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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는 왜 이토록 불평등할까?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지독하게 불평등하다는 것은 거의 상식에 가깝다. 많은 사람들은 특히 부의 불평등에 대해 심각한 박탈감을 느끼고 있다. 보수 우파 신문인 〈조선일보〉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90퍼센트 이상의 사람들이 빈부격차가 커졌다고 생각한다. 또, 77퍼센트의 사람들은 빈부격차가 해결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회의적 반응을 보였다.

실제로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1979년 이래로 빈부격차가 가장 심화됐다. 또, 1999년 11월에 류정순 씨(상명대 강사)가 발표한 우리 나라의 빈곤율은 심각하다 못해 끔찍하다. 1인당 최저 생계비(월 23만 원) 이하로 살아가는 빈곤 인구수가 1천만 명을 넘어 빈곤율이 18퍼센트에 이른다.

찰스 디킨즈의 《올리버 트위스트》에나 나올 법한 빈민굴이 고층 빌딩들과 나란히 존재한다. 하룻세가 4천∼7천 원인 쪽방이 서울에만 5천∼6천 개가 넘는다.

그러나, 빈곤의 다른 한편에는 부의 거대한 증가가 있다. 부자들은 주식 투자 등을 통해 전보다 더 많은 부를 축적했다. 지난해에 현대 그룹의 정몽준은 현대 그룹 직원들에게 액면가 5천 원짜리 주식을 5만 2천 원에 양도해 1천9백82억 원을 벌었다. 하루에 5억 4천만 원을 번 셈이다.

부의 불평등 심화는 비단 우리 나라만의 현상은 아니다. 세계적 차원에서도 거대한 부의 불평등이 존재한다.

1998년 유엔 인간개발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최고의 갑부 225명은 지구 인구의 절반 가까운 사람들이 벌어들이는 것보다 더 많은 재산을 갖고 있다. 겨우 225명이 1조 달러가 넘는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 이것은 세계 인구의 가장 가난한 47퍼센트(약 25억 명)의 연간 수입 총액과 맞먹는다. 세계 최고의 갑부들인 빌 게이츠와 월마트의 월튼 일가, 투자가인 워렌 뷰펫은 세계의 극빈국들이 가진 부의 총액보다 더 많은 돈을 갖고 있다.

이토록 어마어마한 부는 상상할 수조차 없는 비참한 가난과 공존한다. 10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생존에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필수품조차 얻지 못하고 있다. 개발 도상국의 44억 인구 가운데 3분의 2는 하수도 시설 같은 기본 위생 설비조차 갖추고 있지 못하다. 3분의 1은 안전한 식수를 공급받지 못하고 있다. 4분의 1은 형편 없는 주택에서 살고 있다. 5분의 1은 영양실조에 걸려 있다. 5분의 1은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UN은 이들에게 기본적인 교육, 보건, 식수 등을 제공하는 데 4백억 달러가 필요하다고 추산했다. 빌 게이츠가 이 돈을 기부하더라도 ― 단연코 그럴 일은 없겠지만 ― 그는 여전히 세계 최고 갑부의 자리를 유지할 수 있다.

부유한 서방과 가난한 제3세계 간의 빈부격차도 심각하지만, 선진 공업국 내부에도 심각한 부의 불평등이 존재한다. 가장 심각한 나라는 다름아닌 최대 부국 미국이다. 공식적으로 3천만 명이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다. 또, 인구조사국은 미국인 다섯 명 가운데 한 명이 빈곤선 이하의 생활을 하고 있다고 추정했다.

이런 경제적 불평등은 다른 모든 종류의 차별과 억압 ― 예컨대, 여성 억압, 인종 차별, 민족 억압 등 ― 의 근원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왜 이토록 불평등하고 불합리할까?

불평등은 어디에서 비롯할까?

가난과 기아에 대한 흔한 설명(특히 제3세계에 대한)은 지도자들의 실정이나 자연 재앙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상의 일은 자선 기금을 내거나 구호 활동을 돕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천재’가 기아의 근본 원인은 아니다. 예컨대, 1980년대 초에 31개의 아프리카 나라들이 심각한 가뭄을 겪었지만, 5개 나라만이 기근을 경험했다.

식량 부족이 근본 문제인 것도 아니다. 높은 수준의 곡물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대략 2억 4천만 톤의 곡물이 전세계의 창고에 쌓여 있다. 이 정도면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하루 3천6백 칼로리를 공급할 수 있다. 이것은 선진 공업국 국민인 영국인의 1일 평균 섭취량보다 4백 칼로리가 높은 것이다.

가난과 기아의 진정한 원인은 다른 곳에 있다. 20세기 말의 ‘빈곤의 세계화’는 세계 역사상 전례가 없는 것이다. 현재의 빈곤은 인적·물적 자원의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실업과 전세계적인 노동비용 최소화를 기반으로 한 범세계적인 과잉생산 체제의 결과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자본주의다. 자본주의는 이제 전세계적으로 가장 유력한 경제 체제다. 자본주의는 과거 사회와 비교해 볼 때, 비할 데 없는 재화와 부를 만들어냈다. 불과 몇 백 년 전 만하더라도 상상할 수조차 없었던 일들이 오늘날에는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걸로 여겨질 정도로 생산력의 거대한 발전이 이뤄졌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우리 사회가 상품을 만드는 과정은 자원 낭비와 비효율적 생산을 동시에 수반한다. 잘 알고 있듯이, 기업들은 이윤을 위해 끊임 없이 다른 기업들과 경쟁을 해야 한다. 그래서 원료를 낭비하고 노동자들로 하여금 광고 같은 비생산적 활동에 종사하도록 강요하는 경쟁에 몰두한다.

