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에 혁명은 가전제품이나 휴대폰 따위의 디지털 제품이나 패션 또는 광고에나 붙일 법한 수식어로 취급받는 일이 흔하다. 

한편, 한국의 좌파들 중 일부는 혁명을 언급하는 것에 달가워하지 않는다. 혁명은 이미 오래된 기억 저편의 일이거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간 이야기일 뿐이다. 

평범한 사람들도 저항과 항쟁은 민주적이고도 실천적인 행동 같은 것이지만, 혁명은 왠지 불편하다고 여긴다.

이처럼 혁명에 대한 왜곡과 오해가 난무하는 “21세기에 혁명은 가당찮은 이야기인가?”라는 물음에서 《21세기의 혁명》은 시작한다. 

풍부한 이론을 바탕으로 역사적 사례와 경험을 보여 주고 교훈을 이끌어낸다. 매우 명료하고 쉽게 주제에 천착하며, 현재진행형으로서 혁명, 그리고 혁명의 중요성과 잠재력을 강조한다.

책의 저자이자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인 크리스 하먼(지난해 작고했다)은 21세기가 시작된 직후 혁명의 가능성은 오히려 세계 도처에서 타올랐다고 지적한다. “21세기의 새벽을 맞이하기 직전인 1999년 11월에 발발한 시애틀 투쟁이 그 서막”이었다. 투쟁 당시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Another World is Possible)!”라는 슬로건이 전 세계를 뒤덮었다. 이 슬로건은 10년이 훌쩍 넘은 현재에도 경제 위기에 따른 자본가들의 고통전가에 맞선 주요 반자본주의 투쟁과 저항의 상징처럼 사용되고 있다.

21세기를 맞이하자 혁명의 잠재력이 곳곳에서 폭발하기 시작했다. 베네수엘라에서는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 “21세기 사회주의”를 건설하겠다고 공언했으며, 이에 저항하는 우익 쿠데타에 맞서 노동자 수십만 명이 거리에 나와 우고 차베스와 그의 정부를 방어했다. 

이웃한 볼리비아에서는 수차례에 걸친 대중투쟁과 준(準)혁명적 상황으로 말미암아 진보적 개혁강령을 내건 에보 모랄레스가 대통령으로 당선할 수 있었다. 당시 볼리비아의 광부들은 한 손에 다이너마이트를 들고 행진하면서 노동계급의 전투성을 표출했으며, 이에 놀란 신자유주의 국가 수반인 대통령 로사다는 헬기를 타고 황급히 도망쳤다. 네팔에서는 봉기로 군주제가 타도되기도 했다. 21세기에 말이다.

책은 10년이 채 안 되는 시기에 실제 벌어진 21세기의 역사적 사례를 생생히 보여 주고, 평가와 전망을 통해 혁명의 동학을 설명하고 있다. 

이와 같이 혁명의 동학을 이해하고 혁명의 가능성을 모색하려는 것과는 다른 태도를 견지하는 사람들이 흔하다. 예컨대 한국의 일부 좌파들은 혁명보다는 ‘급진적 개혁’에 무게중심을 두는 듯하다. 박노자 씨는 예전에 어느 한 논쟁에서 “혁명을 통해 폭력을 경험하느니 자본주의 내 급진적 개혁을 추구하는 것이 더 낫다” 하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런 견해를 공유하는 좌파들은 ‘급진적 개혁’을 쟁취하는 데 수반되는 거대한 투쟁, 그리고 그 투쟁들이 혁명의 징검다리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지 않는다. 

그럼에도 《21세기의 혁명》은 ‘개혁주의자’들도 혁명이나 준혁명 시기에 외부적 압력에 동요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한다, 그리고 역사적 사례와 교훈을 통해 ‘혁명가의 구실’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한다. 혁명가와 혁명가들로 구성된 혁명정당이 혁명적 상황에서 운동의 전진을 위해 적절한 방향과 과제를 제시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했는지 보여 주는 것이다. 이를 통해서 혁명 정당이 “혁명이 시작되는 데 필수 조건은 아니다. 그러나 사회주의와 야만의 갈림길에서는 혁명 정당이 혁명이 승리를 보증하는 데 필수적”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렇듯 《21세기의 혁명》은 혁명의 가능성과 잠재력이 현재와 머지 않은 미래에 표출됐을 때,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이 어떠한 전략과 전술을 취할 것인지도 매우 쉽고 명료하게 서술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두꺼운 참고서의 요약본(2백 쪽도 채 안 된다!)과 같다. 

전 지구적 경제 위기라는 불씨가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 지금, 자본과 지배계급에 맞서 노동자 수백만 명이 공장을 멈추고 거리를 점거한 채 행진에 나서고, 학생들이 대학과 거리를 점거하는 모습이 연일 보도된다. 세계 도처에서 경제 위기, 전쟁, 기후변화 등으로 “지배계급의 내분과 대중의 점증하는 불만이 결합”될 때 촉발되는 혁명적 격변의 조건들이 심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문제는 21세기에 혁명이 일어나는 것이냐가 아니라 혁명이 어디로 나아갈 것이냐다.”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