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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니지 혁명:
민중이 독재자를 쫓아내다

혁명이 미움받던 독재자를 몰아냈다. 수많은 사람이 거리로 몰려나와 새롭게 얻은 자유를 축하했다. 마치 역사책의 한 구절 같겠지만 이것은 2011년 튀니지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이다.

1979년 이란 샤가 몰락한 이후 처음으로 중동 지도자가 혁명으로 쫓겨났다. 이 사건은 북아프리카와 중동에 엄청난 파장을 가져오고 있다.

1월 19일 독재자를 몰아낸 튀니지 민중들의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

알제리, 요르단, 이집트 지배자들은 튀니지 민중의 용기와 단호함이 다른 곳에서 민중 항쟁을 일으키고, 그것이 지배자들의 지위를 위협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큰 충격을 받았다.

언론들은 ‘폭력’과 ‘혼란’을 주로 보도하지만 그것은 엉뚱한 곳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오히려, 튀니지 혁명은 평범한 사람들이 잔혹한 정권에 맞서 기본적 권리를 요구해 그것을 성취한 얘기다.

과거 많은 튀니지 사람은 정부와 맞서 싸우기를 두려워했다.

튀니지 혁명은 평범한 사람들이 잔혹한 정권에 맞서 기본적 권리를 요구해 그것을 성취한 얘기다.
집권여당인 입헌민주연합(RCD)의 신정부 참여에 반발하는 시위가 1월 19일에도 계속 되고 있다.

[쫓겨난] 대통령 지네 알아비디네 벤 알리는 경찰과 민병대로 구성된 막강한 네트워크를 이용해 권력을 유지했다. 이들은 모든 저항을 잔인하게 진압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많은 경찰도 민중을 막을 수 없었다. 튀니지 사람들은 빈곤, 식량가 상승, 14퍼센트가 넘는 실업률 등을 더는 참을 수 없었다.

지난주 금요일 튀니지 사람들은 통행금지령을 어기고 거리로 몰려나왔다. 군중은 벤 알리가 그려진 현수막을 찢어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수년 동안 심각한 빈곤과 억압에 고통받아 온 사람들은 벤 알리 일가 소유의 ‘럭셔리’ 맨션과 빌라에 침입했다.

어떤 사람은 수영장 근처에 먹다만 가재 요리를 집어들고는 불쾌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럼 벤 알리 가족은 빵은 안 먹었나 보군.”

사람들은 환호하면서 투쟁 의지를 불태웠다.

파델 벨 타에르는 알자지라 방송에 이렇게 말했다. “내일부터 우리는 이 정권이 완전히 물러날 때까지 거리에서 시민불복종 행동을 지속할 것입니다.”

분신을 통해 이번 저항을 일으킨 계기를 만든 모하메드 부아지지의 누나 레일라 부아지지는 이렇게 말했다. “내 동생은 튀니지 사람들 속에 살아 있습니다. 그가 우리를 위해 많은 문을 열어 준 덕분에 우리는 이제 민주주의와 자유의 냄새를 맡을 수 있습니다.”

모하메드 부아지지는 분신했을 때 겨우 26세 청년이었다. 일자리를 얻을 수 없어 그는 노점상을 열고 청과물을 팔았다. 경찰이 그의 유일한 생계수단을 모두 압수하자 그는 고향인 시디 부지드로 돌아왔다.

2010년 12월 17일 그는 마을 광장으로 갔고 자기 몸에 석유를 뿌리고 불을 붙였다.

이 사건이 대형 반란을 낳은 것은 모하메드의 상황이 보편적이었기 때문이다. 경제 위기로 수많은 튀니지 사람이 빈곤으로 고통받았다. 그러나 벤 알리와 그의 똘마니들은 사치스런 생활을 했다.

일단 시위가 시작되자 정부는 경찰 발포로도 그들을 막을 수 없었다. 어떤 사람은 거의 2백 명이 발포로 사망했다고 주장한다.

똘마니들

언론들은 시위대의 ‘폭력’을 비난했다. 그러나 진짜 폭력을 행사한 것은 독재 정권을 유지하려고 모든 수단을 동원한 벤 알리와 그의 폭력배들이었다.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 발포했다. 그들은 심지어 숨진 사람들의 장례식에도 발포했다.

그러나 이런 탄압은 시위대 규모를 더 불리는 데 일조했고 이 시위는 이윽고 민중 항쟁이 됐다.

벤 알리는 2014년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등 타협안을 내놓으며 자기 자리를 보존하려 애썼다.

그러나 이미 너무 늦었다. 튀니지가 1956년 프랑스한테서 독립한 후 대통령이 딱 두 명 집권했고, 벤 알리는 2대 대통령으로 장기 집권했다.

그의 권력 기반은 굳건한 듯이 보였지만 단 며칠 만에 튀니지를 떠나 사우디아라비아로 망명해야 했다.

원래 그는 파리로 날아가 자신의 동맹인 프랑스 정부에게 안식처를 제공받기를 바랐다.

그러나 프랑스 대통령 니콜라 사르코지는 벤 알리를 환영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사르코지는 프랑스에 사는 튀니지 사람들 1백만 명이 항의 시위를 벌이는 것을 두려워했을 수 있다.

벤 알리는 미국 정부의 굳건한 동맹으로서 ‘테러와의 전쟁’에 적극 호응해 미국 정부가 운영하는 고문 캠프를 오가는 비행기들이 자국에 착륙할 수 있게 허가했다.

그래서 벤 알리가 끝났다는 것이 명백해진 후에야 버락 오바마는 시위대의 ‘용기’를 칭찬한 것이다.

그러나 미국 국무장관 힐러리 클린턴은 반란이 다른 곳에서 확산돼 미국 정부의 필요에 잘 호응하지 않는 세력이 전면에 등장할 가능성을 우려한다고 발설했다.

클린턴은 이렇게 말했다. “현상 유지에 목을 매는 통치자들은 자기 나라에 존재하는 문제가 초래할 격변을 잠시 유예할 수는 있겠지만 영원히 막을 수는 없다.

“만약 지도자들이 긍정적인 전망을 제시하고 청년에게 의미있는 삶을 제공하지 않는다면 다른 세력이 그렇게 할 것이다.”

앞으로 사태가 어떻게 진행될까?

튀니지 민중은 약속된 새로운 선거를 그냥 기다리면 된다는 의견을 귀가 따갑게 듣고 있다.

물론, 새로운 선거는 투쟁의 성과다. 그러나 저항의 동력이 약화된다면, 옛 지배자들 중 일부가 다시 통제력을 회복할 것이다.

튀니지 민중 운동은 무소불위의 권력자를 몰아냈다. 그들은 더 많은 것을 성취할 수 있다.

튀니지 노동자, 학생, 실업자 들은 불가능한 것을 가능케 만들었다. 그들은 자신이 만든 혁명을 계속 밀어붙일 수 있다.

그들은 부자들의 지배와 우선순위에 도전해 완전히 다른 사회를 만들 수 있다. 이윤 창출이 아니라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시키려는 사회 말이다.

튀니지는 사회주의 사회를 위한 투쟁을 일보 전진시켰다. 우리 눈앞에서 혁명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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