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 사퇴를 요구하며 인권위원직을 사퇴한 조국 교수(이하 존칭 생략)는 인기 있는 지식인 중 한 명이다. 

조국은 이명박 정부 들어 해마다 개혁 과제를 제시하는 책을 한 권씩 냈다. 특히 〈오마이뉴스〉 기자 오연호와 대담한 내용을 녹취한 신작 《진보집권플랜》(오마이북)은 이명박 정부를 교체하고 싶은 심정이 굴뚝 같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이 책은 그전에 낸 두 책(《성찰하는 진보》(지성사), 《보노보 찬가》(생각의 나무))의 요지를 반복하면서 2012년(또는 2017년)에 어떻게, 무슨 정책으로 정권을 교체할 것인지 다뤘다. 솔깃한 주제다.

그런데 그의 ‘플랜’은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우선, 그는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을 은근슬쩍 ‘진보’에 끼워 넣는다. 민주당·국민참여당과 진보세력이 “모두 넓은 의미에서는 ‘진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시종일관 ‘진보·개혁진영’을 한데 묶어 주어로 사용한다.

그러다 보니 부당한 서술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가령, “진보·개혁 진영이 두 차례 권력을 장악”했고, ‘진보·개혁 진영이 무상급식, 무상의료, 반값 등록금 등에 대해서 좌파, 포퓰리즘이라는 비난을 들을까 봐 포기했다’는 식의 서술 등이 그렇다. 

이것은 민주당·참여당에나 해당되는 말이지 진보세력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오히려 민주당과 진보세력은 노무현 정부 하에서 위의 개혁 과제를 놓고 서로 다른 계급을 대변해 투쟁을 벌였다. 

조국은 진보의 편에 서서 민주당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 논하는 게 아니라, 민주당과 진보진영의 계급적 차이를 흐리고 한핏줄 취급하며 공평무사한 조언을 하는 위치에 선다. 그래서인지 조국은 현 정부 들어 민주당이 보인 배신과 뒤통수치기를 거의 거론하지 않는다. 

노무현 정부를 “진보·개혁 정부”라고 부르는 것은 그 정부 아래서 투쟁한 사람들을 모독하는 것이다.

조국은 두 ‘민주정부’에도 매우 호의적이다. 그는 아쉬움을 표하기는 하지만, 두 정부가 꽤 많은 개혁을 이뤘다고 평가한다. 특히, 조국은 김대중·노무현 시절 (국가보안법 문제를 제외한) 정치적 민주화가 “만개”했다고 주장한다. 

이명박 시대에 노무현에게 향수를 느끼는 사람들이 적쟎지만, 진실을 직시해야만 진정한 대안을 창출할 수 있다. 2004년 탄핵정국 직후 열린우리당이 행정부와 입법부를 모두 장악했음에도 4대 개혁 입법은 누더기가 돼 좌초했다. 그후 FTA반대 시위는 원천봉쇄 됐으며, 이라크 파병도 계속됐고, 구속 노동자 수는 급증했다. 대중이 노무현 정부에 등을 돌린 까닭이다. 

 접착제 

조국의 ‘집권 플랜’의 종착지는 반MB민주연합 정부다. 그는 이를 위한 “접착제” 구실을 자처한다. 

그는 “장기적으로 ‘빅텐트’ 안에 다 들어가는 선택을 배제할 수는 없”다고 덧붙이지만, 당장은 2011년까지 “소통합” 하고 이후에 민주당부터 진보세력까지 모두 선거연합을 하자고 한다.

소통합은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이 합치고, 진보정치 세력이 합치는 방식”일 수도 있고, “민주당은 그대로 두고 민주당을 제외한 나머지 야당을 다 합치는 방식”일 수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민주연합 전략은 우파에 맞서는 효과적 대안이 되지 못한다. 

민주당은 이미 지난 대선에서 대중에게서 심판받았고, 아직도 의심받고 있다. 7·28과 10·28 재보궐 선거에서 대중이 민주당에 보낸 싸늘한 시선을 떠올려 보라. 무엇보다 그들은 경제 위기 고통전가의 공범이다. 기륭전자 노동자들이 겪었던 고통과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겪는 서러움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에 그 뿌리가 있다. 

