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가 시작될 때 어떤 사람은 이렇게 물었다. 이집트인들이 과연 아랍 세계에서 가장 강하고 오래되고 잔인한 국가를 상대로 싸울 수 있을까?

3주 후, 옛 독재자는 갔다. 30년 만의 가장 큰 대중 항쟁에 의해 쫓겨난 것이다.

무바라크의 퇴진 발표가 있던 11일, 이집트 민중들이 타흐리르 광장에 모여 환호하고 있다.

이 투쟁은 지하 저항 네트워크, 블로거, 민주주의 활동가, 노조 조합원, 사회주의자 들에 의해 조직된 행동들로 시작됐다.

평범한 이집트인 수십만 명은 튀니지에서 시위와 파업이 벌어지는 동안 숨을 죽이고 있다가 튀니지의 독재자가 물러나자 내심 쾌재를 불렀다. 그들은 돌연 자신들도 아래로부터 이집트를 다시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됐다.

이집트의 최대 야당인 무슬림형제단은 시위 전날 회원들을 거리로 부르겠다고 발표했다.

수도 카이로와 만수라에서 수만 명이 행진했다. 나스라 시, 기자, 슈브라에서도, 알렉산드리아, 수에즈와 룩소르에서도 그랬다.

경찰은 예측과 달리 수백 명이 아니라 수만 명이 방방곡곡에서 행진하는 것을 발견했다.

그 다음 며칠 동안 시위 규모가 커졌다. 그러나 진정한 첫 돌파구는 1월 28일 발생했다. 무바라크 정권은 시위를 막으려고 전화를 끊었고 인터넷을 차단했고 소요 진압 경찰 수만 명을 거리에 배치했다.

모스크의 설교자들은 정권의 노선을 따르는 설교를 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그러나 처음에는 수만 명, 나중에는 수십만 명이 모였고 행진했다.

그들은 카이로 도심의 모든 골목에서 경찰과 싸웠다. 최루탄, 고무총, 심지어 총탄 세례를 받았지만 그들은 타흐리르 광장을 점거할 수 있었다.

경찰로부터 타흐리르 광장을 되찾은 것은 또 다른 중요한 사건이었다. 이집트 전국의 경찰서들이 불탔고 고문실이 파괴됐다.

보안군이 사라졌고 민중이 도시를 통제하게 됐다. 이 때 사람들은 탱크와 함께 들어온 군인들을 해방자로 환영했다.

그러나 무바라크를 굴복시킨 것은 탱크가 아니었다. 거리를 점거한 수십, 수백만의 사람들이었다.

사람들은 화염병, 칼과 돌을 들고 거리를 시위대로부터 뺏으려는 정부 깡패들과 맞서 싸웠다. 사람들은 타흐리르 광장뿐 아니라 알렉산드리아와 방방곡곡의 거점들을 지켰다.

그들은 바리케이드를 세웠고 보도블럭을 깨서 만든 돌로 무장했고 다시 한 번 머리를 숙이기보다는 차라리 죽겠다는 단호함을 보였다.

그러나 만약 또 다른 투쟁의 돌파구가 없었더라면 시위대 수백만 명도 무바라크를 몰아내는 데 충분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무바라크 정부가 타협안을 제시하고, 뒤에서 협상하고 거래를 할 ‘자유주의 정치인들’로 구성된 새로운 얼굴들을 내세웠어도 거리에 있던 수백만 명은 굳건히 자리를 지켰다.

아래로부터 터져 나온 마지막 결정타는 거대한 노동자 파업과 시위였다. 이 파업이 군장성들과 대통령을 분리시켰고 병사들이 혁명에 가담하면서 군 자체의 분열을 낳을 가능성을 만들었다.

따라서 무바라크를 비행기에 태우는 것은 장군들의 몫이었지만 역사를 만든 것은 민중이었다.

타흐리르 광장을 지켰던 라밥은 이렇게 말했다. "혁명 과정은 여성인 나의 삶을 변화시켰습니다.

"저는 지난 2주 동안 하루 24시간을 거리에서 보냈습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성차별적인 말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집단적 기억을 완전히 변화시키는 무언가가 발생했습니다. 모든 이가 그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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