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다니엘 벤사이드, 이후)

저자는 1968년 프랑스 5월 혁명 당시 낭테르 대학 학생운동을 이끈 주역이고 지금은 프랑스 파리 8대학 철학교수다.

동시에 프랑스 LCR(혁명적공산주의자동맹)의 활동가이자 11월 12일부터 파리에서 열리는 유럽사회포럼의 중심 인물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누구라도 저자의 해박함과 깊은 성찰, 번뜩이는 기지에 매료될 것이다.

이 책에는 ‘일반 두더지학에 대한 시론’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저자에 따르면 두더지는 완강하고 고집스럽게 앞으로 향한다. 항상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실패를 맛보지만 낙담하거나 포기하지 않는다.

나는 저항의 빛을 찾아가는 두더지가 바로 지구적 정의를 찾아가는 운동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한겨레〉 서평 기자는 저자가 알뛰세르나 네그리의 이론을 저항을 위한 무기로 바라본 듯이 암시를 한다. 그러나 이 책을 진지하게 읽은 사람이라면 그렇게 평가하기 어려울 것이다.

벤사이드는 알뛰세르주의가 스탈린주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평가한다.

게다가 알뛰세르가 스탈린의 ‘일탈’을 비판했다 해도 마오주의를 대안으로 삼았음을 지적한다.

저자는 알뛰세르의 ‘인식론적 단절’, ‘역사주의 비판’, ‘이론적 반(反)인간주의’라는 세 가지 주요 명제에 관해서도 날카로운 비판을 하고 있다.

결국 “알뛰세르의 이론적 여정을 하나의 실패한 작업으로, 그 자신에게도 고통이 수반됐던 실패한 작업으로 읽는 것이 더 그럴 듯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벤사이드는 데리다에 관해서는 이렇게 말한다. 1991년 소련이 붕괴한 지 2년이 지난 1993년에 데리다는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우리는 이미] 마르크스주의적 준거를 은밀하게 탈정치화하려는 시도가 다가옴을 느끼고 있다.”

무엇보다 저자는 데리다가 “이제 ‘사회 계급’이라는 용어가 나타나는 모든 구절은 나에게 의심스러운 것이 됐다.”고 보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계급투쟁 개념이 문제성을 지닌다는 점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해 그 개념을 폐기시켜 버리는 듯한 바로 그 지점”이 데리다의 핵심 고민이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네그리의 이론과 주장을 아주 간명하게 설명하고 약점을 지적한다. 마이클 하트와 네그리가 쓴 《제국》을 읽다가 속을 끓였던 사람이라면 반드시 이 책의 7장을 읽어 보라.  

그는 네그리의 주장이 “자신의 가설을 구체적 현실의 증거, 가령 자본의 집중, 지리정치학과 군사 전략, 초국적 기업과 국가장치 간의 실질적 연관 등과 같은 증거에 회부하지 않는다는 약점을 갖고 있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위기는 혁명의 기회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트로츠키의 말을 빌어 그 시기를 이렇게 정의한다.

“프롤레타리아트는 더 단호하게 그리고 확신을 가지고 활동할수록, 그리고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중간층을 이끌 가능성이 더 많아질수록, 지배층이 더 많이 고립될수록, 그리고 이 두 계층에게서 사기 저하가 더 두드러질수록, 지배층의 해체가 본의 아니게 혁명 계급에 유리하게 작용할 때.”

독자들은 이 책을 덮는 순간 그 시기가 멀지만은 않았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김어진

《인간에 대한 오해》(스티븐 제이 굴드, 사회평론)

작년 5월 스티븐 제이 굴드가 지병으로 숨졌을 때 미국의 〈뉴욕 타임스〉는 “찰스 다윈 이후 가장 유명한 생물학자가 사망했다”고 전했다. 굴드는 고생물학과 진화생물학 분야에서 뚜렷한 업적을 남긴 학자였지만, 그보다는 사회에 퍼진 생물학적 결정론에 따른 편견을 바로잡는 수많은 대중적 저작으로 더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예를 들어, 유명한 만화 〈심슨 가족〉에 그의 캐릭터가 등장한다.)

스티븐 제이 굴드의 동료들인 르원틴과 레빈스는 “스티븐 제이 굴드 ─ 래디컬하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글에서 이 책을 특별히 언급하면서, 이 책이 생물학적 결정론을 깨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이 책은 두 가지 점에서 “래디컬”하다.

첫째, 인간 정신성에 대한 주장 중 역사적으로 가장 두드러진(그리고 잘못된) 것인 “측정 가능하고 유전적으로 고정된 단일한 지능”이라는 환상을 깨부수고 있다. 굴드는 다면적인 인간의 능력을 ‘지능’이라는 말로 물화하고 수치화한 IQ를 가지고  인종·성·계층 간 차이를 고정시키고, 두뇌의 크기와 뇌의 용량이 인종 간 우열을 보여 준다고 믿은 학자들을  주된 공격대상으로 삼았다.

굴드는 이들 연구의 실험적·통계적 방식을 철저히 파헤쳤다. 그는 이들 연구에서 사용된 표본이 의도적으로 왜곡되었고, 자료가 날조되었음을 증명했다. 이로부터 “객관적인” 과학이라는 기존의 환상에 근본적인 도전을 가했다.

둘째, 유행했다 사라지는 주장들보다는 지능 이론에서 잘못된 ‘기본적 자료’를 제공한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추었다.

사실 지능 이론에서는 똑같은 잘못을 담은 주장이 한 개의 머리를 자르면 두 개가 생겨나는 히드라와 같이 되살아나곤 하는 경향이 있다. 이들은 과거에는 전혀 고려되지 않았던 새로운  논거를 제시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들이 강한 대중적 관심을 끌며 유행하는 이유는 분명 사회 정치적 분위기가 뒷받침되기 때문이다. 가난의 이유를 가난한 사람들에게로 돌림으로써 사회 복지 비용을 줄이고, 소외되고 억압받는 사람들의 변화에 대한 열망을 잠재우려는 지배자들의 욕구와 깊은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다시 솟아나는 머리를 단순히 잘라내는 것만이 아니라 그 심장에 비수를 꽂을 필요가 있다. 굴드 자신이 자랑스럽게 말하듯이 그의 이러한 근본적 접근방식 덕분에 1981년도 저작인 〈인간에 대한 오해〉는 별다른 수정 없이 1994년에 재출간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이 읽기 수월한 것은 아니다. 굴드는 기본적으로 글을 쉽게 쓰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전문적인 저작과 일반인을 위한 해설서 사이에 개념상의 깊이가 달라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면서 통계적·수학적 개념들을 회피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려움을 뚫고 이 책을 독파한 독자들은 “인간의 지능에 대한 신화”를 깨뜨리는 데 필요한 영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강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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