문을 판매할 때만 일어날 수 있습니다. 사회주의 신문을 판매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운동으로 생겨난 각각의 네트워크 안에서 신문을 판매하는 방법입니다. 여러분이 친구들이나 직장 동료들과 반전 활동을 하고 집회에 함께 나간다면 그것으로 작은 네트워크가 존재하는 셈입니다. 그러한 네트워크 안에서 사회주의 신문을 사람들에게 판매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네트워크 강화에 결정적 구실을 합니다. 신문에 담긴 사상을 사람들과 토론하면서 네트워크가 강화됩니다. 그리고 신문을 판매하면서 돈이 걷히고, 그 돈으로 다음 호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네트워크의 조직이 강화됩니다. 그것은 볼셰비키가 경험했고 우리도 더 작은 규모로 경험하는 것을 가능케 합니다. 즉, 한 노동자가 자신의 공장에서 겪은 일을 기고하면 그의 글이 실린 신문을 바로 그 공장으로 가져가서 다른 노동자들에게도 판매하고, 그럼으로써 활동가 네트워크를 확대하는 것입니다.

신문을 판매하는 다른 방법은 공개 판매입니다. 영국에서 우리는 작업장 앞에서, 고등학교 앞에서, 그리고 당연히 거리에서 신문을 팔았습니다. 공개 판매에 관해서만 몇 가지 언급하겠습니다. 공개 판매의 중요성은 앞서 언급한 병원 노동자들의 사례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두번째 병원의 노동자들은 공개 판매에서(어딘지는 알 수 없습니다) 신문을 샀습니다. 그런데 공개 신문 판매에 관한 모종의 풍자가 하나 있습니다. 요컨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안녕하세요. 이거 신문이에요. 하나 사세요”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문 판매가 아니라 고문입니다.

영국에서 우리는 공개 판매를 모두 캠페인 속에서 운영합니다. 그래서 예컨대 9·27로 가는 과정에 열리는 공개 판매라면 “9·27에 함께 가요”를 가장 큰 초점으로 내세울 것입니다. 리플릿, 팻말, 포스터, 배너 등으로 도배한 가판대에 도서 판매 코너도 갖추고, 한 사람은 메가폰으로 특정 쟁점에 관해 30초 가량 짧은 연설을 하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서명판을 하나씩 들고 서명을 받는 식으로 말입니다. 서명 운동의 쟁점은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파업 노동자들에 대한 연대 서명일 수도 있고, 반전 서명일 수도 있으며, 해당 주간에 적절한 쟁점은 무엇이든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사람들이 서명에 동참하거나 리플릿을 가져가려고 가판에 들르면 우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소셜리스트 워커〉 신문을 위한 기부금을 받고 있습니다. 이 신문 읽어 보셨습니까?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이 어디서 일하는지 물어 보고, 토론도 해 보려 합니다. 신문 기사 중에 그들이 관심 가질 만한 것이 있으면 보여 줍니다. 영국의 신문 공개 판매에서는 이런 식으로 신문이 팔립니다. 거리 가판이든, 작업장 앞의 공개 판매이든, 학교 앞 공개 판매이든 마찬가지입니다. 공개 판매는 규모가 크고 생기 발랄하고 다루는 쟁점이 시의적절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만 신문 판매는 운동의 중요한 일환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습니다.

