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미국의 대북 압박은 제2차세계대전과 한국 전쟁 후 미국 제국주의와 소련 제국주의 간 냉전 경쟁 체제의 일부였다. 미국의 북한 봉쇄는 중국과 소련을 포함한 ‘동방 진영’ 봉쇄의 일부였다. 

그러나 미국은 1979년 중국과 국교를 정상화하고 1989~91년 소련과 동구권 스탈린주의 정권이 붕괴한 뒤에도 북한 압박을 멈추지 않았다. 왜 초강대국 미국은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를 계속 압박하는가?  

그것은 냉전을 전후로 경쟁자들에 직면한 미국 제국주의가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서 자기 위치를 유지 확장하려는 노력과 밀접히 연관된 것이다. 

12월 6일 한·미·일 3국 외교장관회담

전후 미국 자본주의는 압도적 우위를 누렸다. 최대 경쟁자인 소련 제국주의조차 미국의 경쟁력을 따라올 수는 없었다. 그러나 1960년대부터 미국은 서방 진영에서 심각한 도전을 받기 시작했다. 

미국의 군사적 보호 아래 군비 지출을 최소화할 수 있었던 독일과 일본은 세계 시장에서 미국 제조업의 심각한 경쟁자로 등장했다. 베트남 전쟁의 수렁은 미국 군사력의 한계를 보여 줬다. 

이런 상황에서 1970년대 초 브레튼 우즈 체제가 무너지고 전 세계적 불황이 닥쳤다. 1980년에 세계경제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퍼센트(1945년에는 40퍼센트)로 추락했다. 

베트남 전쟁에서 패배한 기억이 아직 생생하던 1982년, 미국 경제가 또 한 번 심각한 불황에 직면했을 때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의 세기’가 종말을 맞이 하는 것이 아닌지 조심스럽게 전망했다.  

미국 지배자들은 산업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경쟁국에 대한 통상 압력을 강화하는 등 미국 자본주의의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국제적 조건을 마련하려 했다. 

그러나 미국 정부의 처지에서 좀더 쉬운 대안은 미국 군사력의 우위와 미국에 군사적으로 종속돼 있는 잠재적 경쟁자들의 처지를 이용해 미국의 우위를 지키는 것이었다. 일본의 맹렬한 추격 앞에 미국 자본주의에 대한 회의론이 최고조에 달했던 1980년대 초 레이건이 제2차 냉전을 부르짖은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그러나 1989~91년 소련과 동구권 스탈린주의 정권이 붕괴하고 미국이 동맹들에 규율을 부과할 능력이 약화될 듯하자 미국 제국주의는 방향 전환을 해야 했다. 

공통의 적

미국 지배자들은 동맹들을 묶어 둘 공통의 적을 만들고, 그들이 중국, 러시아, 인도 등 동맹 체제 밖에 있는 (준)열강과 (미국을 대체할 가능성이 있는) 관계맺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이간질하는 정책을 폈다.

1991년 걸프전, 1999년 유고슬라비아 공격과 이른바 ‘인도주의 개입론’ 등은 전자의 대표적 사례였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미국 정부는 1980년대 중반부터 부각된 북한 핵개발 문제를 1990년대 초에는 이른바 동아시아 지역의 ‘평화’를 위협하는 최대 위협 중 하나로 격상시켰다. 

미국 정부가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와 밀로셰비치의 세르비아를 히틀러에 버금가는 위협으로 황당하게 과장한 것처럼 1991년 걸프전 승리 직후 미국 정부는 북한이 후세인 다음 위협이라고 주장했다. 

북한 핵 위협은 시간이 지날수록 미국의 동아시아 동맹인 한국·일본과 떠오르는 열강이자 북한 후견인인 중국 사이의 관계를 껄끄럽게 만드는 중요한 수단이 됐다. 

2000년대 초반이 됐을 때 미국 패권을 제약하는 세계 체제의 원심력은 여전했다. 1990년대 일본과 독일 경제가 정체한 덕분에 미국은 선진 국가들 중에서 여전히 경제적으로 가장 몸집이 컸다. 그러나 과거의 압도적 지위를 회복하지는 못했다(세계 경제의 약 25퍼센트).  

또, 동맹국들을 성공적으로 미국 군사 동맹의 틀 안에 묶어 놓았지만 동맹국과 미국 간 경쟁적 성격은 여전했다(2000년대 초 미국과 유럽연합은 철강과 항공에서 대형 무역 전쟁을 치렀다). 

새로운 자본축적 중심지(특히 중국)의 등장은 미국 자본주의 중심 질서를 뒤흔들 잠재력을 가진 듯이 보였고, 미국 동맹들과 중국 간 경제 관계가 갈수록 긴밀해지는 것은 우려스러웠다.

동아시아적 맥락에서 보면, 일본·한국·타이완의 제조업체들은 모두 중국을 주요한 해외 생산 기지 중 하나로 삼았다.  

12월 7일 미국 제국주의의 수렁 아프가니스탄 최전선을 방문한 미 국방장관 로버트 게이츠

중국은 한국과 타이완의 최대 교역국이자 일본의 최대 투자처 중 하나가 됐다. 덕분에 1990년대부터 북핵 문제 등을 놓고 한국, 일본과 중국이 엎치락뒤치락하는 동안에도 이들 나라 간 경제적 통합은 가속화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했다. 

