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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사민당과 브라질 룰라가 갈 길을 보여 줬는가?

심 고문은 1966년 독일 사민당의 연정과 2002년 브라질 룰라의 집권 사례를 모범으로 들면서 연립정부론을 정당화한다. 그러나 이것은 아전인수일 뿐이다.

1966년 독일 사회민주당(사민당)은 우파 기독민주당(기민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했다. 당시 기민당은 대중의 불만에 직면해 와해 직전의 상태였는데 사민당은 이 당에 수혈하는 구실을 자임했다.

당시 사민당 정부가 연정에서 한 핵심적 구실은 노조가 임금 억제를 자발적으로 동의하게 하는 것이나, ‘비상조처법’ 도입을 돕는 것 등이었다. 비상조처법은 노동자 계급의 조직, 특히 파업권을 위협하는 것이었는데도 말이다. 연립정부 참가에 항의해 사민당 평당원들은 당원증을 찢어버리고 항의집회까지 개최했다. 정반대의 이해관계를 가진 계급 사이의 동맹이 노동계급의 독자적 요구와 투쟁을 발목잡는 구실을 한 것이다.

연정 직후 1969년 선거에서 사민당은 집권에 성공했다. 그러나 그것은 연정 덕분이 아니라, 당시 벌어진 광부·철강 노동자들의 전투적 파업 물결 덕분이었다.

따라서 독일 사민당 사례는 연립정부 옹호의 근거가 아니라, 반대의 근거가 돼야 한다.

2002년 브라질 노동자당이 집권할 수 있었던 핵심 이유도 심 고문의 지적처럼 룰라가 자본가 출신의 중도 우파 알렌까르를 부통령으로 지명했기 때문이 아니다. 이것이 보수적 중간계급의 표를 끌어오는 데 도움이 되긴 했으나, 핵심은 2000년대 초반 라틴아메리카를 휩쓴 급진화의 물결 속에서 전임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대중의 거대한 반감이 표출됐기 때문이다.

알렌까르 지명으로 표상되는 우경화는 오히려 룰라에 대한 실망을 자아냈다. 룰라는 집권하자마자 IMF정책을 충실히 이행했다. 극빈층 지원책을 펴긴 했지만, 사실 여기에 투자한 돈은 GDP의 0.3퍼센트밖에 되지 않았다. 오히려 재정의 40퍼센트는 외채 상환에 썼고, 최상위 부자들의 부는 늘었다. 반대로, 공공부문 노동자들은 공격받았다. 여기에 심각한 부패 스캔들까지 더해져 2006년 재선 직전 룰라와 집권당 지지율은 상당히 하락했다.

룰라의 친자본가 정책은 노동자당 왼쪽에서 이탈한 사회주의와자유당(PSoL)을 탄생시켰다. 이번 대선에서도 룰라를 비판한 녹색당 후보가 돌풍을 일으켰다.

룰라가 높은 지지율로 임기를 마칠 수 있었던 것은 운 좋게도 중국 호황의 수혜를 입어서 저소득층 지원책을 유지하며 그럭저럭 버틸 수 있었기 때문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