운동 내부에서, 그리고 활동가와 노동조합원들 사이에서 〈소셜리스트 워커〉의 지위는 더 향상됐습니다. 사람들이 우리의 주장에 의존하기 때문입니다. 소방수 파업은 노조 지도부의 배신 때문에 패배로 끝났습니다. 소방수들과 그 밖의 노동자들은 뭔가 설명을 원했는데, 〈소셜리스트 워커〉에서 그것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또 독자 기고를 통해 찬반 의견이나 추가 정보를 제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점차 〈소셜리스트 워커〉를 그들 자신의 신문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신문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일 때 그들은 신문의 정치도 자신의 정치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사례를 들고 끝내겠습니다. 런던의 어느 우체국에서 일하는 동지가 있는데, 그는 매주 〈소셜리스트 워커〉 40부를 직장에서 판매하는 동지입니다. 그 우체국이 워낙 큰 곳이라, 여러 출입구에서 신문을 판매하는 동지들은 그보다 더 많은 판매 부수를 자랑합니다. 9·11 테러가 일어났을 때 어느 골수 우익 노동자가 그 동지에 대한 거짓말을 퍼뜨렸습니다. 그는 매우 중요한 노조 활동가인 우리 동지가 뉴욕의 세계무역센터가 붕괴했을 때 환호성을 질렀다고 말했는데 그건 거짓말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측으로서는 그 당시의 분위기에 힘입어 우리 동지를 해고하고 노조를 약화시킬 수 있는 좋은 빌미가 생긴 셈이었습니다. 비록 그 동지는 노조 활동가로서 어느 정도 존경받고 있었지만, 그 사실이 그를 구해 주지는 못했습니다. 그를 구해 준 것은 바로 그에게서 신문을 샀던 독자 40명의 즉각적인 대응이었습니다. 그들은 “우리는 마크(그 동지의 이름입니다)의 정치적 견해가 무엇인지 그의 신문을 통해 익히 알고 있다. 그가 추구하는 것은 테러가 아니라 대중 행동이다.”라며 즉시 반박했습니다. 이 덕분에 대다수의 노동자들이 마크 편이 돼 줬습니다. 바로 그 40명이 그 우체국에서 유럽사회포럼에 참가하는 노동자 대열의 주축이 될 것입니다. 바로 그 40명에게서 인종 차별에 맞선 가장 강력한 주장이 나오며 경영진에 맞선 가장 강력한 주장이 나옵니다.

이 모든 것들은 사회주의 신문이 어때야 하는지, 왜 우리가 신문을 판매하는지, 신문이 투쟁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사례들일 뿐입니다.

질문과 답변

SWP 당원들은 〈소셜리스트 워커〉 신문에 어떻게 기고를 하고 있는가? 기고가 많이 들어오는가? 기자 수는 충분한가?

A 〈소셜리스트 워커〉에 기고할 수 있는 방법은 많습니다. 호마다 한 면 전체를 독자 편지에 할애하는데 우리는 더 많은 편지를 받고자 합니다. 또, 언제나 두 면 이상은 영국 곳곳에서 일어나는 파업, 시위, 대학 내 집회 등에 관한 보고 기사로 채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영화나 책에 관한 평론을 싣는 지면도 있는데, 여기에도 많은 사람들의 기고를 적극 권장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많은 동지들에게 더 긴 정치 기사를 쓰도록 권유합니다. 단지 기사를 쓰는 것만이 기자의 역할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이 신문에 기고하도록 독려하는 것도 기자의 역할입니다. 그런데 〈소셜리스트 워커〉에 충분히 많은 사람들이 기고하는 것은 아닙니다. 거기엔 이유가 있습니다. 사는 것은 힘듭니다. 특히 노동자들은 피로에 쩔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사를 쓸 여유가 없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 쉬운 방법을 찾습니다. 우리는 전화로 그들을 인터뷰해서 그 내용을 기사화합니다. 기고가 적은 이유는 또 하나 있습니다. 우리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개인의 경험은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주입받으며 자랐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 직장의 현실이 아무리 비참하더라도 그것은 자신만의 하찮은 경험이고 아무도 자기 얘기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사람들이 하찮게 여겼던 경험을 소재로 쓴 글이 가장 빼어나고 통찰력 있는 글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체제의 부패를 신랄하게 고발한 훌륭한 추적 기사들은 종종 사무직 노동자들이나 개인들이 부조리를 목격하고 제보한 것을 바탕으로 쓴 것들입니다. 그래서 SWP의 기자들은 뭔가 소식이 들려오면 즉시 취재할 수 있도록 항상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글을 쓰도록 독려하고 그들 자신의 경험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해시키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합니다.

