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1일 홍익대 미화 노동자 투쟁 연대 집회가 열렸다. 처음엔 그렇게 많아 보이진 않았던 대열은 집회가 진행될수록 점점 늘어났다.

연대 발언한 공공노조 서경지부 덕성여대 분회장이 소리쳤다. “홍대, 영하의 날씨에 이 사람들을 찬바닥으로 몰아넣고 잠이 옵니까?”

걸쭉한 사투리로, 성신여대 분회장은 말했다. “먹고 살겠다는디, 싸가지가 바가지여. 똘똘 뭉치면 됩니다. 저 사람들 별거 아녀요!”

이대 분회장은,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저놈들은 우리가 아줌마라고 이 따위로 돈을 주는데, 우리 아줌마라고 해도 부업이 아니고 가장입니다. 우린 더 가진 것도 잃을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한 번도 진 적이 없습니다.”

“우린 더 가진 것도 잃을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한 번도 진 적이 없습니다”  

집회가 끝난 후 행진를 따라가서 노동자들이 농성하고 있는 홍익대 문헌관 1층 사무처까지 갔다. 여기서 노동자들은 벌써 열흘째 숙식하고 있었다.

우린 이길 거에요

농성장 로비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깔판을 깔고 앉기는 했지만 하얗게 입김이 보였다. 온몸이 덜덜 떨렸다. 연대하러 온 타학교 미화 노조의 분회장들이 자리에 앉아서 발언을 하기 시작했다.

“3년 동안 오면서 다 승리했어요. 기죽지 말아요. 우리가 뭐 죄진 것도 아니고, 달라고 해서 받을 힘을 우린 다 가졌어요. 홍대는 이거 해결 안 해 주고는 절대로 못 배겨요. 우리의 기본 권리는 우리가 다 찾아와야 돼요.”

“우리는 이제 8년 차예요. 싸움은 우왕좌왕하면 안 돼요. 일사불란해야지. 용역회사보다 학교가 아주 나빠요. 이렇게 노조들 깔보는 학교는 한 번 당해야 돼요. 무서워하지 말아요. 어느 학교든 학생이 주인이고, 학생들은 우리 편이에요.”

“처음엔 정말 무서웠어요. 우리는 학교가 시키는대로 다 했거든요. 학교에서 풀 뽑으라면 뽑고, 땅 치우라면 치웠어요. 우리도 한꺼번에 다 잘렸는데, 중요한 건 절대 흐트러지면 안 돼요. 그리고 학생들이 도와줄 거예요. 마음을 똘똘 뭉쳐서, 학생들을 제일로 중하게 여기셔야 돼요.”

공공노조 서경지부 고려대학교분회 분회장이 연대발언을 하고 있다.

“우리가 4년 전에 여러분이랑 똑같은 임금이었어요. 우리는 소장이 진짜 악덕이라, 미화원들한텐 인격이라는 게 없었어요. 교수가 지나가도 학생이 지나가도 복도에서 차려, 열중쉬어 시키고. 토요일도 수당 없이 근무했어요. 노조가 없으면 살 수 없는 조건이었죠. 걱정하지 말아요. 우리는 조건이 너무 열악해요. 너무 열악해서 잃을 것도 없어요. 그래서 절대로 지지 않습니다. 어디서든 연대하러 옵니다. 우리끼리 뭉쳐야 해요. 우리 자녀들을 위해서도 해야 됩니다.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우리가 이렇게 일한 건데, 우리가 여기서 지면 우리 아이들도 우리처럼 비정규직으로 일해요.”

질문 시간에, 한 남성이 손을 들었다. 그 남성은 앞으로 나와서 마이크를 잡더니 ‘만약에 지면, 우리가 한 게 다 없어지면 누가 그걸 감당하느냐’고 물었다. 아직 말이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소리쳤다. “만에 하나가 없어요, 우린 다 이길 거예요!”

1월 11일 밤

밥을 먹으려고 기다리다가 아는 사람을 만났다. 그는 한 주간지에 기자로 취직했다고 말했다. 방금 총학생회장 인터뷰를 했다고 했다. “외부단체가 정확히 뭐냐고, 다함께나 학생행진 같은 사람들을 말하는 거냐고 제가 정확히 짚어서 물어봤거든요. 그러니까 가까운 시일 내에 외부단체에 대해 정확히 규정하는 성명서를 내겠다고 하더라고요.”

김치찌개에 밥을 먹고 나자마자 이불을 깔고 잠이 드는 사람들도 보였다. 모든 일정이 끝난 사람들은 조용히 침낭 위에 앉았다. 깔판을 깔았지만 바닥에서 냉기가 올라왔다. 한 구석에서 경비 노동자 둘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일 좀 쉬어도 되느냐’고 묻고 있었다. 약을 먹어야겠으니, 내일 조금 늦게 나올 수는 없을까. 대답은 단호했다. ‘8시에 나와서 11시에 들어간다, 그거 말고는 없다’는 것이었다. 제기한 경비 노동자는 투덜거리는 거 같았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밤 9시가 되었는데도 학교 교직원들은 퇴근하지 않았다. 한 사람이 중얼거렸다. “할 일이 많은가….” 그는 이 학교 교직원 노조가 임금 협상을 위해 싸웠던 경험이 있다는 얘기를 했다. ‘자신들도 싸운 경험이 있으면서, 왜 우리한테 이러는 건지 알 수 없다’고 했다.

