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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계급이 혁명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

이집트 노동자들은 이집트 혁명에서 결정적 구실을 할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독립 노조 활동가들의 네트워크는 이번 항쟁의 도화선을 당긴 1월 25일 시위를 조직하는 데서 중요한 구실을 했다.

이집트 노동계급은 아마도 이집트에서 가장 크고 가장 응집력이 높은 집단일 것이다.

이집트 노동계급은 이 혁명이 지속 심화하는 것에 일관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무바라크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반대하는 투쟁의 최전선에서 싸워 왔다.

2월 6일 타흐리르 광장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는 노동자들

왜냐하면 무바라크 정부는 예전 이집트 정부가 노동자들의 충성을 얻는 대가로 지불해 온 물질적 보상들을 체계적으로 박탈해 왔기 때문이다.

경제 개혁 과정에서 이집트 노동자들의 삶은 갈수록 힘들어졌고 노동자가 ‘민족 발전’ 목표와 동질감을 갖도록 해 왔던 강력한 이데올로기적 영향력도 약화됐다.

그 결과로 국가가 비록 노동자들에게 자유를 주진 않더라도 그들의 기본적 필요 ― 일자리, 주거, 보건, 교육 등 ― 를 충족시켜 준다는 사상의 근거가 취약해졌다.

그래서 2006년부터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노동자 수십만 명이 임금과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거나 자기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파업을 벌였던 것이다. 징세 노동자, 방직 노동자, 방위산업과 수에즈 운하의 노동자들이 대표적 사례다.

무시못할 소수의 노동자들은 국가뿐 아니라 국가에 종속된 부패한 노조연맹에서 독립해서 노동자들을 조직하려는 용감한, 많은 경우 성공적인 투쟁을 벌였다.

그 중 가장 중요한 사례는 세무서공무원 노동자들의 투쟁이었다. 2007년 저임금 공무원 5만5천 명이 참가한 파업을 주도한 파업 위원회를 직접적인 모태로 해서 징세 노동자들이 독립노조를 만들었다.

2월 9일 카이로 람세스에서 징세노동자가 "정권퇴진"을 요구하는 배너를 들고 있다.

또 다른 중요한 독립노조 활동으로는 마할라 알쿠브라의 방적 노동자 투쟁이 있었다.

그들은 2008년 4월 6일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전국적 총파업을 호소하고 가두시위를 벌였다.

독립 노조원들의 네트워크는 저항 과정에서 정치적 요구와 계급적 요구를 점점 서로 결합시킬 수 있었다.

지금 그들은 무바라크 정부를 제거하고 최저임금을 인상하고 일용직 노동자들을 상용직 노동자로 만들어야 한다고 요구하며 투쟁을 벌이고 있다.

1월 25일 시위부터 거리에서 제기된 구호들을 보면, 정치적 요구와 사회적 요구가 시위 참가자들의 의식 속에서 상호 결합되고 있음을 잘 알 수 있다.

‘빵, 자유, 존엄성’, ‘변화, 자유, 사회정의’ 같은 구호들은 이집트의 새로운 운동이 어떻게 과거 10년 동안 발생한 투쟁 물결들을 서로 결합시키는지를 잘 보여 준다.

지금 이 운동은 무바라크와 그의 정권을 제거하는 데 힘을 집중하고 있다.

독립적으로 조직된 노동자들은 가두 시위에 정권을 끝장낼 수 있는 강력한 힘을 가져다 줄 수 있다. 즉, “사회정의”란 구호를 현실로 만들 힘이 있는 것이다. 독립 노동자들이 이 투쟁에 참가하는 것은 이집트 혁명 과정을 더 심화시킬 수 있다.

거리 시위에 호응해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였다는 소식이 경찰과 시위대의 충돌이 특별히 격렬했던 수에즈 지역에서 처음 들려왔던 것은 당연하다.

1월 29일 수에즈 철강 노동자들은 무바라크가 물러날 때까지 무기한 파업을 벌이겠다고 선언했다.

반대로, 친정부 노조연맹 지도자들은 꿈속에 살고 있다. 그들은 1950년대부터 정부가 노동자 운동을 탄압하는 데 동조해 왔다.

1월 25일 항쟁이 시작되기 사흘 전에 친정부 노조연맹 위원장인 후세인 메가웨르는 한 야당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확신에 찬 어조로 이집트는 “자유가 억압당하는 튀니지와는 완전히 다르다. … 무바라크 정부는 국민에게 표현의 자유와 정당을 결성할 자유를 보장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집트의 평범한 노동자들은 이 생각에 동의하지 않음을 행동으로 보여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