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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 르네상스’ - 문제의 근원

일본 정부의 대응이 잘못된 것은 맞지만 문제의 원인 자체는 지진 아니냐고 묻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도대체 왜 이 불안정한 땅 위에 핵 발전소를 그것도 55기나 세워 운영하고 있는가 하는 데 있다.

1990년대 말까지만 해도 전 세계적으로 핵 발전소 증설 계획은 거의 중단된 상태였다. 1979년 드리마일 섬 사고와 1986년 체르노빌 사고가 가져다 준 충격도 있었고 무엇보다 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 반핵 운동이 중요한 구실을 했다.

일본 정부의 투명한 정보 공개와 한일 정부의 핵 발전 확대·수출 정책 중단을 요구하는 기자회견(3월 14일)

또, 이런 분위기는 주요 자본가들로 하여금 핵 발전소 건설과 유지에 필요한 어마어마한 비용이 과연 경제적인가 하는 회의가 일게 만들었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서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 정부들은 핵발전소 증설 계획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일본과 한국도 이 대열에 동참했고 추가 핵 발전소 설치를 포기한 독일도 최근 수명이 다한 핵 발전소를 계속 가동하겠다고 발표했다.

첫째 이유는 국제 유가가 올라 핵 발전소를 짓는 데 드는 어마어마한 비용을 어느 정도 상쇄하는 효과를 냈기 때문이다. 중국 등 신흥 발전국들의 경제 성장이 유가를 끌어올리기도 했고 이런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의 중동 전쟁이 유가 인상을 더욱 부추겼다. 그러면서 이른바 ‘핵 마피아’로 불리는 핵 산업계의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선진국 정부들의 핵 발전 확대가 핵 산업계의 이윤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그들이 엄청난 보조금을 쏟아부어 가면서까지 핵 발전에 미련을 두는 이유는 앞서 말한 중국의 부상, 미국의 전쟁이 낳은 세계 제국주의 질서의 불안정과 연관이 있다. 특히 한국 같은 나라의 지배자들 사이에서 핵 보유에 대한 열망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이다.

핵 발전과 핵 무기는 다르다는 ‘전문가’들의 난해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사실 둘 사이에 만리장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이 지배하는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농축우라늄 연료봉의 뚜껑도 열지 못하도록 강력히 규제하는 까닭이다.

북핵을 비난하는 남한 정부도 벌써 두 차례나 핵개발 연구를 비밀리에 수행하다 IAEA의 경고를 받은 바 있다. 일본에는 당장 수백 개의 핵폭탄을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이 축적돼 있다.

‘원자력 르네상스’의 계기가 된 것은 역설이게도 기후변화 문제였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 정부들은 핵 발전이 화력 발전과 달리 온실가스를 내뿜지 않는다며 기후변화 대책에 포함시키려 했다. 방사선이 낫냐, 온실가스가 낫냐 하는 어처구니 없는 발상이었기 때문에 유엔기후회의에서도 한동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결국 유엔 기후변화정부간패널(IPCC) 4차 보고서에는 핵 발전이 대안 중 하나로 포함됐다.

교토협약이 처음 시행에 들어간 날 일본 정부는 핵 발전을 대폭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번에 사고가 난 후쿠시마 핵 발전소는 한 달 전에 설계 수명이 다했지만 “수명 연장”이라는 희대의 사기극을 통해 앞으로 10년을 더 가동하기로 했다.

한국 정부도 2007년 수명이 다 된 고리 1호기를 연장 운영하기로 했다. 한 술 더 떠 이명박 정부는 2022년까지 추가로 12기의 핵발전소를 추가로 짓겠다고 선언했다.

1백기가 넘는 핵발전소를 보유하고 있는 미국 오바마 정부도 핵발전소 증설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핵발전은 언제나 근본적인 위험을 안고 있다. 그곳에서 만들어지는 에너지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핵발전소를 가동하는 데 필요한 대부분의 기술과 자원은 그 에너지가 폭주하지 않도록 제어하는 데 쓰인다.

어떤 반핵 운동가는 이를 두고 면도하는 데 도끼를 들고 휘두르는 꼴이라고 꼬집은 바 있다.

핵발전은 위험할 뿐 아니라 비싸기도 하다. 여기에 투자할 돈이면 안전하고 깨끗한 풍력, 태양광 같은 재생에너지에 투자해 훨씬 나은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조처는 다국적 에너지 기업들과 석유 기업들의 저항에 가로막혀 진척되지 않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이윤에 치명타를 날릴 급격한 에너지 전환을 막으려고 과학적 사실을 조작하고 잘못된 정보를 퍼뜨리는 데 어마어마한 돈을 투자하는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따라서 반핵운동은 반제국주의, 반자본주의 운동과 연결돼야 한다. ‘핵 없는 세상’은 미국 제국주의의 수장 노릇을 하고 있는 오바마가 아니라 이런 운동이 그것도 엄청나게 성장할 때에만 이룰 수 있는 목표다.

1호기가 폭발하던 날, 이명박은 아랍에미리트를 향해 전용기를 탔다. 아랍에미리트에 수출한 핵발전소 기공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그리고 현지 기자회견을 연 이명박은 원전 수주에 원유 개발권까지 따 냈다며 자랑스러워 했다.

이명박 정부의 녹색 성장은 완전한 사기임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핵 발전이나 석유 시추는 녹색과 아무 관계가 없다.

이명박 정부의 핵 발전 확대·수출 계획을 좌절시켜야 한다. 그것이 우리와 우리 자손들의 미래를 지키는 길이다.

덧붙여 일본 민중이 빨리 슬픔을 딛고 일어나 무책임한 자국 정부에 맞서 싸울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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