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많은 사람들은 오늘날 노동계급의 힘이 크게 약해졌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런 주장은 사회를 개혁할 새로운 주체를 찾으려는 시도와 맞물리곤 한다.

촛불운동 이후 많은 지식인들은 미조직 청년 등을 새로운 “파워”로 추켜세웠고, 근래엔 민주당 같은 자본가 정당과 힘을 합쳐야 한다는 논리가 힘을 얻고 있다.

대체로 이런 논의들의 근저에는 노동계급의 혁명적 잠재력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다. 이런 불신을 뒷받침하는 여러 논거들이 있지만, 그 중 몇 가지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가장 흔한 논리 중 하나는 세계가 ‘탈산업화’ 시대로 접어들어 전통적 산업 노동계급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 논자 중 한 명인 이찬근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탈산업화 시대에 … 기술 발전으로 인해 제조업[의] … 반복적 노동이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제조업은 사양화하지 않았다. 유럽의 일부 선진국에서 제조업 비중은 줄었지만, 중국·인도 등에서 제조업은 크게 성장했고 미국에서도 제조업 노동자의 규모는 1998년 현재 1950년보다 50퍼센트 이상 증가했다. 최근엔 경제 위기 속에서도 전 세계적으로 제조업이 살아나고 있다.

물론, 한국에서 제조업의 고용 비중은 1995년 23.5퍼센트에서 2008년 17.3퍼센트로 낮아졌다. 그러나 오히려 GDP 대비 제조업 비중은 1970년 15.9퍼센트를 기록한 이래 꾸준히 성장해 지난해 9월엔 27.6퍼센트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제조업 노동자들의 힘은 여전히 지배계급 전체에게 위협적이다. 보수 언론들이 언제나 금속노조나 현대·기아차 노동자들의 파업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비난을 퍼붓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리고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노동계급 개념을 특정 산업 노동자들로 국한해선 안 된다는 점이다. 제조업 육체 노동자들만이 아니라, 서비스·언론·정보통신 등 수많은 업종의 노동자들과 사무직 노동자들도 노동계급에 해당한다.

과거에 비해 서비스업 노동자 규모가 빠른 속도로 늘어난 것은 노동계급의 소멸이 아니라 변화를 보여 줄 뿐이다. 이 서비스업 노동자들의 노동 조건과 처지는 제조업 노동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서비스업에 포함된 철도·버스 등 운수 노동자들, 교사·공무원·간호사 등 공공서비스 노동자들, 청소·유통업 노동자들도 매일매일 반복적 업무와 직장 상사의 닦달에 시달리며 착취와 억압을 겪는다. 자동차 생산 라인에서 개발된 업무 평가 방식은 흔히 이들에게도 적용된다.

게다가 이들은 제조업 노동자들과 꼭 마찬가지로 노동조합을 결성해 국가나 개별 기업주에게 맞선다. 한국의 공기업 노동자들의 노조 조직률은 80퍼센트에 육박하고, 공무원 노동자의 54.9퍼센트와 교사 노동자의 20.6퍼센트도 노조로 조직돼 있다.

특히 이들은 지난 수십 년 동안 투쟁을 지속해 왔다.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엔 철도·발전·지하철 등 공기업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였고, 2000년대 중반엔 교사·공무원 노동자들이 연가파업을 벌였다. 2007년엔 유통업체 이랜드 노동자들이 매장을 점거하고 싸웠고, 최근엔 대학 청소 노동자들이 파업과 점거 농성을 이어 가고 있다.

고용 불안

둘째, 또 하나의 주요 논리는 신자유주의 정책과 경제 위기에 따른 고용 불안이 노동자들의 투쟁을 약화시켰다는 것이다. 노동운동 내에서도 비정규직과 실업자 등 “유목 노동의 증가”로 노동자들이 전투력을 상실했다는 주장이 나온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고용 불안 수준이 매우 높을 때도 투쟁에 나서곤 했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상시적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은 힘이 없다고 여겼지만, 바로 얼마 전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이런 편견을 단번에 날려 버렸다. 이들은 “생산라인을 끊어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기업 [중 하나]에 타격”을 줬다. 2003년과 2008년엔 노동3권도 보장받지 못하는 화물연대 노동자들이 파업을 통해 물류를 마비시키기도 했다.

