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경제 위기 이후 전 세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자본주의 체제의 정당성을 의심하기 시작했고, 한국에서도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같은 책들이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레프트21〉은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비판하고, 대안을 검토하는 연재를 시작한다.

  1. 자본주의는 왜 끔찍한 불평등을 낳는가
  2. 시장은 효율적인가
  3. 금융화와 금융자본만이 주된 문제인가
  4. 기후변화는 어떻게 막을 수 있는가
  5. 국가가 시장의 광기를 통제할 수 있는가
  6. 왜 전쟁은 끊이지 않는가

지금 혁명이 일어나고 있는 이집트에서 국민의 절반이 하루 2달러로 근근히 생활하는데, 무바라크 일가의 재산은 무려 7백 억 달러나 된다. 

그런데 이런 불평등은 독재국가만이 아니라 자본주의에서 일반적인 현상이다. 세계 최고 부자 세 명의 재산이 가난한 48개 나라의 부와 맞먹는 게 자본주의다.

장하준 교수가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에서 지적한 CEO들의 막대한 보수도 자본주의 사회의 불평등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한 사례다. 

자본가들의 부가 엄청나게 증가할 동안, 실업과 빈곤이 넘치는 모순은 자본주의 체제의 작동 방식에서 비롯한다. 

미국 CEO들의 평균 보수는 1960∼70년대에는 노동자 평균 보수의 30∼40곱절 정도였는데, 1980년대 초반부터 급격하게 상승해 2000년대에는 3백∼4백 곱절로 증가했다. 한국에서도 재벌의 핵심 임원들은 연봉이 수십억 원에 이른다.

반대로, 미국 노동자의 평균 보수가 1970년대 이후 실질적으로 거의 오르지 않은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노동자들은 신자유주의 시대에 복지·임금 삭감 등으로 보수가 늘지 않았다.

장하준 교수는 이런 소득 불평등 확대에 대해 정당한 문제제기를 한다. 주류 경제학·언론은 개인의 소득이 각자의 생산성에 따라 결정된다고 주장하는데, 오늘날 미국 CEO들의 능력이 1960∼70년대에 비해 열 곱이나 높아졌다고 보는 것은 황당하다는 것이다.

CEO들의 ‘올바른’ 의사결정으로 기업들이 더 많은 수익을 얻을 수 있다면 CEO들의 높은 보수는 문제가 안 된다는 반론에 대해, 장하준 교수는 CEO들의 의사결정이 조직 구성원들(즉, 노동자들)의 도움으로 내려진다고 반박한다. 더구나 미국 월스트리트의 임원들은 2008년 금융 폭락 이후에도 엄청난 보너스를 받았다.

장하준 교수의 비판은 여기에서 멈추지만 이 문제는 자본주의 사회의 더 깊은 모순을 보여 준다. 

재벌들의 모임인 전경련이 후원하는 한국경제연구원은 장하준 교수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소득 분배 기준은 개인의 기능적인 능력이 아니라 분업 체계와 자본재 투자의 결과인 개인의 부가가치 생산성”이라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기업주들의 생산성은 “자본재 투자의 결과”라는 것이고, 그들이 받는 막대한 보수는 “개인의 기능적 능력”이 아니라 투자의 대가라는 것이다.

사실, 자유 시장 경제를 옹호한 아담 스미스조차 ‘기업주의 경영 능력’ 운운하는 주장을 거부했다. 

“그들[큰 돈을 투자한 기업주와 적은 돈을 투자한 기업주]의 이윤은 이처럼 크게 상이하지만, 그들이 담당하는 지휘·감독노동은 아주 똑같거나 거의 똑같을 것이다. … 자본의 소유자는 거의 아무런 노동도 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자기 이윤이 자기 자본에 정비례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아담 스미스)

즉, 기업주들의 막대한 소득은 그들이 땅, 기계, 공장, 건물 등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생산수단을 소유한 덕분에 노동자들이 생산현장에서 만들어낸 부의 일부를 얻고, 그 부를 이용해 또다시 더 많은 생산수단을 확보하게 된다. 그 결과로 그들의 부는 더욱 더 늘어난다.

노동빈곤층

반대로,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않은 보통의 노동자들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하고 노동해도 처지를 개선하기 힘들다. ‘노동빈곤층’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일하는 사람들이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반면, 무언가를 얻는 자들은 일하지 않는다” 하고 지적했다.

이런 소득 결정 논리는 봉건 사회에서 대지주들의 소득이 그들이 소유한 토지의 양에 따라 결정된 것과 본질적으로 똑같다. ‘자유로운 임금 노동’이라는 자본주의 생산 방식이 이 사회가 계급사회라는 점을 은폐하지만 말이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는 이전 계급사회와 중요한 차이점도 있다. 기업주들은 더 많은 이윤을 얻으려면 끊임없이 새로운 사업 분야를 만들어야 하고 기업의 생산성을 혁신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다. 이런 기술 혁신은 모든 인류를 풍족히 먹이고 입힐 만한 재화를 생산할 기반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는 계급사회며 따라서 생산의 목적은 지배자들이 더 많은 이윤을 얻는 데 있기 때문에 자원과 기술의 사용이 제한된다.

그래서 전 세계에서 무려 30억 명이 하루 2달러 미만의 소득으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데, 부국에서는 농민들이 토지를 경작하지 않는 대가로 국가 보조금을 받는다. 말라리아, 결핵, 이질, 설사병 같은 치료 가능한 질병과 영양실조로 날마다 수만 명의 아이들이 죽는 참극이 벌어지는데도 이를 막아야 한다는 논의는 언제나 말잔치로 끝난다.

또, 묵묵히 일해 온 노동자들이 경제 위기를 이유로 일자리를 잃는 한편, 남은 노동자들은 더 적은 임금을 받고 더 오랫동안 일할 것을 강요받는다.

각국 정부는 거대 은행과 대기업 들을 보호하려고 막대한 돈을 쏟아붓고는, 재정적자가 늘어났으니 노동자들이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하고 복지는 줄여야 한다고 말한다.

생산수단을 독점한 자들이 더 많은 이윤을 얻으려고 투자와 생산을 결정하는 한 끔찍한 빈곤과 불평등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노동자들이 민주적이고 집단적으로 생산을 결정하고 사회의 부를 인류의 삶을 향상하는 데 쓸 때에만 불평등은 해소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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