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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혁명의 성격과 방향 논쟁:
은근히 독재자들을 비호하는 한심한 주장들

국내에도 중동 혁명에서 서방 음모설을 공개적으로 제기하는 진보진영 논자들(주로 자주파들이다)이 있다. 그들은 리비아 혁명만이 아니라 튀니지와 이집트마저도 외부 세력에 조종당한 꼭두각시들의 반혁명으로 규정한다.

그중에서 가장 심한 것은 칭화대 정기열이 〈진보정치〉에 기고한 글이다.

그는 “튀니지, 이집트 독재자들의 분신인 군부세력이 권력을 이어받았기 때문”에 이번 혁명이 알고 보면 미국이 계획한 반혁명이라고 주장했다.

“아프리카, 중동 지역의 수십 년 외세지배세력이 이번 아랍혁명의 배후에 숨어 있다는 사실이 최근 좀더 구체적으로 확인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이 30년 썼던 하수인” 무바라크를 제거한 동기는?

“이집트 ‘무슬림형제단’ 같은 조직화된 민중 정치세력에 의한 혁명적 분출을 무산시키기 위한” 것이 목표였다는 것이다.

정기열의 주장에서 의아한 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먼저, 빈민뿐 아니라 몇몇 저명한 백만장자들을 회원으로 가진 모순적 조직인 무슬림형제단의 지도부는 ‘혁명적 분출’을 자신의 정치적 목표로 삼지 않는다. 그래서 이번 혁명 때도 처음에는 시위에 공식 참가하지 않았다.

게다가, 정기열의 주장과는 달리 이번 혁명은 그동안 무슬림형제단을 집중 탄압해 온 이집트의 친미 독재 정부를 약화시켜 무슬림형제단이 영향력을 늘릴 가능성을 열어 주었다.

미국은 반무바라크 투쟁이 승리하면 이런 변화가 일어날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정기열의 주장과 달리 이번 혁명을 사주하기는커녕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정기열 주장의 또 다른 문제점은 이집트 청년 세대에 대한 경멸에 가까운 적개심이다. 그는 그들을 “배후에서 원격조정이 용이한 ‘젊은 인터넷 세대’”라고 부른다. “‘미국화된’ 혹은 ‘서구화된 젊은 세대’”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집트 청년 세대를 싸잡아 친서방주의자라고 부르는 것은 말이 되질 않는다. 페이스북과 구글을 사용한다고 해서 ─ 나도 사용한다 ─ 친서방주의자가 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중동 혁명을 혁명이 아니라 미국 제국주의의 음모로 보는 또 다른 입장으로는 한호석의 주장이 있다. 그는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일어난 급격한 정치적 변화는 혁명이나 사회변혁과는 전혀 인연이 없는 친미독재정권의 급진적 세대교체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하며 정기열과 대동소이한 주장을 한다.

설상가상

그는 “리비아의 무장반란을 정치적으로 지지하는 것은 미국의 리비아 무력침공 계략에 말려드는 치명적 실책으로 된다”고 주장한다.

그는 반카다피 항쟁을 지지하면서 서방 개입에 반대할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 잘 설명하지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한호석은 심지어 카다피 정권이 제국주의자들의 음모에 걸려들지 않으려고 저항세력을 살살 다루고 있다고 말하면서 카다피의 ‘인도주의적’ 측면을 부각시킨다.

“지금 리비아가 미국군의 무력침공을 받을 위험에 노출되지 않았다면, 리비아군은 당장 반란군을 진압할 수 있다. 진압작전을 주저하는 까닭은, 미국이 리비아군의 ‘민간인 대량학살’이라는 유언비어를 국제사회에 날조, 유포하면서 리비아를 반드시 무력침공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과 맞지 않다. 서방 정부의 개입 논의가 본격화하기 전에 리비아군은 이미 대거 저항세력으로 넘어갔고 덕분에 벵가지가 해방됐다.

게다가, 카다피는 민간인 대량학살이란 딱지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3월 9일 알자지라는 카다피의 반격으로 “최소한 수백 명 ─ 어쩌면 수천 명 ─ 이 죽었다”고 보도했다.

반면 자주파에 속하는 임승수는 ‘중동의 인민항쟁을 보며 드는 몇 가지 단상’이라는 글에서 “중동의 인민항쟁”을 우호적으로 평가한다. “미국 일극체제”와 “미국식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항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임승수는 리비아 항쟁에 대해서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은 듯하다. 그러나 나는 그가 이 문제에서 어떤 입장을 취할지 궁금하다.

그가 공저한 «미국에 맞짱을 뜬 나쁜 나라들»이란 책에서 “리비아의 경우는 주변 국가들을 묶어서 반제국주의 공동전선을 구축하려” 했다면서 우호적으로 언급한 바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짧은 언급은 이 책에서 리비아에 관한 장을 쓴 정호열의 찬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는 “리비아 국민들은 … [카다피의 ‘제3세계 이론’ 덕분에] 행복을 실현할 수 있었으며 … 단순한 허수아비가 아닌 사회적 독자성과 공동체적 연대감을 누리는 국민으로 탈바꿈”했다고 주장했다.

리비아가 내전으로 돌입한 지금 이 순간, 이런 주장의 공허함을 굳이 지적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단지 ‘반미’라는 이유로 기존 국가들에게 진보의 가면을 씌워주는 것은 그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런 입장은 반제국주의를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대한 국제 노동계급의 반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또, ‘반미’라는 이유로 독재국가와 독재자까지 옹호할 뿐 아니라 그것에 맞선 민중 저항을 반대하는 입장에 서는 최악의 오류를 범하기 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