그런데도 진보세력이 민주당과 한 배를 타는 것은 진보의 신뢰를 실추시킬 뿐이다. 무엇보다 우파를 막으려면 민주당과 협력해야 한다는 논리에 압도돼, 노동계급 투쟁의 발목을 잡게 될 것이다. 최근 KEC 파업에서 민주당이 점거파업을 중단시키고 민주노총·진보정당 지도부가 이에 동조한 것은 계급 동맹의 불길한 미래를 보여 준다.

 진보의 성찰 과제  

조국은 집권을 위해 진보진영에 몇 가지 변화를 촉구한다. 그 핵심은 북한을 대하는 태도와 민주노총과의 관계 문제다. 사실상 진보신당이 민주노동당과 갈라서면서 내세운 핵심 명분 즉, “종북주의”·“민주노총당” 반대와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물론 민주노총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이나 이주노동자와 연대하는 데 소홀한 것이나, 진보진영 내 자주파가 북핵에 무비판적이고 북한 인권 문제를 회피하는 태도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조국이 이 문제들에 내놓는 대안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가령, 조국은 2007년 민주노동당 지도부가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된 최기영 당원을 출당시켰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가보안법 탄압에 투항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조국은 “정규직은 이미 ‘강자’”라며 정규직이 비정규직에게 임금을 양보하는 사회연대전략을 주문하기도 한다. 하지만, 순이익 2조 9천억 원을 낸 정몽구가 비정규직 정규직화에 돈을 투자하라고 요구하며 투쟁하는 것이 대안일까, 아니면 정몽구 월급의 새발의 피도 안 되는 정규직 노동자가 자기 월급을 쪼개는 것이 대안일까. 

“말랑말랑한 힘”

조국은 진보가 구체적인 정책이 없어 무능하다고도 비판한다. 그러나 그가 다루는 모든 분야에서 엄연히 진보적 정책과 대안이 존재한다. 진정한 문제는 그가 당장 실현가능하고 손에 닿는 정책만을 유효한 대안으로 취급한다는 데 있다. 

그래서인지 조국은 종종 자본주의 체제의 논리에 지나치게 타협하는 주장을 한다. 

가령, 조국은 학벌체제를 비판하지만 동시에 ‘서울대 폐지’와 대학 평준화에 사실상 반대한다. “월드컵 축구 32강에 걸맞는 ‘세계 32강 대학’이 몇 개는 있어야” 하고, 한국 대학들이 “세계의 대학과 경쟁하는 글로벌 대학으로 인정받기 위해 진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WTO나 FTA에 대해서도 “한국이 ‘통상국가’라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며,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해 거부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주한미군 주둔과 한미동맹도 “국제역학관계”상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한미동맹의 ‘평등화’가 필요하다는 전제 하에). 

2004년에 진보진영이 국가보안법 완전 폐지를 주장한 것도 불필요하게 “원리주의”적인 행동이었다고 평가하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모두 전환하면 새로운 인력의 취업이 매우 어려워진다는 기업주들의 논리를 수용하기도 한다.

조국은 “혹자는 나에게 “개량주의”라는 딱지를 붙이겠지만, ‘개량’마저 성취할 수 있는 계획과 능력도 없이 강경한 구호만을 외치는 것은 진정한 진보가 아니”라고 주장하며, “말랑말랑한 힘”을 강조한다. 그래서 그의 책 어디서도 계급투쟁의 관점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개혁주의자와 혁명가들의 진정한 차이는 개혁을 성취하는 방식에 있다. 개혁은 투쟁 없이 성취하기 어렵다. 대중의 필요를 우선에 놓고 그것을 성취하려고 투쟁하는 것이 아니라, ‘타협가능한 선’에 맞춰 요구를 제한하면 개혁의 취지는 훼손되기 십상이다. 이것이 바로 서구 사회민주주의 정당들과 노무현 정부가 개혁에 실패하면서 급속히 지지를 잃은 이유다. 

이것은 이명박 정부에 맞선 대안이 어떠해야 하느냐는 문제를 제기한다. 노동자들이 사기를 회복하며 곳곳에서 투쟁을 벌이는 지금, 이 투쟁을 지원하면서 진보적 과제를 쟁취하는 데 힘을 모으는 진정한 ‘진보 플랜’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