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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의 ‘건강보험 대개혁을 위한 연석회의(가)’에 대해

민주노총 지도부의 제안으로 지난 11월 30일 ‘건강보험 대개혁을 위한 연석회의(가)(이하 연석회의)’ 사전 간담회가 열렸다. 민주노총의 제안 취지는 다음과 같다.

*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무상의료 실현이 중요한 사회적 의제로 부각되고 있으며, 국민의 요구와 기대 또한 높은 상황.

* 그러나 운동은 개별, 분산적으로 진행되고 있고, 심지어 대립, 경쟁 양상을 보이기도 함. 이로 인해 지역 및 현장 내에서도 혼란과 분열, 비효율이 야기되고 있음.

* 2012년 총선 및 대선은 무상의료를 현실화시켜내기 위한 중요한 정치적 계기.

* 공동의 요구와 실천을 중심으로 힘을 모아가기 위해 ‘건강보험 대개혁을 위한 연석회의(가)’를 제안함

민주노총 지도부의 진단은 현실을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다. 운동의 단결이 필요하다는 문제 의식도 공감할 만하다.

그러나 민주노총 지도부의 연석회의 제안에는 몇 가지 우려스러운 점이 있다.

첫째, 민주노총 지도부는 사전 간담회에서 연석회의 구성을 ‘각 계를 대표하는 핵심단위’로 하자며 일부 단체로 참가의 폭을 제한하는 안을 올렸다.

민주노총,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참여연대, 경실련, 의료민영화 저지 및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위한 범국민운동본부(이하 범국본),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이하 시민회의)가 그 대상인데 시민회의를 제외하면 모두 범국본 소속 단체다.

그래서 범국본 집행위원장은 ‘이런 상황에서 범국본 이름으로 연석회의에 참여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고 참여 여부를 결정하기도 어려우니 소속 단체들이 각자 참여 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완전히 개방하자’ 하고 제안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범국본에 소속된 다수의 단체들은(이들은 대부분 시민회의의 선제적 보험료 인상에 반대한다) 사실상 배제되고 시민회의는 참가할 수 있는 회의가 만들어진 것이다.

앞서서 시민회의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위해 노동자들의 보험료를 올려야 한다’는 후퇴된 안을 주장하다가 범국본에서 이탈한 바 있다. 따라서 민주노총 지도부의 연석회의 구상이 시민회의와 그들의 후퇴안을 되살리려는 시도 아니냐는 의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둘째, 민주노총 지도부는 12월 13일에 열린 1차 회의에서 연석회의의 정책방향을 정하자며 민주노총의 입장을 제출했는데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 의료민영화 저지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는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핵심 방향임.

*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는 낭비적이고 왜곡된 지불구조 및 의료공급·전달체계 개편이 병행 과제임(선제적 보험료 인상 원 포인트 제시방식은 수용하지 않음).

* 보장성 강화에 소요되는 재원은 국고확충 및 보험료를 통해 마련하는 것을 기본 방향으로 함(현행 사회보험체계에서 조세체계로의 전환은 ‘현 시점에서의 고려대상’에서 제외함).

민주노총 지도부가 시민회의의 “선제적 보험료 인상 방식 원 포인트 제시방식”에 반대한 것은 올바른 선택이다. 정부와 기업주들에게 책임을 묻는 대신 노동자들의 보험료를 올리자는 것은 대안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노총 지도부의 입장은 몇 가지 문제가 있다.

먼저 ‘선제적 보험료 인상’에 반대한다는 것인지 아니면 그것만 얘기하는 ‘원 포인트 제시방식’에 반대한다는 것인지 모호하다. 또 ‘조세 체계로의 전환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표현이 사회복지세 도입 등을 통한 국고지원 비중 확대를 반대하는 것인지 아닌지 하는 문제에서 서로 다르게 해석될 여지가 있다. 이런 모호한 입장이 시민회의 쪽의 노동자 양보론이 스며들 여지를 남기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시민회의를 대표해 참석한 김명일 인천평화의료생협 원장은 두번째 항의 괄호 안 내용을 삭제하지 않으면 연석회의에 참여할 수 없다고 못을 박았다. 노동자 양보론을 가로막는 걸림돌은 인정할 수 없다는 태도인 것이다.

참여연대도 선제적 보험료 인상안에는 반대하지만 연석회의가 폭넓고 느슨한 연대체로 가려면 둘째 항목과 셋째 항목의 괄호 안 내용을 모두 삭제하는 편이 좋겠다고 주장했다.

김경자 민주노총 사회공공성강화위원장은 위의 내용이 민주노총의 입장일 뿐이고 토론 결과에 따라 연석회의에서는 괄호 안의 내용을 삭제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반면 보건의료단체연합, 공공노조, 사회진보연대 등은 괄호 안의 내용을 삭제하는 데 반대했다.

다함께도 민주노총의 입장이 모호해서 서로 다르게 해석될 여지가 있지만 그렇다고 괄호 안의 내용을 모두 삭제할 수도 있다는 민주노총 지도부의 태도는 기존 논쟁을 되풀이하게 만드는 결과만 낳을 것이니 민주노총의 입장을 최소한의 기준으로 삼자고 주장했다.

결국 민주노총 지도부의 모호한 태도 때문에 연석회의에서도 시민회의의 선제적 보험료 인상 방식 수용 여부에 대한 논쟁이 다시 벌어졌다.

셋째, 민주노총 지도부의 연석회의 제안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와 무상의료 실현을 위해 꼭 필요한 실질적인 대중 운동 건설보다 2012년 선거를 위한 진보진영의 단일안 만들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듯하다.

물론 대중 운동 수준이 높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 시도가 아무 의미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견을 좁힐 수 없다면 가장 많은 사람들을 단결시킬 수 있는 대안을 채택해야 한다. ‘큰 차이가 없다’거나 ‘일단 모여보자’라는 태도만으로는 운동을 단결시킬 수 없다.

분열을 야기할 뿐 아니라 운동의 전진을 가져올 수 없는 후퇴안까지 포함시켜 ‘단결’을 이루려는 시도는 무망할 뿐이다. 분열을 낳은 원인을 내버려둔채 형식적으로만 느슨한 연대기구를 만든다고 해서 저절로 단결이 되는 것은 아니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최대한 민주적이고 개방적인 방식으로 연석회의를 운영해야 한다. 또 연석회의가 단순히 탁상공론에서 끝나지 않고 운동 건설을 위한 기구로 발전하려면 논쟁을 회피하거나 가로막아서도 안 된다. 마지막으로 선거 대응을 위해서라도 진정한 대중 운동을 건설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선제적 보험료 인상’ 같은 요구로는 절대 무상의료를 위한 노동자 대중 운동을 건설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