쐐기

2001년 9·11 테러를 빌미로 부시 정부가 시작한 ‘테러와의 전쟁’, 이라크 전쟁, 이란 ‘핵 위기’는 중동 석유에 대한 통제권을 통해 미국 패권을 제약하는 경향에 쐐기를 박으려는 시도였다. 한 네오콘 사상가의 표현을 빌리면 “세계에 [미국 중심의] 질서를 부여하려는” 시도였다. 

이것이 얼마나 처참하게 실패했는지, 왜 실패했는지 여기서 반복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 실패의 가장 중요한 결과는 미국 제국주의가 또 하나의 전선에 개입할 능력과 의지를 현저히 약화시킨 것이다. 

북한 문제도 이런 변화에 영향을 받았다. 2003년 바그다드가 함락됐을 때만 해도 승승장구하는 미국이 북한을 다음 표적으로 삼을 거란 추측이 무성했다. 

그러나 2004년 4월부터 이라크 팔루자와 나자프에서 동시에 대규모 반점령 항쟁이 발생하고 미군이 제2의 베트남 수렁에 빠진 것이 명백해지자 부시 정부는 북한 문제를 더 키우지 않고 ‘관리’하면서 시간을 벌어야 했다.

물론 대북 압박을 푸는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거부했다. 

아이러니이게도, 부시 정부는 이라크 전쟁으로 압력을 넣으려 한 표적 중 하나인 중국 정부의 힘을 빌어 북한의 반발을 관리해야 했다. 

집권 초기 중국을 ‘잠재적 적성국가 1위’로 지목했던 부시 정부는 나중에 역대 미국 정부 중 중국 정부와 (겉으로나마) 가장 협력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했다.   

연평도 사태 후 오바마 정부의 주된 대책은 중국에 북한을 통제하라고 압력을 넣는 것이다. 이것은 오바마 정부가 여전히 아프가니스탄에서 승리 비슷한 것을 얻으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고, 경제 위기로 재정적자가 갈수록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새로운 전선을 여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처지를 반영한 것이다.

미국이 이렇게 아쉬운 처지임을 잘 아는 브레진스키는 연평도 사태 직후 〈파이낸셜 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오바마가 중국에 협조를 요청할 때 “미국의 (일방적인) 요구여서는 안 되며 질책이나 경고여서도 안 된다”고 조언했다.  

그러나 오바마 정부는 중국의 신경을 한껏 긁은 대규모 군사 훈련이 끝나자마자 중국 정부를 타박하는 한미일 외무장관 연합 기자 회견을 열었다.

견제

이것은 우선, 오바마 정부에 중국을 강제할 다른 지렛대가 없기 때문이다. 〈워싱턴 포스트〉는 “미국 정부는 중국 정부에 압력을 넣을 방법이 별로 없다. 미군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발이 묶여 또 다른 전쟁을 바라지 않는 것을 중국 정부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좀더 근본적 이유는 다른 잠재적 경쟁자와 비교해 중국이 제기하는 도전이 복잡하고 위협적이어서 미국이 이번 사건을 중국을 견제하는 기회로 활용하려는 유혹을 떨치기 어렵기 때문이다.

최근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미 국무장관 힐러리 클린턴의 고민 ― “도대체 우리 돈줄[중국]을 어떻게 다뤄야 할까?” ― 이 보여 주듯이 미국 정부와 경제는 중국이 미국 국채를 대량으로 사들이는 것에 의존한다. 중국은 미국 다국적 기업들의 주요 하청기지 중 하나이기도 하다. 

동시에 미국 지배자들은 무섭게 성장하는 중국이 기존 미국 중심 질서를 뒤흔드는 축으로 성장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중국은 경제 위기 상황에서 예외적으로 9퍼센트 이상의 고도성장을 지속하고 있고, 이것은 어려움을 겪는 다른 나라들에 대한 중국의 발언력을 높일 것이다. 

더구나, 유럽과 일본 등과 달리 중국은 미국의 군사적 동맹으로 묶여 있지 않기 때문에 미국이 동맹들을 상대로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카드가 먹히지 않는다.  

미국 강경파 인사인 로버트 케이건은 미국이 곤경에 빠진 사이 조용히 영향력을 확대하는 중국 지배자들에게 약이 바짝 오른 미국 지배자들의 심정을 잘 표현했다. “중국 정부는 미국 해군이 보호하는 세계 주요 해상 무역로를 공짜로 이용한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을 안정시키려고 고군분투하는 것을 팔짱 끼고 지켜보고 있다. 그들은 상황이 안정되면 그곳의 천연자원을 채취하려 달려들 것이다.”

경제 위기는 중국 자본주의와 미국 자본주의 간 온갖 갈등들 ― 무역수지 적자, 환율 등 ― 을 심각한 정치적 문제로 증폭시킬 가능성을 높였다. 

올해도 중국 정부가 남중국해 섬들의 영토 분쟁 문제를 중국의 ‘핵심 이익’ 중 하나로 지정하고 지역 약소국들을 압박하자 오바마 정부는 바로 이 문제에서 이 나라들의 후원자를 자처하고 나섰다. 또, 댜오위다오/센카쿠 문제가 미일 방위조약의 대상임을 명백히 했다.

따라서 앞으로도 북한 문제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 간 줄다리기는 긴장과 완화를 반복할 것이다. 두 나라 간 갈등의 근본적 성격을 고려할 때 이들이 자발적으로 ‘해피 엔딩’을 만들려고 노력할 거라 기대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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