사회주의 신문은 기존의 매스미디어(대중 매체)에 비하면 영향력이 매우 작다. 더 많은 대중에게 다가가려면 사회주의 신문도 한국의 〈한겨레〉 신문이나 영국의 〈가디언〉처럼 매스미디어가 돼야 하지 않을까? 물론 소위 ‘진보적 매스미디어’들도 시장 체제에 순응하다 보니 지나치게 온건하거나 기회주의적인 면이 없지 않지만... 아니면 그러한 진보적 매스미디어를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A 우리가 매스 미디어를 활용할 수 있는가? 매우 제한된 범위에서는 가능합니다. 영국 언론은 아프가니스탄 공격에 반대하는 초창기의 반전 시위들을 외면했습니다. 하지만 운동이 성장하자 언론도 영향을 받았습니다. 비록 대부분의 언론은 전쟁에 찬성했지만 그들조차 현실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었습니다. 언론이 부르주아 민주주의 사회에서 조금이나마 그 존재 가치를 인정받으려면 적어도 진실의 일부분은 반영하는 것처럼 보여야 합니다. 따라서 특정 시기에는 이와 같은 언론의 모순 때문에 발생하는 틈새를 통해 우리 주장이 언론에 실리기도 합니다. 또한 부르주아 언론의 기자들 가운데서도 진지하고 사명감 있는 사람들이 간혹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편집자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체제에 환멸을 느낀 나머지 세계의 참모습을 보도하겠다고 마음먹을 수 있습니다. 때때로 그들은 TV나 신문 지면의 한 구석에 자기 기사를 끼워넣는 데 성공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영국의 타블로이드 신문인 〈데일리 미러〉는 한때 전쟁에 반대했지만 지금은 경영진들이 다시 오른쪽으로 되돌려놓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스 미디어를 활용하는 것에 의존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는 단편적인 정보를 알리는 것조차 쉽지 않습니다.

〈소셜리스트 워커〉 신문이 나오는 주기, 판매 부수, 가격은? 신문을 판매하려다가 저지당한 적은 없는가? 신문을 굳이 돈 받고 판매하는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없는가?

A 제가 알기로 〈소셜리스트 워커〉의 발행 부수는 3만 부입니다. 주마다 나오고, 가격은 80펜스[약 1500원]입니다. 여러분에게 팔려고 가져온 것은 없습니다.

‘왜 신문을 판매하느냐? 공짜로 배포하면 안 되느냐?’ 하지만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뭔가 쓸 만한 것을 얻으려면 돈을 내야 한다는 점을 사람들은 쉽게 이해합니다. 또, 사람들은 신문 제작에 돈이 필요하다는 것도 이해합니다. 신문 판매 수입만으로 이윤을 남기는 신문은 세계 어디에도 없습니다. [부르주아] 신문사들은 기업 광고로 수익을 챙깁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신문을 판매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겐 돈이 필요합니다. 뿐만 아니라, 신문을 돈 주고 사는 것은 정치적 연대의 표현입니다. 돈 주고 신문을 사는 사람은 신문을 진지하게 여기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희는 신문을 판매할 뿐 아니라 해마다 신문을 위한 지지금 모금 캠페인을 벌입니다. 부르주아 언론은 기업들의 후원을 받지만 우리에게는 평범한 노동자, 학생 독자들이 전부라고 설명하면서 말입니다. 이렇게 설명하면 누구나 이해합니다.

