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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공무원 노동자의 진보적 정치 활동은 죄가 아니다

“한 달에 1만 원씩 진보정당을 후원했다고 이 많은 선생님들을 교단에서 쫓아내는 게 과연 정의입니까?”

신연수 변호사는 서울중앙법원의 한 대법정 스크린에 베스트셀러 《정의란 무엇인가》의 표지를 띄워 놓고 이렇게 말했다.

“20년 전에 노동조합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1천 명이 넘는 교사들이 해직 당했습니다. 우리 사회는 많은 아픔과 고통을 겪고 난 후에야 비로소 ‘교사도 노동자’라는 소중한 교훈을 얻었습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났습니다. 2011년 바로 이 법정에서 교사·공무원의 정치 활동 금지에 종지부를 찍어야 합니다.”

이 교사들을 학교로 돌려보내야 한다.

검찰은 민주노동당 후원 교사·공무원 2백73명에게 징역 6월~1년, 벌금 1백만~1백50만 원을 구형했다. 정치 위기가 심화할 때마다 전교조·공무원노조를 탄압해 저항을 단속하고 우파들을 결집시켜 온 이명박 정부의 작품이다.

정부는 지방선거를 앞둔 지난해 6월에 교사·공무원의 진보정당 후원을 “중대 공안사건”으로 규정하고 대대적인 마녀사냥을 시작했다.

법정에 선 노동자들은 굽힘 없이 정부를 규탄했다. 1월 13일 마지막 재판에서도 그런 광경이 펼쳐졌다.

진보정당 후원을 이유로 새해 첫날 해임된 김병하 교사는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매월 제가 낸 후원금이 개인적 이익[을 채우려는] 비리라는 증거가 있다면 처벌해 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부패한 정치인의 검은 돈을 추적하지 못한 검찰을 질타해 주십시오. 저는 당당합니다. 다시 학교로 돌아가 아이들에게 민주주의를 가르칠 수 있길 바랍니다.”

“오늘 이 재판은 단순히 진보정당에 후원금 몇 푼 낸 것을 단죄하기 위해 만들어진 자리가 아닙니다. 시국선언, 진보정당 후원 등 건수만 잡으면 전교조 교사부터 자르고 보는 [정부의] ‘전교조 혐오 편향’을 잘 보여 주는 자리입니다. 우리는 교사의 신념과 양심을 지킬 것입니다.” 김현주 교사가 말했다.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노동자들은 교단에서 쫓겨나더라도 정부의 탄압에 굴복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리고 사랑하는 아이들 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권영국 변호사는 이런 교사들의 편에 섰다.

“검사는 ‘정치적 중립’을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교사·공무원 들이 특정 정권의 하수인으로 행동하지 말라는 취지입니다. 교사들이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민주노동당에 후원한 것이 문제입니까? 여기 계신 선생님들은 투명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21세기에 18~19세기의 재판을 하고 있습니다. 정당 가입과 정치 활동을 원천 금지한 정당법, 국가공무원법, 정치자금법은 헌법에 위배됩니다. 이 불합리하고 위헌적인 법률 자체가 문제입니다. 변호인단은 이 재판이 끝나는 대로 위헌 소송을 제기할 것입니다.”

박수가 터져 나왔다.

재판에 참가한 한 교사는 “이제부터가 중요한 싸움”이라고 말했다.

“1월 26일 선고가 나면 일부 교사들이 면직 당할 수 있습니다. 교과부는 대량 파면·해임 등 징계를 압박할 것입니다. 전교조의 정치 활동을 위축시키려는 정부에 맞서야 합니다.”

‘공무원·교사 탄압 저지 공동대책위원회’는 항의 조직을 위한 논의를 시작했다. 민주노동당은 1월 24일 당 대표 농성을 시작하기로 했고, ‘다함께’가 제안한 26일 집중 집회도 추진하자고 제기했다.

그런데 아쉽게도 앞장서 투쟁을 이끌어야 할 전교조 지도부는 ‘조합원들이 힘들어 한다’, ‘재판에 안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등의 핑계를 대며 뒷걸음질쳤다. 장석웅 전교조 위원장은 최근 보수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교과부와 협력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교육 현장에서 특정한 정치적 입장을 갖지 않겠다” 하고 말했다.

진보적 신념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MB식 교육정책에 맞서 온 전교조 교사들은 가슴을 쳤을 것이다.

교육은 결코 중립적일 수 없다. 정부는 안보·G20 등의 자료까지 학교에 배포하며 보수적·친시장적 교육을 강요하고 있다. 전교조는 이런 정부에 맞서 진보와 노동자·민중의 편에 서야 한다.

전교조·공무원노조 지도부는 더는 머뭇거리지 말고, 정부의 표적 탄압에 맞서 단결해 싸울 것을 호소하고 조합원들을 방어해야 한다. ‘가벼운 징계를 먼저 요구해 파면·해임 등 중징계를 피하자’는 실용주의가 또다시 고개를 들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우리 편의 정당성과, 싸울 수 있다는 자신감을 떨어뜨릴 수 있다.

진보진영은 ‘시민으로서 후원했을 뿐’이라는 수세적 대응에 머물지 말고, 교사·공무원 노동자의 집단적 정치 활동을 분명하게 옹호해야 한다. 진보진영이 단결해 교사·공무원 노동자 탄압으로 레임덕 위기를 돌파하려는 이명박의 시도를 저지하는 데 함께해야 한다.

“양심과 신념을 지키겠습니다”

이 글은 1월 7일과 13일 서울중앙법원에서 열린 민주노동당 후원 교사에 대한 재판에서 전교조 조합원들이 최후진술한 것을 요약·정리한 것이다.

“저는 고등학교에서 정치를 가르치는 교사입니다. ‘정치적 무관심이 독재를 키우고 민주주의를 후퇴시킨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최근엔 국회 입법조사처에서도 교원의 정치적 자유를 인정하라고 했고, 보수적인 교원단체 교총에서도 이런 주장을 합니다.

“저는 제가 가르치는 것과 똑같이 정치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저의 교육 신념에 맞는 정당에 후원했습니다. 학생들에게 늘 가르치던 것처럼 행동한 것이 죄입니까?”

“전교조는 넘어가면 죽는 금인 줄 알면서도 그것을 밟기를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아이들과 교사들을 숨 막히게 하는 지독하게도 권위주의적인 학교를 바꾸고 싶었고, 우리도 스스로 주인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것은 교사의 양심이었습니다.

“지금의 법령은 이 시대의 요구를 담아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투표하는 것 이외엔 아무런 정치적 권리도 없는 이 숨 막힐듯한 불일치를 이제 끝냈으면 좋겠습니다.”

“G20에 속하는 국가 중에, OECD에 속한 국가 중에 교원의 정치 자유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후진적인 법을 가진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정부는 형사처벌과 해직을 협박하며 정치적 중립을 강요하지만, 강요된 중립만큼 정치적인 것은 없습니다.

“양심을 지킬 수만 있다면 학교를 떠나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짐을 짊어지고 갈 것입니다. 만약 유죄로 판결이 난다고 하더라도 역사의 심판은 끝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