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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균 칼럼:
무상의료, 무상교육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캐나다 국민이 가장 존경하는 사람 1위는 누구일까? 바로 ‘토미 더글라스’ 다. 영화 식코를 본 사람이라면 언뜻 그의 이름이 기억나기도 할 것이다. 그는 2004년 캐나다국영방송국(CBC)에서 가장 위대한 캐나다인 1위로 선정되기도 했다. 전화기를 발명한 벨이나 인슐린을 발명한 밴팅도 그에 미치지 못했다. (물론 영화 〈식코〉에서 마이클 무어가 물어보았던 샐린 디온이나 웨인 그래츠키도 그에 미치지 못했다.)

토미 더글라스가 캐나다 국민들에게 가장 존경받는 인물 1위이자 위대한 캐나다인 1위를 고수하는 이유는 바로 그가 오늘날 캐나다의 ‘무상의료제도’를 만든 사람이기 때문이다.

1944년 토미 더글라스는 캐나다의 가장 작고 가난한 주인 사스캐치완의 수상으로 당선했다. 그는 여러번의 개혁 끝에 1962년까지 사스캐치완에서 무상의료제도를 성공적으로 도입했다. 3주에 걸친 의사들의 파업이 있었지만 토미 더글라스는 민중의 압도적 지지로 이를 극복한다. 이후 그는 캐나다 사회당 정도에 해당하는 NDP 총재가 되었고 1968년 캐나다 전체에 무상의료제도를 도입했다.

무상의료제도를 둔 나라는 캐나다 뿐이 아니다. OECD 대부분의 나라들이 무상의료에 가까운 제도를 시행한다. 무상교육도 마찬가지다. 유럽에서는 많은 나라들이 대학교에도 돈을 내지 않거나 설령 등록금이 있다 하더라도 한국의 현재 등록금의 반 정도이며 나중에 자신의 소득에 비례해 매우 낮은 이자율로 갚을 수 있다. 소득이 적으면 상환이 유예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무상의료 같은 복지가 돈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생명과 존엄성에 관한 문제라는 것이다.

수명

영국의 경우 미숙련 노동자는 고위 경영자층에 비해 약 7년 정도 수명이 짧다. 무상의료에 가까운 제도를 시행하는 영국이 이렇다. 한국은 이보다 훨씬 더할 것이다.

대체로 한국은 영국보다 계급이나 계층에 따른 수명 차이가 10년 정도는 될 것으로 보인다. 조기사망지수를 보면 강남구와 서초구가 30 정도인데 비해 전남 신안이나 경북 영덕 지역은 세배가 넘는 100정도다. 가난한 지역에서는 75세 이전에 사망할 확률이 3배 이상 높다는 것이다. 즉 어떤 계급에서 태어나는지 어떤 직업을 가지는지에 따라 목숨의 무게가 다르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건강불평등이 심한 한국사회의 의료제도는 돈이 없으면 병원에 못 가게 만드는 제도이다. 이런 현실이 야만이 아니라면 무엇이 야만일까.

요즘 한국사회는 무상복지가 화두다. 지난해 지방선거의 무상급식 공약부터 시작해 오세훈 서울시장의 무상급식 거부 몽니 짓이 지속적인 화제였고, 민주당까지 3+1 무상복지를 내세우기에 이르렀다. 이쯤되자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그리고 조중동이 난리가 났다. 그들이 내세우는 논리는 복지에 돈을 쓰면 경제가 망한다는 것, 그리고 복지는 세금을 많이 내야 가능하다는 세금폭탄론이다.

〈조선일보〉는 지난 1월 17일 ‘아마티아 센’을 인용해 스웨덴 모델로 가려면 “한국민들이 소득의 50퍼센트를 세금으로 내놓을 각오가 돼 있는지”부터 자문해보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아마티아 센이 어떤 맥락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는지 앞뒤 내용이 없어 믿을 수도 없지만, 조선일보가 이런 맥락없는 기사를 통해 얻으려는 효과는 분명해 보인다. 즉, ‘당신들은 복지하러 월급에서 세금 더 낼래?’라는 것.

자 그럼 복지를 위한 ‘돈’ 이야기를 해볼까? 우선 스웨덴 이야기를 해보자. 스웨덴은 임금몫이 68퍼센트다. 한국은 55퍼센트다. 돈으로 계산하면 1백70조 원쯤 된다. 〈조선일보〉가 스웨덴 예를 들려면, 우선 노동자들에게 매년 1백70조 원을 주고 나서 이야기 해야 한다.

아마티아 센? 그는 빵을 살 수 있는 권리 식의 소극적 자유가 아니라 빵을 살 수 있는 능력을 국가가 주어야 한다고 주장한 학자다. 그가 한국에서 자신이 복지에 반대하는 것으로 이용당한 것을 알았다면 기겁했을 것이다.

무상의료, 무상교육, 무상보육, 무상급식에 드는 돈은 대략 30~40조 원쯤 될 것이다. 물론 적은 돈은 아니다. 하지만 이 돈은 지금의 재정위기를 불러온 2008년 경제위기 때 전세계 정부들이나 한국 정부가 기업들을 구제하려고 쏟아 부은 돈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당장 김광수 부소장 말대로 토목공사 등 쓸데없이 쓰는 돈 50조 원이나 탈루되는 세금 50조 원만 거둬도 연 1백조 원은 더 복지에 쓸 수 있다.

돈 문제?

한국 정도 규모의 경제에서 국민총생산의 3~4퍼센트 정도라면 이를 돈 문제로 따지는 것은 단순한 트집일 뿐이다. 더욱이 병원이나 제약회사, 사학자본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면 등록금과 병원이나 제약회사에 들어가는 돈을 대폭 줄일 수도 있다.

복지는 돈 문제가 아니다. 가치의 문제다. 몇년 전 영국에서 환자가 병원에 올 때 돈을 받자는 정부조처에 항의하며 영국개원의협의회가 하루 파업을 벌였다. 그 때 파업을 하고 있는 한 의사에게 기자가 파업 이유를 물었다. 그 의사의 답은 이랬다. “아픈 사람에게 돈까지 받는 게 말이나 됩니까?” 바로 이런 의사의 파업이 있는 사회, 이것이 정상인 사회다.

모든 사람의 목숨은 평등하다. 사람은 돈에 상관없이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 사람은 돈이 없는 집에서 태어나도 긍지를 가지고 학교에서 점심을 먹을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상식이다.

이런 가치를 현실에서 이루자고 하는데 여기에 누가 반대하고 또 누가 주저하는가?

바로 복지에 써야 할 돈을 자신의 주머니에 잔뜩 쌓아 넣고 있는 자들이다. 무상교육, 무상의료, 무상보육은 정상인 사회로 가는 상식이며 단지 우리사회가 야만 사회에서 벗어나는 최소한의 첫 걸음일 뿐이다. 지금 한국사회에서 무상복지를 위해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무상의료·무상교육이 상식이라 여기고 인간다운 사회의 첫걸음임을 믿는 정당과 정치인이며, 또 이를 실현하기 위한 노동자·서민의 운동이다. 그리고 이것을 만드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