경찰

신문 판매를 저지당한 경험이 있느냐면, 경찰이 가판을 방해하는 경우가 아주 가끔 있습니다. 흔치 않은 일인 데다 그리 심하게 괴롭히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그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우리는 지역 수준에서 공동전선을 펼치는 것으로 대응합니다. 즉, 우리는 〈소셜리스트 워커〉의 내용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그런 신문이 팔려야 하고 누구나 그런 신문을 판매할 권리가 있다는 것에 동의하는 사람들과 공동으로 대응합니다. 어느 토요일, 경찰이 런던 서부에서 우리 가판을 제지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자 우리는 그 동네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연락했습니다. 환경단체, 노조, 노동당 지부 등 다양한 단체와 개인들에게 연락해서 그 다음 토요일에 우리의 가판 현장으로 나오게 했습니다. 그들을 우리 가판에 동참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각자 자기 가판을 차리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말하자면 이것은 공동전선입니다. 우리는 각자 다른 정치적 견해를 내세웠지만,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다 함께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러니 경찰도 기가 질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 혼자서 가판을 할 때는 경찰이 우리를 만만하게 볼 수 있었지만 바로 옆에 노동당 가판이 있고, 노조 간부들도 나타나 있고, 지역 신문 기자들도 와 있는 상황에서는 경찰도 섣불리 우리를 괴롭힐 수 없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그런 문제가 생길 때마다 우리가 적용해야 할 중요한 원칙은 바로 대응의 폭을 넓히는 것입니다. 즉, 일개 사회주의 조직으로서가 아니라 운동의 일부로서 대응해야 합니다.

한편, 다른 단체의 활동가들이 우리에게 신문 판매를 자제해 달라고 요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마 여러분도 그런 경험을 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그 때 우리의 대응은 상황에 따라 매우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시위나 집회 현장에서 우리에게 그렇게 요구하는 사람들은 사실, 신문 판매 자체보다는 우리의 정치적 견해를 문제 삼는 것입니다. 이 경우 우리는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모인 집회에서는 누구나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자유롭게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매우 굳건하게, 그러나 매우 우호적으로 주장해야 할 것입니다. 또 이런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영국의 전쟁저지연합도 가끔 공개판매를 하는데, 활동가들이 이렇게 문제 제기할 수도 있을지 모릅니다. “우리는 전쟁에 반대하는 간행물만 전시하고 싶은데 왜 〈소셜리스트 워커〉 신문까지 함께 진열해야 하는가?” 우리에게 이것은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우리 역시 전쟁저지연합의 일원으로서 전쟁을 저지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 진열 판매를 하고 있기 때문에 굳이 진열대에서 우리 신문을 판매할 필요는 없습니다. 신문의 역할은 전쟁저지연합의 공식 활동이 끝난 뒤에 사석에서 동료 활동가들에게 구입을 권유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지만, 영국에서 우리가 워낙 개방적이고 정직했기 때문에 실제로는 사람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야, 그냥 〈소셜리스트 워커〉도 함께 판매해라. 사람들이 보고 싶어할지도 모르잖아.” 그것은 우리가 그동안 매우 개방적이었고, 정직했고, 또 공동전선을 건설하는 데 헌신한 덕분입니다.

기존의 사회주의 신문도 남성 중심적이다. 여성들의 신문도 필요하지 않은가?

A 영국에는, 여성 신문은 없지만 여성 월간지는 있습니다. 여성 생활 잡지인데 값도 비쌉니다. 〈보그〉, 〈코스모폴리탄〉 등이 그런 잡지입니다. 이런 잡지들이 등장하게 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 역사적 기원은 1970년대 말에 여성 운동이 겪은 쇠퇴에 있습니다. 여성 운동이 쇠퇴하면서 여성 해방 사상은 점차 여성의 중간계급 진출 사상으로 대체됐습니다. 그래서 중간계급 페미니즘이 여성 운동을 지배하게 된 것입니다. 앞서 말한 생활 잡지들은 그 결과물입니다. 그렇다면, 진보적 여성 신문을 제작하는 것은 어떨까요? 영국의 경우, 저는 〈소셜리스트 워커〉 외에도 그런 신문을 많이 만들고 싶습니다. 영국에는 영어를 못하는 이민자들이 많습니다. 저는 〈소셜리스트 워커〉를 아랍어판, 알바니아어판 등 외국어판으로도 만들고 싶습니다. 러시아에서는 알렉산드라 콜론타이나 레닌 같은 볼셰비키가 노동계급 여성을 위한 신문을 만들었습니다. 당시 러시아는 매우 후진적인 사회였기 때문에 여성과 관련된 매우 구체적인 문제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주요 간행물인 〈프라우다〉 지면에서도 같은 문제를 다뤘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가 지닌 [물적·인적] 자원 등 구체적 조건을 고려해야 합니다.

