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왜 부패는 끊이지 않는 걸까?  

세계은행과 IMF는 부정 부패가 “해당 사회의 문화적·제도적 결함” 때문이라고 말한다. 정치인과 관료, 기업 경영자들 사이의 부패 고리는 동아시아의 전유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부패는 단지 동아시아와 제3세계만이 아니라 체제 중심부의 문제이기도 하다. 엔론의 몰락은 회사 경영진, 정치인, 은행, 회계법인, 보험회사를 통해 워싱턴에 깊숙이 그물처럼 뻗어 있는 사기의 고리를 드러냈다. 이 스캔들을 조사했던 의회 청문회 의원 248명 가운데 무려 212명이 엔론의 회계 감사를 맡았던 회계법인한테서 돈을 받았다. 비슷한 일이 월드컴 같은 기업들에서도 잇따랐다.

인구가 3만 명인데 은행은 550개나 되는 케이만 군도 같은 조세 회피 지역은 서방 지배자들이 애용하는 자금 세탁의 천국이다. 매일 10억 달러가 이 곳에서 “쉬었다 간다.”

부패가 동아시아만의 특수한 현상이 아니라면 왜 대형 부패 스캔들이 반복될까? 단지 기성 정치인의 탐욕 때문일까?

기업주들의 정치권 로비는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필요한 ‘합리적’ 방법이다. 기업들은 경쟁 기업을 따돌리기 위해 뇌물을 바친다. “수천 가닥의 끈으로 부르주아지와 연결된” 국가 관료와 정치인들 사이의 연줄이 활용된다.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시장이 불안할수록 더욱 그렇다. SK도 이회창 당선이 유력하다는 판단이 들자 한나라당에 보험금을 낸 셈이다. 최도술한테 준 11억 원도 일종의 보험금이다.

한 마디로 말해, 부패는 경쟁에 기초한 자본주의 경제가 조직되는 하나의 방식이자 자본주의의 붙박이 장롱과도 같은 것이다. 보이지 않는 손 뒤에 기업을 돕는 손과 뜯는 손이 있다.

아룬다티 로이가 말했듯이, “결탁에 의한 거래를 성사시키기 위해 우리가 키우는 작물과 물과 공기와 꿈을 기업화하기 위해 [기업은], 인기 없는 개혁을 강행하고 반란을 진압할 충직한 권위주의적 부패 정부들과의 동맹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개별 기업한테는 ‘합리적’일지 모르는 것이 체제 전체에게는 비합리적 낭비가 된다. 왜 우리가 만든 재화와 부가 부패한 관료의 호주머니로 들어가야 하는가?

부패는 이 사회를 더 불평등하고 더 빈곤한 곳으로 만든다. 우리의 월급 봉투에 들어와야 할 돈이 부패한 정치인들이 챙길 사과 박스에 들어간다. 부패 정치인들이 ‘정치자금’을 챙기는 동안 기업과 정부가 부담할 국민연금 기금 액수는 줄어든다.

엔론과 월드컴 같은 기업들이 연방 정부의 도움으로 세금 부담을 줄이는 동안 미국에서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4천5백만 명에 육박한다. 당장 엔론의 시가총액이 한 해에 7백억 달러에서 제로로 급감하자 엔론사에 투자된 다른 무수한 노동자들의 연금 기금이 날아가 버렸다.  부시가 에너지 기업들의 돈을 받는 동안 전력 회사들은 발전소의 낡은 시설들에 눈을 감게 된다.

SK의 뇌물이 정치권에 건너가는 동안 SK 노동자들도 당장 부당해고 협박에 직면했다.

풍토병

이윤 경쟁의 압력이 부패의 원인이기 때문에 시장 개혁은 부패를 없애기는커녕 부패를 더욱 자극한다. 예를 들어 사기업화는 대표적인 부패의 온상이다. 3년 전 필리핀의 에스트라다 대통령은 필리핀 최대 전화 회사를 매각하는 과정에서 2천만 달러를 받았고 결국 물러났다.

‘신자유주의 10년’이라 할 1990년대 내내 세계는 대형 부패 스캔들로 떠들석했다. 이것은 시장 개혁이 부패를 없앨 수 없다는 증거다. 1990년대 옛 소련과 동유럽의 사유화 과정은 부패로 얼룩졌다.

시장 경제의 첨병인 세계무역기구는 가난한 농민들의 삶을 위협하는 카길 사의 부패한 후원을 받고 있다.

시장 개혁이 부패를 없앨 수 있다고 믿는 노무현의 처방은 부패 처방전이 아니라 부패 촉매 방안이다. 그래서 노무현은 부패 구조에 결박당할 수밖에 없다.

유니세프에 따르면, 굶주림이 낳는 예방 가능한 질병 탓에 매일 5세 이하 어린이 3만 4천 명이 죽음으로 내몰린다. 반면, 독일 한 나라만 해도 기업들이 해외 시장에서 계약을 따내기 위해 30억 달러를 뇌물로 쓴다. 그 돈이면 굶주림으로 죽는 어린이들의 목숨을 살릴 수 있다.

부패의 고리를 끊어 내기 위해서는 경제가 움직이는 원리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 부패는 얼굴의 뾰루지가 아니다. 러시아의 사회주의자 보리스 까갈리스키는 “부패는 체제의 산물이 아니다. 체제의 토대”라고 말한다.

경제가 위기에 빠지고 정치 위기가 심각해질수록 부패 스캔들은 풍토병처럼 사회를 휩쓸고 지나간다. 경제 위기 때 기업 경영진들은 막다른 골목에 내몰린다. 기성 정치인들은 막가파식 폭로전에 빠져 든다. 부패는 평범한 사람들의 가슴 속에 쌓인 설움과 분노를 폭발시킨다.

1998년 알바니아 바샤 정권의 몰락, 1998년 인도네시아 혁명, 2000년대 들어와 세르비아의 밀로셰비치 정권과 필리핀의 에스트라다 정권의 몰락 그리고 에콰도르의 대중 봉기, 아르헨티나 봉기 등에서 부패는 주요한 도화선이 됐다.

경쟁을 통한 이윤 불리기가 아닌 사회라면 어떨까? 평범한 사람들이 바로 자신들의 필요와 풍요를 위해 재화와 부를 생산하는 사회에서 부패는 필요하지 않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