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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사정관제:
부유층 자녀들을 위한 특별 통로

이명박 정부는 입학사정관제를 중요한 대입 정책으로 강조해 왔다. 정부는 “단순 교과 성적만으로 평가하는 시대는 끝났다”며 입학사정관제가 학생의 창의성, 잠재력을 평가한다고 홍보했다. 점수 경쟁을 벗어나 공교육을 살리고 사교육을 줄일 것이라고 선전했다.

경쟁교육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 일부도 입학사정관제가 수능 위주의 지독한 입시경쟁을 완화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다.

그러나 입학사정관제를 시행할수록 문제점이 더 크게 드러나고 있다.

경쟁은 오히려 확대됐다. 수능, 내신성적은 기본이고, 학생들은 각종 자필서류와 추천서, 논술, 면접, 학생부 비 교과 영역 등도 준비해야 한다. 노무현 정부 시절 학생들을 고통에 내몰았던 ‘죽음의 트라이앵글’이 ‘입학사정관제 펜타곤’으로 진화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사교육도 늘어났다. 스펙을 관리해 주는 컨설팅이나 추천서 대필이나 면접 등 새로운 형태로 ‘1년에 6백만 원’, ‘하루 두 시간에 40만 원’ 등 노동자들은 감당하기 힘든 고가 사교육이 폭증했다.

스펙

무엇보다 부모의 생활 수준이 입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됐다.

얼마 전 한 토론회에서 한 고3 담임교사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봉사활동을 해 기른 국제적인 감각과 수상 실적 등을 인정받아 리더십 전형에 합격한 사례를 숱하게 봐 왔다”고 말했다. “심지어 고3 여름방학 때 프랑스 총리를 만나 찍은 사진”이 스펙이 되기도 했다.

부유층 자녀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특목고와 해외 고등학교 학생을 우대하는 정책도 시행하고 있다. 고려대 과학 영재 전형은 특목고생 비율이 95.1퍼센트, 이화여대 글로벌 전형은 특목고생 비율이 73.4퍼센트에 이른다. 2010 학년도 입시에서 입학사정관제 전형을 통해 입학한 학생의 절반 이상이 특목고와 해외 고등학교 출신이었다.

그래서 입학사정관제는 부유층을 위한 ‘특별 통로’가 되고 있다. 이 때문에 한나라당 의원마저 “입학사정관제, 외교부 공무원 특채 같다”는 이야기를 할 정도다.

물론 입학사정관제 전형 중에는 농어촌 특별 전형이나 저소득층 전형도 있다. 그러나 이는 전부터 있었던 전형을 입학사정관제로 통합해 놓은 것일 뿐 입학사정관제 때문에 확대된 것이 아니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입학사정관제를 전면적으로 시행하는 미국을 보면 문제가 훨씬 더 심각하다.

“[미국] 입학사정관제는 우수한 인재를 선발하는 ‘현명한’ 제도라기보다는 연줄이 확실한 상류층 자녀를 위한 ‘VIP 초대장’과 같다.”(대니얼 골든, 《왜 학벌은 세습되는가?》)

귀족이 지위를 세습하듯 부유한 동문 자녀에게는 입학 특혜를 준다. 미국 전 대통령 조지 부시의 딸 바바라가 예일대에 입학해 부시 가문이 4대째 예일대 동문을 이어가고 있는 것에서 보듯 말이다. 미국 주요 대학 동문 자녀 비율은 전체 학생의 10~15퍼센트에 이른다.

미국 상위 1퍼센트가 간다는 아이비리그에 기여입학제로 입학하는 학생이 13퍼센트나 된다. 대니얼 골든은 아이비리그에서 어떤 특혜도 없는 인재들은 겨우 “정원의 40퍼센트를 놓고 경쟁한다”고 말한다.

대학들은 부유한 동문 계층이 형성돼 기부금이 늘어나기를 바라기 때문에 서슴없이 가난한 학생들을 위한 자리를 부유한 학생들에게 내어 준다.

한국도 입학사정관제가 확대되면 미국처럼 거래와 특혜가 스며들 가능성이 더욱 커질 것이다. 대학이 학생선발에 자율권을 갖게 되면, 대학들은 기여입학제와 연고자 특혜를 도입하고 고교 등급제를 시행하려 할 것이다.

불공정하고 학생들의 부담만 늘리는 입학사정관제는 폐지해야 한다.

진정으로 학생들의 적성과 소질을 살리는 교육을 하려면 입시 경쟁 자체가 없어져야 한다. 대학을 평준화해 대학 서열을 없애고, 등수를 메겨서가 아니라 배우고자 하는 기본적인 요건을 갖춘 사람에게는 대학 입학 자격을 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