남성 중심적?

그러나 저는 사회주의 신문이 남성 중심적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회주의 신문은 온갖 억압과 착취 문제를 고루 다뤄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면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종종 어떤 것을 집어넣고 어떤 것을 빼야 하는지에 관해 논쟁이 벌어집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신문을 자신의 것으로 인식하고 이러한 논쟁에 참가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신문이 어떤 문제를 충분히 다루지 않는다고 느끼신다면 신문에 기고하셔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신문에 빠져 있는 내용을 채워 주셔야 합니다. 우리는 논쟁을 장려함으로써 신문에 생명을 불어놓고자 합니다. 한 사람의 기자로서 저는 절대 화내지 않을 것을 약속합니다. 신문 기자들은 절대 화내지 않아야 합니다.

사회주의 신문도 편집 과정에서 편집자의 주관이 개입되기 때문에 공정하거나 정확할 수 없지 않은가?

A 사회주의 신문은 중립적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중립이 아니라고 해서 진실이 아닌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계급으로 갈라진 사회에서 진실은 중립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1984년 말 인도에서] 유니언 카바이드 회사 때문에 수천 명이 독극물 중독으로 사망한 보팔 참사를 생각해 봅시다. 유니언 카바이드는 자사가 안전을 소홀히 했음을 시인했지만, 또한 직원들을 고용하기 위해 이윤을 남겨야 했다고 덧붙였습니다. 여기서 진실이란, 한편으로 수천 명의 노동자들이 죽었고 다른 한편으로 경영진이 이윤과 안전 사이에서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진실은 유니언 카바이드가 사람을 죽였다는 것입니다. 중립성에 관한 부르주아적 신화는 진실을 흐리기 위한 것입니다. 부르주아 민주주의 사회에서 그것은 매우 교묘하게 이뤄집니다. 예를 들어, 부르주아 신문들의 파업 관련 보도를 떠올려 봅시다. 아마 헤드라인은 이렇게 뜰 것입니다. ‘기아차를 덮친 악재 ― 회사측은 4% 인상을 제안’ 그런데 뒤에 이런 말이 꼭 따라 붙습니다. ‘그러나 노조가 무리하게 20%를 요구.’ 바로 이것이 그들이 말하는 ‘중립성’입니다.

영국 SWP 당원들은 신문 판매에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가? 개인적으로 나는 신문을 파는 것이 쉽지 않다.

A 직장에서 신문을 판매하는 몇 가지 노하우를 알려드릴 수 있습니다. 예컨대 어떤 동지들은 직장에서 신문을 판매하다 들키면 경영진에게 요주의 인물로 찍힐까 봐 두려워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한 가지 방법은 신문을 잘 보이는 곳에 그냥 놔두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 누가 신문을 관심 있게 보는지 봐둡니다. 그리고 그 때 봐둔 사람을 퇴근할 때 만나서 신문을 파는 것입니다. 이런 방법은 얼마든지 더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신문 판매에 대해 더 일반적인 얘기를 할까 합니다. 먼저, 신문이 왜 중요한지 설명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하는 데 오늘 토론이 유익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음으로, 동지들에게 신문 판매를 위한 자신감을 줘야 합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왜 신문을 판매해야 하는지 토론하고 논쟁하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신문 판매가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사례를 통해 보여 주는 것입니다. 구체적인 사례 하나는 열 번의 추상적 논쟁보다 효과적입니다. 다른 동지들에게 신문 판매를 권유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스스로 신문을 판매하면서 모범 사례를 남기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진정한 사회주의자의 지도력입니다. 사람들이 미처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일을 해낼 수 있도록 자신감을 부여하는 것이 곧 지도력입니다. 이미 우리에게 좋은 사례들은 많습니다. 이번 토론에서 들었던 것처럼 기아자동차, 원진녹색병원, 그리고 거리 가판의 고무적인 사례들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것은 간단합니다. 우리는 기아자동차나 원진녹색병원의 사례와 같은 공개 판매가 더 많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공개 판매에 더 많은 동지들이 참여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