지금 홍익대에 있다고, 한 홍익대 학생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농성장이니 얼굴이라도 보자고 했더니, 그는 바로 농성장으로 왔다. 홍익대 학생이라고 자신을 소개하자, 노동자들은 반가워했다. 

모두를 위한 이 투쟁을 지지하는 모든 사람이 내부세력이다.

이 학생은 총학이 주최했던 간담회에 갔다왔다고 했다. “사범대랑 미대가 입장 바꾼 거 같아요. 총학이랑 엄청 싸우더라구요. 어머님들은 [간담회에 참가하지 않고] 일찍 나가시길 정말 잘한 거예요. 거기 계속 계셨으면 더 열 받고 더 속 터지셨을 거예요. 전에는 [총학이] 좀 밉기도 하고, 싸워야 할 것도 같고 했는데, 어제 보니까 그냥 얘들이 너무 불쌍했어요.”

열 시가 지나자, 돌아갈 사람들은 다 돌아갔다. 로비는 아까보다 더 서늘해졌다. 하얗게 입깁이 나오는데, 로비에서 미술행동을 하는 만화가들은 아직 돌아가지 않았다. 〈태일이〉를 그린 최호철 만화가와 〈내가 살던 용산 - 망루〉를 그린 김홍모 만화가였다. 연대하러 온 사람들의 얼굴을 그려주고 있었다. 둘 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출신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눈에 띄게 줄어든 로비에서, 나는 김홍모 만화가 앞에, 홍익대 분회장은 최호철 만화가 앞에 앉았다. 홍대생이냐고 물어서, 명지대생이라고 대답했다. 몇 학년이냐고 물어서, 대학원생이라고 했다. 김홍모 만화가는 “진정한 외부세력이네?” 라고 웃으며 대답했다.

최호철 만화가가 입을 열었다. “후배들이 너무 한심해서 왔어요. 다른 학교에서 이렇게 많이들 오는데.” “미대 학생회장을 어제 만났어. 13일부터 입학시험 날이라고, 홍익대 미대 오려고 하면 십 년 넘게 준비해서 오는 데라고, 딱 하루만 캠페인도 쉬고 조용히 있어 주면 안 되냐고 그러는 거야.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그랬지, 난 그날이 디데이라고.”

1월 12일 아침

다음 날 아침 5시 30분이 되자, 몇몇 사람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밥 냄새가 났다. 일어나서 앉아 있자, 미화노동자 한 분이 얼른 와서 밥 먹으라고 손을 잡아끌었다.

오징어 국, 김치, 깻잎무침, 청경채 등이 앞에 놓여졌다. “아까 새벽에 총학생회장 온 거 봤어?” “여긴 왜 왔대?” “분회장님 만나려다가 주무신다니까 그냥 갔어.”

설거지를 돕겠다고 하자, 미화노동자들은 날 눌러 앉히고는 다 조를 짜서 하고 있고, 당번이 있으니까 도와줄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는 설거지 할 그릇을 들고 쌩하니 가 버렸다. 한 사람이 뒤를 돌아보고 한마디 더 거들었다. “들어가, 얼른, 아줌마들로 충분해.”

학교측이 부착한 집단해고 공고문 앞에 서 있는 노동자 “우리는 청소한 죄뿐이 없는데, 그것도 청소 아주 열심히 했지.”

8시쯤이 되자 사람들이 하나둘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어서 오세요’ 하는 소리가 들렸다. 내 앞으로 누군가 아주 유쾌하게 말꼬리가 늘어지는 “투쟁”을 노래하 듯 말했다. 사람들이 똑같이 노래하 듯 “투쟁”이라고 대답했다. 사람들은 바깥 날씨에 대해 얘기하고, 서로의 옷차림에 대해 걱정해 주고, 몸자보를 매 주었다. 곧 선전전이었다.

“우리는 청소한 죄뿐이 없는데, 그것도 청소 아주 열심히 했지.” “우린 시작했으니까 이제 끝을 봐야지.” “여기 아주 잘 들어왔어. 이렇게 언론에 뜨고, 밥도 해 먹고.” 옆에 앉은 사람이 목소리를 낮춰서 내 귀에 속삭였다. “여기서 일하는 교직원들도 죽을 맛일 거야. 맨날 김치찌개 끓이지, 청국장 끓이지. 평소엔 요리도 못 하게 하더니.”

영화배우 김여진에 대해 칭찬을 하면서, 아무래도 대학 다닐 때 운동권이었던 게 틀림없다고 얘기하다가, 한 명이 조금 목소리를 높여서 말했다. “얼마나 고마워. 어제 온 [타 대학 미화 노조] 분회장들도 그렇고. 힘이 나잖아. 우리도 이기면 다른 데 그렇게 도와주러 다녀야지, 꼭.” 사람들은 꼭 그래야 한다고 맞장구쳤다.

