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읽기 전에 ‘오바마의 대북정책 ― 북한의 ‘위협’을 이용하기’를 먼저 읽으시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오바마는 북한의 위협을 해소하려 하기보다 이용하려 하는 것일까? 이를 이해하려면 세계적 판도에서 일어나는 제국주의 질서의 장기적 변동과 그에 대처하는 미국의 전략을 알아야 한다.

세계 질서 변동은 세계 경제력 분포의 변화에서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 제2차세계대전 종전 직후 미국은 세계 산업생산의 50퍼센트를 차지했지만, 1980년대 25퍼센트로 하락했고, 2008년 경제 공황으로 미국 헤게모니는 더욱 금이 갔다. 

반면 지난 20년 새 중국이 부상했다. 중국의 GDP는 1978년 이후 연평균 9.5퍼센트씩 성장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경제 규모에서 중국은 2005년에 영국을 제쳤고, 그 뒤 독일을 따라잡았고, 2010년 2/4분기에는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 경제 대국이 됐다.

특히, 중국은 동아시아 경제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아시아 나라들의 대중국 무역이 급속히 늘었고, 2008년 경제 공황에서 회복되는 데서도 중국의 구실이 결정적이었다.

균형 외교

남한의 경우만 봐도, 2002년까지 남한의 제1위 수출국은 미국이었으나 2003년부터 중국으로 바뀌었고, 2006년까지 남한의 제1위 수입국은 일본이었으나 2007년부터는 중국으로 바뀌었다. 지난해 말 기획재정부는 한·중·일 경제통합이 한국 경제에 이롭다는 자료를 냈다.

이처럼 세계 경제력의 분포가 변하고 중국이 강국으로 떠오르자 국가 간 질서에도 조금씩 조심스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한국 지배계급의 일부는 한미동맹 일변도 외교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임동원·정세현·이종석 등 김대중과 노무현 정부의 통일부 장관을 지낸 인사들이 주축이 된 한반도평화포럼은 올해 신년사를 통해 “균형 외교”를 주장했다. 이들은 “중국과의 교역 규모가 미국과 일본의 교역 규모를 합친 것보다 더 큰 시대”라는 점을 강조했다.

비록 천안함과 함께 몇 달 만에 침몰하긴 했지만 아시아 중시를 내세웠던 일본 민주당 정부의 전 총리 하토야마는 또 다른 사례다.

미국은 동아시아에서 중요한 동맹인 일본과 한국이 중국과 가까워져 그렇지 않아도 흔들리는 미국의 동아시아 패권이 약화될까 봐 매우 우려한다.

미국이 걱정하는 것은 단지 일본·한국과의 양자 관계가 아니라 동아시아 지역 전체다. 예를 들어, 중국이 자원 운송로나 교역로를 확보하기 위해 해군기지 네트워크를 구축하면 아시아 해안을 주름잡아 온 미국의 지정학적 영향력과 충돌을 빚을 수도 있다.

이간질을 통한 각개격파 전략

미국은 중국의 부상에 대응하기 위해 이간질을 통한 각개격파 전략을 구사하려 한다. 오바마가 선거 유세 기간에 끼고 다녀 화제가 된 책 《흔들리는 세계의 축》(The Post American World)에는 이런 조언이 나온다.

“지역 국가들은 자기들 틈바구니에서 헤게모니 국가가 등장할까 봐 걱정”하는데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미국은 이들에게 편리한 동맹”이다. “지역적 패권의 등장은 미국의 영향력을 오히려 강화해 준다.”

요컨대 지역 강국의 등장을 미국의 영향력 강화의 기회로 역이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바마 정부가 댜오위다오/센카쿠 열도 사건에서 취한 태도를 보면 이 전략의 순수한 적용 사례를 볼 수 있다. 미국은 중국이 이 사건에 강경 입장으로 나온 것을 부각시키며 주변국들의 우려를 부추겼다. 그리고는 이 문제가 “미일 안보조약의 적용 대상”이라며 일본을 적극 옹호하고 나섰다.

일본은 그 석 달 뒤에 발표한 ‘신방위대강’에서 중국을 “지역 및 국제사회의 우려사항”이라고 명시했다. 아시아 중심주의를 내세웠던 일본 민주당이 이렇게 입장을 변경한 것은 댜오위다오/센카쿠 열도 사건과 미국의 전략이 미친 영향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은 또 다른 사례다. 천안함 사건이 일어났을 때 미국은 북한을 비난했고, 대북 압박에 동조하라고 중국에 요구했다. 중국이 이를 거절하자(중국은 북한이 불안정에 빠져 난민 쇄도 따위의 형태로 그 여파가 중국에 미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이제 북한을 두둔하고 나서겠다는 것이냐?’며 남한을 적극 옹호했다. 그 뒤 한미 양국은 전략동맹을 강화하고 한국의 MD(미사일방어체제) 가담 수순을 밟고 있다.

미국은 중국과 베트남의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에서도 베트남 편을 들며 개입하고 있다. 미국은 베트남과 군사 및 핵 협력을 강화하려 한다. 지난해 7월 동해에서 훈련을 마친 조지워싱턴호의 다음 목적지는 베트남이었다. 심지어 미국은 베트남에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허용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는데 이는 오바마 정부의 핵 위선을 잘 보여 준다.

신냉전?

이런 식으로 해서 미국은 지난해 동중국해와 남중국해 분쟁에 개입하고, 미일동맹과 한미동맹을 강화하고, 한국군과 자위대가 역내 활동을 강화하도록 하는 등의 성과를 거뒀다. 이 성과들은 2010년 2월에 발표된 미국 4개년 국방검토보고서(QDR)의 ‘중국 해양방어선 확대 저지 방침’과도 맞아떨어진다.

오바마 정부는 중국 ‘봉쇄정책’을 포기하고 ‘전략적 파트너십’을 추구하겠다는 약속과는 정반대 길을 걸어 왔다. 특히 경제 위기 대처 과정에서 중국과 갈등을 빚었고, 한반도 불안정을 이용한 기존 동맹 강화로 중국의 부상에 맞섰다.

이런 갈등이 부각되자 일각에서는 ‘신냉전’ 체제를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중국의 부상에 대한 지나친 단순화이자 과장이다. 냉전 체제란 국가 간 경쟁이 양대 초강대국 블록이라는 양극적 틀 속에 욱여넣어져 양국의 동맹국 지배자들이 그 질서에 복종하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이 없는 질서를 뜻한다.

그렇다면 세계적 차원에서는 물론 동아시아 차원에서도 신냉전은 도래하지 않았다. 남한 지배자들만 봐도 한·미·일 동맹만을 가능한 선택으로 여기지는 않는다. 부상하는 중국의 전략적 이해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지배자들 사이에서도 만만치 않다.

신냉전 상황이 아니라는 것은 세계가 평화롭고 자유롭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와 정반대로 열강의 이해 각축으로 세계는 더욱 유동적이고 불안정하다. 특히, 중국의 부상을 경계하는 미국의 정책 때문에 적어도 10~20년 동안 동아시아 정세는 불안정에 휩싸일 것이고 이와 함께 한반도 상황도 요동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