예를 들어 보자. 전세계에는 자동차를 갖고 싶어하는 수백만의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자동차 회사 사장들은 모든 사람들이 차를 한 대씩 소유할 수 있도록 생산하기보다는 최대 이윤을 위해 자동차를 생산한다. 그 때문에 자동차 회사들은 끊임 없이 신차를 도입하게 되고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불과 몇 년이 지나지 않아 기존 차종의 생산을 감축 또는 중단한다.

제조업이 아닌 보험 회사나 증권거래소에도 엄청난 돈과 노력이 몰려간다. 그런데, 이것들은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어떤 것도 만들어 내지 않는다. 오로지 이미 돈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더 많은 돈을 만들어 낼 뿐이다.

더 많은 이윤을 향한 끊임 없는 몰이는 자본이 유용한 물건을 만드는 데 투자될지 말지를 순전히 운에 맡기게 만든다. 또는 완전히 쓸모 없는 이윤 행위를 추구하도록 만든다. 일례로, 1970년대 초에 일시적으로 호황을 맞이한 서구 나라들에서는 사무실용 고층 빌딩들이 우후죽순처럼 건축됐다. 그러나 몇 년 뒤 경제 상황이 악화되면서 사무실에 대한 수요가 급격하게 줄어들자, 대부분의 사무실들은 텅텅 비게 됐다.

자본주의의 무계획성과 비효율성이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시기는 경제 위기 때다. 공장들은 쓸모 없게 되고, 사무실들은 텅텅 비며, 사람들은 실업 수당을 받거나 심지어 노숙자 처지로 내몰리게 된다.

한편, 우리 사회의 부 가운데 어마어마한 돈이 군비에 투자된다. 무기는 모든 자원 가운데 가장 낭비적인 요소다. 무기는 인류에게 전혀 유용한 것이 아니며 오히려 인간을 살상하는 데 이용될 뿐이다.

1980년에 전세계적으로 무기를 생산하는 데 5조 달러가 들어갔다. 즉, 1분에 1백만 달러(10억원)가 무기 생산에 투자된 셈이다. 자국의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모든 나라들은 거대한 자원들을 엉뚱한 데 사용한 것이다.

또, 지난해 나토의 세르비아 폭격 때 사용됐던 미국의 B-2 스텔스 전폭기는 한 대에 22억 달러(2조 6천억 원)다. 스텔스 전폭기 열 대 가격이면 전세계의 굶주리는 사람들 거의 모두에게 1년 동안 기본적인 의료와 필요한 식료품을 공급할 수 있다. 다섯 대 가격이면 전세계의 모든 아동들에게 초등교육을 시행할 수 있다. 크루즈 미사일 한 대 가격은 1백만 달러다. 이 돈이면 제3세계의 빈농 50만 명이 1년 동안 먹을 식량을 재배하는 데 필요한 씨앗과 농기구를 제공할 수 있다.

불평등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자본주의는 무계획적이고 혼돈에 찬 세계다. 이 체제는 평범한 대다수 사람들의 통제 밖에 있고 오직 생산수단을 지배하는 극소수의 이익에 봉사한다.

자본주의 하의 낭비는 비효율적이며 완전히 쓸모 없는 물건들을 만드는 데서 비롯한다.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이런 낭비가 불가피하다. 제조업에서의 이윤 극대화는 조만간 구닥다리가 될 싸구려 상품들을 만든다는 것을 뜻한다. 세상에 대한 거대한 통제력을 유지한다는 것은 군사비에 어마어마한 투자를 한다는 것을 뜻한다.

대부분의 나라들에서 국방비가 국가 예산 가운데 가장 커다란 비중을 차지한다. 물론 가끔은 교육과 보건 의료 부문에 투자되기도 하고, 그 결과 사람들의 삶이 조금은 개선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회의 우선 순위가 명백히 대중의 삶을 개선하고 복지를 늘리는 것에 있다면, 훨씬 더 빠르게 상황을 개선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지속적인 투쟁 없이는 이뤄질 수 없다. 왜냐하면, 정부와 사장들은 자신의 이익을 기꺼이 희생하면서까지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 많은 이윤 획득이 지상 목표인 정부와 사장들은 양보하는 것이 양보하지 않는 것보다 덜 손해라고 생각할 때 비로소 양보한다.

우리 사회가 불평등하다는 것만큼이나 지속적인 투쟁만이 부의 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점차 상식이 돼 가고 있다. 그래서 자본주의가 낳은 부의 불평등에 대한 반감과 분노가 세계적 차원에서 ― 특히 선진 공업국들 내에서 ― 자라나고 있다.

지난해 12월 미국의 시애틀에서는 WTO 각료회의에 반대하는 거대한 시위가 있었다. 지난 4월에는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IBRD)의 워싱턴 연례회의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시위대들은 두 금융기관이 세계화의 첨병 역할을 하면서 빈국들의 기아와 빈곤, 환경 파괴 등을 심화시켰다고 비판했다.

우리 나라에서도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부의 불평등 심화에 반대하는 캠페인이 벌어지고 있다. 노동시간 단축과 사회복지예산 확충은 고용안정과 부의 불평등 완화에 기여할 수 있다.

부의 불평등에 대해 반대한다면, 민주노총 노동자들의 투쟁에 동참할 필요가 있다. 작업장에서의 변화와 개선은 사회 전체의 변화와 개선에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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