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은 노무현의 재신임 국민투표를 덥석 물었다가 덫에 걸렸다. 한나라당에 대한 대중의 반감을 과소평가한 탓이다.
게다가 대선자금 비리 역풍이 불었다.
한나라당은 노무현의 측근 최도술이 SK로부터 11억 원을 받았다고 비난했다. 노무현을 탄핵할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놨다.
그러나 정작 한나라당 자신이 대선 때 SK로부터 1백억 원을 받았다. 그 동안 한나라당은 10억 원을 받았다고 우겼다. 한나라당이 중앙선관위에 보고한 중앙당 후원금은 1백10억 원이었다.
한나라당이 불신받는 이유는 단지 부패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 당은 송두율 교수를 “거물 간첩”이라고, 개혁당 국회의원 유시민과 KBS 사장 정연주를 “친북 좌파”라고 비난할 만큼 우익적이다.
또, 노무현이 “친노동적”이어서 노동자를 더욱 강력하게 공격하지 않는다고 비난할 만큼 반노동자적이다.
노무현이 ‘개혁적’이어서 지지율이 하락한 게 아니다. 대중의 개혁 염원을 만족시켜 주지 못했기 때문에 위기에 빠진 것이다.
한나라당이 노무현 정부의 위기로부터 반사이익을 거둘 수는 있다. 그러나 대중의 환심을 살 수는 없을 것이다.
〈조선일보〉조차 “작금의 상황은 그[한나라당] 변신의 노력에 힘입어 온 것이 아니라 노무현 정부의 잇단 실정으로 비롯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전임 좌파 정부들의 실정 덕분에 등장한 우파 정부들이 격렬한 저항에 직면했듯이, 혹 노무현이 불신임돼 한나라당이 집권하더라도 그 비슷한 운명에 처하게 될 것이다.
한편, 노무현의 ‘정신적 여당’을 자처한 열린우리당은 파병 문제를 놓고 내홍을 앓고 있다. 국민참여 통합신당이라더니 국민의 다수가 반대하는 파병조차 반대하지 못하는 이 당에 기대를 걸 까닭이 뭐가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