더구나 전 세계적으로 임시직 일자리 증가는 거스를 수 없는 추세가 아니고, 비정규직 비율이 매우 높은 한국에서도 비정규직의 20퍼센트 이상은 비교적 안정적으로 상시 고용된 상용직이다. 일부의 과장과는 달리, 안정된 숙련 노동을 필요로 하는 기업주들은 비정규직을 무한정 늘릴 수만은 없는 처지다.

셋째, 또 다른 논리는 자본의 해외 이전이 쉬워져 노동자들이 기업주를 통제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금융 투기꾼들이 엄청난 자금을 순식간에 국경선 밖으로 옮기고 있는 지금, 이것은 상식처럼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생산 설비를 이전하는 것은 돈을 옮기는 것보다 훨씬 어렵고 복잡한 과정이다. 자본이 타지에서 새로운 협력자들을 찾고 유통망을 확보하는 것도, 기계나 설비를 들여놓고 충분히 숙련된 노동력을 확보하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자본의 해외 이전 논의가 만연해 있는 미국에서도 생산적 해외 투자는 전체 투자의 8퍼센트 미만에 그친다.

이 모든 점들을 볼 때, 노동계급의 힘이 약해졌다거나 사멸했다고 볼 수 있는 근거는 없다. 오히려 생산성 향상 덕분에 상대적으로 더 적은 수의 노동자들이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됐다.

예컨대, 지난해 한국에서 경주의 자동차 부품공장들에서 파업이 벌어졌을 때도, 이에 타격을 입은 현대차의 부사장이 직접 그 지역을 방문해 ‘조속한 해결’을 촉구했다.

노동자들은 집단적으로 생산을 멈추면 자본주의의 핵심 동력인 이윤에 실질적 타격을 가할 수 있다. 전 세계 부를 창조하는 노동자들은 체제의 이윤논리에 정면으로 도전할 힘을 가졌다. 마르크스가 말한 것처럼, 하나의 세력으로서 노동계급이야말로 “자본주의의 무덤을 파는 자”들이다.

더욱이 오늘날 노동자들의 규모는 그 어느 때보다 커졌다. 전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은 임금 노동자이고, 나머지 인구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농업 인구의 절반도 모종의 임금 노동을 병행하고 있다.

진정한 문제는 이런 노동계급의 잠재력을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까다.

계급 의식

일상적 시기에 노동자들의 의식은 상당히 불균등하고, 그중 다수는 심지어 보수적일 수 있다. 그래서 많은 경우에 노동자들은 자신의 잠재력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어떤 시기에는 한 부문의 투쟁이나 지배계급의 심각한 위기가 노동자들의 자신감을 고무하면서 투쟁이 솟구치는 현상이 나타난다. 그런 시기에는 갑자기 모든 사람들이 노동계급의 존재에 눈뜨게 된다. 

한국에선 1987년 노동자 대투쟁 때 그런 일이 벌어졌고, 1960~70년 프랑스를 비롯해 세계적으로 확산한 노동자 투쟁 때도 그런 파고가 일어났다. 지금 유럽의 노동자 투쟁도 노동계급의 잠재력을 보여 주는 징표다.

이럴 때 투쟁을 발전시켜 자본주의 체제에 도전하려면 노동계급의 강력한 힘을 그런 방향으로 이끌 혁명적 조직의 존재가 필수적으로 뒷받침돼야 한다.

따라서 자본주의의 야만에 맞서 새로운 대안을 찾으려는 사람들은 노동계급의 혁명적 잠재력을 발현시키기 위한 정치적·조직적 준비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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