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 행동이 중요하다

파병 계획 발표에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고 있다.그와 동시에, ‘아무리 다수가 반대해도 결국엔 파병이 결정됐구나’ 하는 실망과 환멸, 그리고 이제 파병이 결정됐으니 어쩔 수 없다는 체념이 공존한다.

하지만 노무현이 파병을 결정했다 해서 이것을 철회시킬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국회가 파병 동의안을 통과시키고 마침내 한국군이 파병된다 해도 한국군을 철수시킬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베트남 전쟁 반대 시위는 미국이 베트남에 대규모 파병을 시작한 지 4∼5년이 지나서야 불붙기 시작했고 초기 반전 시위는 매우 소규모였다.

그러나 반전 대중 행동이 거대하게 일어남에 따라 결국 베트남에서 미군을 철수시킬 수 있었다.

이라크 점령을 종식시키고 파병을 막기 위해서는 반전 행동의 대규모 성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안타깝게도, 이라크 파병 비상 국민행동(이하 국민행동)은 대중 행동보다 소수 행동에 좀더 많은 노력을 쏟고 있다.

국민행동이 1인 시위, 1인 릴레이 단식, 시국회의, 시국 농성, 소수의 기습 시위 등을 선호하는 이유는 기성 언론이 대중 집회보다 이런 행동을 더 주목해 보도해 주기 때문이다.

언론의 외면을 받는 수천 명 규모의 대중 집회보다는 언론의 조명을 받는 1인 시위를 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착각할 법하다.

하지만 소수 행동은 사태의 심각성을 알리는 제한된 효과는 있지만, 흔히 행동을 대규모화하지는 못한다. 보통 시청자가 보기에 그것은 ‘그들만이 할 수 있는 행동’처럼 보이기 십상이다.

반면, 대규모 시위는 전혀 다른 효과를 낸다. 시위에 참가한 사람들은 자신감을 갖게 된다. 시위대의 일부가 되면 자신이 혼자가 아니고 우리 편이 강력한 힘을 갖고 있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시위 규모가 크면 클수록 이 효과도 크다.

 

눈치

 

또, 국민행동은 아래로부터의 대중행동보다 국회의원들을 설득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여긴다.

특히 국민행동은 열린우리당이 파병 반대를 당론으로 정하게끔 ‘견인’하려 애쓰고 있다. 열린우리당 대표 김원기가 파병 찬성 입장을 공공연히 밝히고 있는데도 말이다.

국회의원에게 질의서 보내기, 국회의원 275명 개개인을 담당하는 파병 저지 ‘일대일 지킴이’ 활동 등에 노력을 쏟는 것은 사회의 변화가 위로부터 온다고 보는 사상과 관계 있다.

하지만 국회의원들은 올 상반기에도 반전 여론의 눈치를 살펴, 가장 뒤늦게 반전 대열에 참가했다가, 가장 먼저 반전 대열에서 빠져나간 가장 믿지 못할 세력이었다.

반전 운동이 기층, 즉 진보 단체의 평회원들이 활동하고 있는 작업장·대학·지역사회 등에 바탕을 둘 때만 국회의원들이 우리의 눈치를 살필 정도의 강력한 운동을 펼 수 있다.

국민행동은 파병 찬반 국민투표도 한 대안으로 고려하고 있다. 하지만 국민투표는 대중 행동을 고무하기보다 대중을 수동화시킬 우려가 있다. ‘표’로 심판하자는 논리가 득세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 같은 상황에서 국민 투표 제안은 위험하기까지 하다. 노무현이 재신임 국민투표 대신에 파병 찬반 국민투표를 받아들여 위기에서 빠져나갈 탈출구로 이용하려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노무현에게 면죄부를 주는 셈일 것이다.

지금 중요한 것은 거리에서 파병 결정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도록 아래로부터 운동을 건설하는 것이다.

물론 시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다른 직접적 대중 행동이 필요하다. 특히 노동자 파업이 조직된다면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당장 반전 파업을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활동가들은 경제적 요구만이 아니라 이라크 점령과 파병 반대 같은 요구를 위해서도 노동자들이 파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을 꾸준히 펴야 한다.

정부의 파병 동의안이 마련될 즈음 민주노총이 파병안을 통과시키지 말라며 하루 또는 반나절 파업을 조직한다면 이것은 반전 운동과 노동 운동 모두에 더할 나위 없이 의미 있는 진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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