아침 조회 때,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이 발의해서 홍익대학교 재단이 소유한 모든 학교에 감사가 들어가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사람들은 환호했다. 미화 노동자 한 명이 귓속말을 했다. “그러니까, 일을 왜 크게 만들어. 우릴 잘라서는. 얼마나 비리가 많으면 감사까지 하고.”

내가 홍보전 할 리플릿을 챙기는 걸 보고, 한 조합원이 물었다. “기자님은 이렇게 우리 도와주면 뭐 도움되는 게 있어?” “여러분들이 이기면 저도 이기는 거죠.” 그 사람은 환하게 웃었다. “맞다, 맞아. 그게 이기는 거지.”

홍보전은 추웠다. 학생들은 대부분은 리플릿을 받으면서 고개를 꾸벅 숙였다. 사람들은 콧물을 훌쩍이면서 리플릿을 나눠 줬다. 학생들이 번갈아가면서 무언가 발언을 했다. 이사장 나와라, 총장 나와라, 일하고 싶다, 3백 원이면 껌도 못 사요, 해고를 철회하고 일하게 해 주세요, 아주 간단한 문구들을 노동자들은 몸에 걸고 있었다. 

“밥심으로 투쟁하고, 반드시 승리합시다!” 농성장 한쪽 벽엔 빽빽하게 후원받은 것들이 기록되어 있다. 돈뿐만 아니라, 밥, 귤, 컵라면, 라면 두 개, 반찬도 한 가득 있다.

홍보전이 끝나고 돌아가 보니 농성장엔 직원들이 그 사이에 더 출근해 있었다. 된장 냄새가 사무처 가득했다. “여기 총무과가 아니라 식당이여, 식당. 죽을 맛일겨.”

“이기면 우리들만으로 이긴 게 아니야, 엄마들 반, 학생 반이지. 여기까지 와 줘서 정말 고마워. 근처 학교가 있어서 다행이야.”

한 구석에선 어제 했던 드라마 얘기로 시끄러웠다. 드라마 얘기는 순식간에 번졌다. “아들인 거 밝혀졌대?” “어이구, 밝혀졌구만.” “우리 봐, 진실은 다 밝혀지게 되어 있어.”

이곳을 지킨다는 것

늘 ‘고마운’ 다른 학교 학생들은 그날 기자회견을 열었다. 홍대를 제외한 타학교 총학생회장단이 모여서 홍익대학교 노동자들을 지지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이다.

한 미화 노동자가 홍익대 총학생회에 대해 툴툴거렸다. “나쁜 놈들, 아주, 다른 학교 총학생회장들은 도와주러 오는데.” “어제 새벽에 왔다 갔었다면서요?” “그래? 걔네는 정말 아무것도 몰라. 얼굴 보니까 그냥 부잣집 도련님 같더라고. … 그래도 나쁜 애들은 아니야. 그냥, 아무것도 모르니까 우리가 열심히 싸워서 알려야지.” 

지난 6일 집회현장을 찾은 김용하 홍익대 총학생회장(좌) 이숙희 홍익대분회장에게 말을 걸고 있다.

학생들은 말도 안 되는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고 했다. 비정규직 여성들을 탄압하는 세상에서 우리의 미래 역시 마찬가지 연장선상에 놓여 있을 거라고 말했다. 우리 모두의 불안정 노동에 맞서는 싸움에 목소리를 내야만 한다고 했다. 마지막 단어만 두 번 따라해달라고, 서울대 총학생회장은 말했지만 노동자들은 모든 구호를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 외쳤다.

농성장 한쪽 벽엔 빽빽하게 후원받은 것들이 기록되어 있다. 돈뿐만 아니라, 밥, 귤, 컵라면, 라면 두 개, 반찬 한 가득. 단체도 있고 사람도 있다. 사람들은 그냥 나누고 싶은 것들을 들고 달려왔다. 여기저기에 글씨들이 나붙어 있다. ‘힘내세요’, ‘해피엔딩일 거예요’, ‘늦게 와서 죄송해요’, ‘제가 바로 외부세력입니다’. 로비는 서늘하지만 안에선 보글보글 국이 끓는다. 이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은 언젠가 다른 자리도 지키겠다는 결심을 안고 서 있다.

홍익대 노동자들은 우리는 질 수가 없다고. 가장 밑바닥이라 이제는 올라갈 곳밖에 없다고 했다. 가장 밑바닥에서 심지어는 길바닥으로 그들을 몰아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쫓겨났지만 입을 다물지 않았다. 더는 올라갈 곳밖에 없기 때문에, 이들은 목소리 내기를 멈추지 않는다.

이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은 우리 모두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아주 힘있게, 꼭 이길 수 있을 거라는 확신으로. 그렇다면 지금 그곳으로 달려가는 건, 바로 여기 내 자리를 지키는 것이기도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