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국가론은 1997년 동아시아 경제 위기의 주범으로 몰리면서 죽었다. 그리고 중국·인도의 성장과 최근 경제 위기를 설명하면서 다시 고개를 내밀고 있다.

진위 여부를 떠나, ‘경제 공황에서 정부의 선택이 기획재정부 강만수 장관으로 대표되는 발전(주의) 국가론’이라는 말(2009)과 좌우파 양쪽이 기웃대고 있는 장하준의 (제도주의적) 발전국가론을 보면 이런 판단을 무시할 수 없다. 물론 완고한 신자유주의자들은 한국에 진정한 의미의 시장자유주의가 한 번도 실현된 적 없다며, 지금도 이를 더욱 강력하게 밀어붙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발전국가론은 근대화론과 종속이론이 후발자본주의 성쇄를 설명하지 못하면서, 1980년대 중반 처음 등장해 1990년대 초중반 인기를 누렸다.

근대화론은 후발자본주의 국가의 경제성장이 서구자본주의의 길을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근대화론의 예견과 달리, 제3세계에서 자본주의 성장이 좌절을 겪으면서 종속이론이 부상했다. 종속이론은 선진 자본주의가 후발 자본주의 발전을 가로막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아시아 신흥공업국의 부상을 설명하지 못하면서 발전국가론에 길을 내줬다.

이는 자율적인 국가의 시장개입으로 경제성장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즉, 시장의 실패를 자율적 국가가 개입해 경제성장을 이뤘다는 주장으로, 남한의 경우 박정희 정권의 경제성과를 인정하면서 억압적인 국가체제를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을 낳았다.

일본을 사례로 분석한 존슨은 국가가 경제에 관여하고 있는 것은 일반적이지만, 일본·남한·대만의 국가는 규제 지향적이지 않고 발전 지향적으로 경제에 관여했다고 말한다. 그 과정에서 일본의 통산성, 남한의 경제기획원, 대만의 경제개발위원회의 구실에 주목한다. 존슨의 발전국가는 정부의 금융 및 통화기관 장악, 과거 남한의 경제기획원과 같은 특정 관료기구의 중요성, 경제 관료의 자율성, 사유재산권과 시장 작동 보장을 특징으로 한다. 암스덴은 한국 사례를 연구했는데, 여기서도 한국 국가는 기업가, 은행가, 산업구조 형성자 기능을 했다.

발전국가론은 다음과 같은 약점을 갖는다.

첫째, 발전국가론은 경제성장과 위기를 분석하면서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아니라 특정 국가의 전략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전략은 특정 상황에 대한 대응에서 시작하는 것으로, 이를 설명하려면 그 배경, 즉 자본축적·계급관계·사회변동들을 설명해야 한다. 다시 말해, 국가 전략이나 특정 제도보다 그 배경이 경제 성장과 위기에 대한 근원적인 설명을 제공한다. 동아시아 맥락에선 이들 국가들이 냉전의 세계체제에 놓여 있었고, 때문에 미국 제국주의 시장에 ‘초대’된 것과 미국 제국주의의 정치·군사전략이 이들 나라의 계급 세력 관계에 미친 영향이 공통으로 중요하다. 더욱이 이른바 남한 ‘발전국가’의 형성도 그러한 바탕 위에 한국전쟁과 반공이데올로기를 통해 지배계급이 장악한 우월한 세력관계, 쿠데타로 인한 저항세력의 패배 속에서 설명될 수 있다.

둘째, 발전국가론에 따르면, 국가·국가관료·국가기구·제도들은 가치중립적이고 복잡한 계급 이해에서 ‘자율’적이다. 하지만 국가는 지배계급이 그 지배를 관철시키기 위해 소유하고 있는 ‘공적’ 형태의 기구다. 그들은 국가를 통해 사회전체를 조직하며, 사회관계를 재생산한다. 남한 발전국가론자들은 대체로 박정희 출현 즈음부터 김영삼 집권까지를 발전국가 시기로 보는데, 이는 국가가 노골적인 폭력을 동원해 자본의 이익을 보호하던 때였다.

요컨대 발전국가론은 후발자본주의의 성쇄를 설명할 일반 이론을 제시하지 못했고, 성장의 특수한 정황을 설명했다고 우겨대도 그 의도와 달리 권위적 국가를 정당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