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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 부쳐:
정부의 지원금 확대는 노조의 자주성을 해친다

민주노총 지도부가 며칠 뒤 열리는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 ‘국가 재정 활용 방안’ 건을 상정했다. 안건의 핵심은 ‘미조직·비정규 사업’을 위해 중앙·지방 정부로부터 더 많은 지원금을 받자는 것이다.

민주노총은 현재 사무실 이용에 필요한 건물·토지와 시설 관리·유지비에 한정해 국고 보조금을 지원받고 있다. 선배 노동자·활동가 들이 노동조합의 자주성·전투성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해 온 자랑스런 역사를 돌이켜 보면, 이마저도 참으로 부끄럽다.

그런데도 지도부는 정부 지원금을 더 받자고 한다.

솔직히 기가 막히다.

이명박 정부는 우리 노동자들의 적이다. 정부는 우리에게 고통스런 삶을 강요하고 밥 먹듯이 노조를 탄압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에 맞서 투쟁해 왔다.

그런데 이들에게 돈을 받자니, 노동자의 자존심을 내팽개칠 생각인가?

김영훈 지도부는 이것이 우리 민주노총의 자주성을 약화시키고 투쟁의 발목을 잡을 독약이 될 수 있음을 모르는가.

돈이 곧 정치다

내가 노동운동에 눈 뜨면서 알게 된 중요한 운동의 원칙 중 하나는 ‘자본주의에서 돈이 곧 정치’라는 점이다.

자본가들은 자신의 부와 권력을 유지하려고 비리·부패 커낵션도 마다 않고 정치인들의 실질적인 ‘돈줄’ 노릇을 한다. 그리고 정부와 자본가 정당은 막대한 후원금을 지불하는 자본가들의 나팔수 구실을 한다.

반대로, 노동자들은 이런 지배자들에 맞서 우리의 자주적·독립적 정치와 조직을 발전시켜 왔다. 정치 활동과 조직에 필요한 재정도 조합원들과 피억압 민중의 투쟁 기금으로 마련해 왔다. 우리가 넉넉치 못한 살림을 쪼개 십시일반 모은 기금으로 노동조합 활동을 해 온 것은 저들의 압력과 약발림에 흔들리지 않고 싸우겠다는 의지이기도 하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이런 민주노조 운동의 정신을 퇴색시키려 해서는 안 된다.

실용주의는 위험하다

어쩌면 일부 동지들은 ‘정부에게 돈을 받더라도, 좋은 일에 쓰면 되지 않냐’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재정 문제에 실용주의적으로 접근하는 태도는 위험하다.

한국노총이나 일부 시민단체들이 정부 지원금에 목을 매는 것은 그 위험성을 보여 주고 있다. 한국노총 지도부가 투쟁을 회피하는 것은 자신의 온건한 정치 때문만은 아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정부와 기업주들의 지원을 받다보니, 정치적 독립성을 상실한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에 우리를 돈으로 협박한 일도 있다. 당시 거대한 촛불운동으로 궁지에 몰린 이명박은 광우병 대책위에 속한 일부 단체들에게 정부 보조금 지원을 끊겠다고 협박했다.

나는 그때 보수 언론이 ‘민주노총 등 정부를 비난하는 단체들이 황당하게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아왔다’고 조롱하는 걸 보면서 낯이 뜨거웠다. 촛불 시민들이 이 보도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던 것도 기억한다.

민주당 지자체장

민주노총 지도부가 중앙 정부뿐 아니라 지방 정부의 지원금도 받자고 한 것은, 아마 주로 민주당 지자체장을 염두에 둔 듯하다. 이명박 정부가 워낙 노골적으로 노동 조건과 복지 등을 공격하고 있으니, 민주당 지자체장에게라도 지원을 받아 현실을 개선해보자는 심정일 수 있다.

그러나 민주당은 기업주 들의 ‘돈줄’에 기반하고 있는 자본가 정당이다. 그래서 이들의 개혁 시늉은 용두사미로 끝나기 십상이고, 기껏해야 기업주들의 편에 서서 양보와 타협을 중재하고 있다.

민주당 지자체장들은 여전히 많은 미화·시설 노동자들을 비정규직으로 고용하고 있고, 이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있다. 민주당은 집권 10년간 비정규직을 대폭 확대하고 신자유주의 공격과 탄압으로 우리를 고통에 빠뜨린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런 민주당 지자체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으면, 이들에게 독립적일 수 없게 되고 자꾸 타협하라는 압력과 유혹에 빠질 수 있다.

비정규직 조직화

민주노총 지도부가 ‘미조직·비정규 조직’을 핑계 삼는 것도 나로선 불쾌한 일이다.

나는 노동3권도 보장받지 못하는 특수고용직 노동자다. 또한, 내가 속해 있는 건설노조는 거의 모든 조합원이 특수고용직 또는 비정규직 노동자다.

민주노총이 진정 미조직·비정규 노동자들을 조직하려면, 정부 지원금을 늘릴 게 아니라 비정규직 투쟁 연대를 확대하고 정규직·비정규직의 단결을 강화해야 한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지난해 현대차 비정규직 점거파업 때 이경훈 지부장의 연대 회피와 농성 해제 압박을 추수했다. 이것은 현대차 비정규직 동지들의 투쟁에 영감과 희망을 얻은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줬다.

민주노총 지도부가 진정으로 ‘비정규직 조직화’를 하려면 이런 문제점을 고쳐야지 정부 돈을 받는 건 필요한 일이 아니다. 강력한 연대를 통해 홍익대·현대차 등 비정규직 투쟁이 승리해야, 더 많은 미조직·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희망을 갖고 노조로 조직될 수 있다.

민주노총이 조합원들의 투쟁 의지를 잘 반영해 신뢰와 지지를 얻을 때, 재정적 어려움도 해결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