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안보리

강대국의 회유와 협박이 난무하는 복마전

 

10월 16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미국이 제출한 이라크 관련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그 결의안의 골자는 미군의 지휘를 받는 유엔 다국적군을 승인하고 이라크의 새 헌법 제정과 선거 관련 일정을 제시한 것이다.

그에 따르면, 오는 12월 15일까지 이라크 과도통치위원회(미국이 임명한 꼭두각시들)가 새 헌법을 입안하고, 선거 일정을 마련해, 안보리에 보고하게 된다.

그러나 “연합임시당국[미국 주도 점령군 당국]과 상황이 허락하는 경우”에, 그것도 “유엔 사무총장의 특사와 협의”해서 그렇게 해야 한다.

유엔 결의안에 따르면, 이라크에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정부가 들어서는 대로 다국적군의 임무는 종료된다.

그러나 “이라크 새 정부의 견해를 고려해 다국적군의 임무를 연장할 수도 있다.”는 문구가 나란히 붙어 있어, 이라크 주권 회복과 함께 반드시 점령 상태가 종식된다는 보장도 없다.

미국의 핵심 요구가 그대로 반영된 이번 결의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된 것은 유엔의 본질을 밝히 보여 준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점령은 명백한 유엔 헌장 위반이다. 그런데도 유엔 안보리가 미국의 손을 들어 주는 자가당착을 보인 것은 유엔이 결국 제국주의 열강, 특히 미국 외교 정책의 도구일 뿐이기 때문이다.

지난 3월 미국은 유엔을 무시한 채 이라크를 침공·점령했다. 그러나 이라크 민중의 거센 저항에 부딪혀 “독자적”인 이라크 점령이 난관에 봉착하자, 지난 9월 7일 유엔에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영국을 제외한 안보리 상임이사국들(러시아·프랑스·독일)은 “반전 동맹”을 자처하며 미국에 반발했다. 미국은 늘 그랬듯이 회유와 압력을 병행했다.

조지 W 부시는 이라크 전쟁 “승리” 선언 직후 “낡은 유럽”으로 몰아세웠던 독일에 대해 역사적 경험을 거론하며 “독일의 반전 입장을 이해한다”고 말했다.

10월 20∼21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과 23∼24일 이라크 재건 지원국 회의 전에 유엔 결의안을 통과시키고 싶었던 부시는 10월 15일 러시아 대통령 푸틴에게 프랑스와 독일을 설득할 시간을 주기 위해 안보리 표결을 연기하는 데 동의했다.

그러나 압력을 넣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튿날인 안보리 표결 당일, 부시는 “예방 전쟁” 독트린을 되풀이했다. “미국은 새로운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우리는 또다시 공격을 받을 때까지 기다리지 않을 것이다. 적들이 다시 우리를 공격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적들을 공격할 것이다.”

 

“반전 동맹”

 

바로 그 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주재 미국 대사 니컬러스 번스는 나토 긴급회의를 소집, 유럽연합(EU)의 독자 방위 계획 추진 움직임이 “대서양 양안 관계를 가장 크게 위협하는 요인 중 하나”라고 비난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미국이 유럽연합의 독자 방위 계획을 “나토에 대한 잠재적 경쟁자”로 여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른바 “반전 3국”이 45분 간의 전화 통화만으로 입장을 180도 바꾼 것은 미국의 압력 때문만은 아니었다.

러시아 대사 세르게이 라브로프는 이라크의 미래가 러시아 국가 안보와 직결된 문제라고 말했다.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제대로 된 이라크 처리 방안을 우리가 찾아 내지 못한다면 중동의 불안정은 계속될 것이다. [그리 되면] 국제적 불안정도 계속될 것이고, 우리[러시아]의 안보 이익도 위험에 처할 것이다.”

영국 총리 토니 블레어는 유럽 대륙의 지배자들에게 미국의 일방주의적이고 공격적인 외교 정책을 막는 길은 유엔의 틀 안에서 미국과 거래하는 것뿐이라고 설득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지적했듯이, 유럽의 지배자들은 미국이 계속 멋대로 행동하게 놔두는 것보다는 유엔의 틀 안에서 움직이도록 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또 외교적 책략을 통해 이라크 원유 확보 기회도 붙잡고 싶었다.

이번 결의안에 찬성하기는 했지만 군대와 재정 지원을 하지는 않겠다고 밝힌 러시아가 마드리드에서 열리는 이라크 재건 지원국 회의에 대표단을 보내 이라크 유전 개발 프로젝트에 참가하려 한 것은 미국과 모종의 뒷거래가 있었음을 시사한다.

요컨대, 이번 결의안 표결을 둘러싸고 옥신각신하던 제국주의 열강은 서로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선에서 적당히 타협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유엔이 열강의 이익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국제 질서를 추구하는 기구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거부권

 

1945년에 창설된 유엔은 전 세계 모든 국가에 총회 회원국이 될 수 있도록 개방했다. 그러나 사실상의 모든 결정권은 5대 주요 강대국, 즉 미국·소련·영국·프랑스·중국이 갖고 있었다.

이 다섯 개 상임이사국이 유엔의 가장 중요한 기구인 안보리를 지배한다. 그들은 자국의 이익에 반하는 어떤 조처에도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그래서 지난 30년 동안 이스라엘은 유엔 결의안을 수십 건이나 어겼는데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았다. 이스라엘의 강력한 후원자 미국이 계속 거부권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라크인 20만 명 이상을 죽이고 사회 기반 시설을 철저하게 파괴한 1991년 걸프전과 그 뒤 13년 동안 어린이 50만 명을 포함해 1백여 만 명을 죽게 만든 이라크 경제제재는 유엔 안보리의 승인을 받았다.

유엔은 결코 평화적 대안이 될 수 없다.

이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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