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운동과 진보진영의 일부 지도자들은 지금 핵발전소 전면 폐쇄를 요구하는 것이 섣부르다고 주장한다. 이른바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지난 3월 16일 환경재단 레이츨카슨 홀에서 열린 시민사회단체 긴급회의에서 민주노총 이창근 정책국장은 ‘핵 없는 세상을 위한 공동행동’ 캠페인을 하자고 제안했는데 일부 참가자들이 국민정서상 수위가 너무 높다며 표현을 바꿀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결국 ‘핵 위협으로부터 안전한’ 이라는 표현이 채택됐다. 이는 ‘평화적 핵 이용’도 부정하며 핵발전 자체를 반대하던 전통적 견해에서 일부 후퇴한 것이다.

심지어 환경운동단체 활동가들 사이에서 ‘핵’이냐 ‘원자력’이냐 하는 표현을 두고도 논쟁이 벌어졌다. 환경운동연합의 한 젊은 활동가는 ‘그동안 우리가 이 표현을 정확하게 고치려고 얼마나 노력해 왔는데 지금 이걸 포기하냐’ 하며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압도적인 지지에 힘입어 ‘핵’이라는 표현이 채택되기는 했지만 일부 환경운동 지도자들은 그런 요구를 하는 활동가들에게 자제를 요청하기도 했다. 

이런 후퇴는 단지 최근의 현상만은 아니다. 

실제로 최근 한국의 환경운동 내에서는 재생에너지 같은 대안을 적극적으로 제시하는 주장을 찾아보기 어렵다.

전체 전력 생산의 3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핵발전이나 나머지 3분의 2를 차지하는 화력발전을 재생에너지로 대체하려면 어머어마한 규모의 변화가 필요한데, 그런 급진적 전망은 실현불가능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영국의 유명한 환경운동가인 조지 몽비오가 핵발전 불가피론을 펴고 있는 것도 비슷한 까닭에서다.

그러나 현재 풍력, 태양광 같은 재생에너지 기술은 반핵운동이 절정에 이르렀던 20~30년 전보다 비약적으로 발전한 상태다. 각국 정부가 외면하고 투자를 회피해 왔는데 말이다. 더는 재생에너지의 대대적인 확대를 가로막는 기술적·재정적 장벽은 없다. 이런 전환이 가능한가 아닌가 하는 문제는 오로지 정치적 의지에 달려 있다. 

그런데 국내 환경운동단체 지도자들 중 일부는 민주당에 정치적으로 의존하며 민주당이 받아들일 만한 수준을 뛰어넘는 대안을 제시하기를 꺼리는 듯하다. 그리고 이런 태도가 더 많은 젊은 환경운동 활동가들로 하여금 급진적 전망을 포기하게 만드는 악순환을 낳고 있다. 

실제로 일부 환경운동 지도자들은 지금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는 반핵 운동의 초점을 오는 4월 재보선에 맞추려 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다함께, 사회진보연대 같은 좌파 단체들이 주도해 도심에서 긴급 집회를 열자고 제안했을 때 탐탁치 않은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중동에서 혁명의 물길이 퍼져가고 있고 사상 초유의 핵발전 사고 때문에 대중의 관심과 불안이 높아진 지금 급진적 전망을 제시하는 대중운동을 건설하지 못한다면 반핵운동뿐 아니라 환경운동에 미래는 없을 것이다. 

급진적 전망

한편, 일부 활동가들은 생태 근본주의적 관점 즉,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희생시켜서라도 에너지 생산량 자체를 줄여야 한다는 관점을 갖고 있다.

물론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서 낭비되고 있는 에너지들, 특히 기업 이윤과 제국주의적 군비 확장을 위해 낭비되는 에너지만 줄여도 상당량을 절약할 수 있다. 주택·빌딩의 열효율을 높이는 것만으로도 에너지 사용을 많이 줄일 수 있을 뿐 아니라 사람들의 삶도 개선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의 수준을 유지하면서도 에너지를 전환할 수 있는 대안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영국의 ‘기후변화저지 캠페인’ 소속 노동조합들이 발행한 팸플릿 ‘1백만 일자리 만들기’가 제안하는 대안 같은 것 말이다. 

수많은 자료들을 토대로 이들은 앞으로 10년 안에 영국 전체 전력의 4분의 3을 풍력으로 대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 핵에너지를 폐기하고 교통 체계를 개선하고 주택 열효율을 개선하는 등의 조처를 통해 정규직 일자리 1백만 개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새로운 일자리 창출은 에너지 전환에 필요한 재정적 부담을 줄여 줄 것이다.

운 좋게도 한국의 전력생산량은 영국과 비슷한 수준이다. 우리도 그런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 

그러려면 한국의 젊은 환경운동가들 사이에서 급진적인 사회 변화의 전망을 부활시켜야 한다. 지금 ‘핵발전 전면 폐기’ 요구는 그런 변화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핵 재앙의 역사

■ 체르노빌 : 1986년 4월 26일, 옛 소련의 체르노빌 핵발전소에서 원자로가 폭발했다. 이 폭발로 수십만 명이 이주해야 했다. 50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한 보고서도 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인구의 7퍼센트(3백30만 명)가 관련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고, 벨라루스는 거의 모든 지역이 방사능에 노출돼 해마다 어린이 1천 명이 갑상선 암으로 사망한다. 

■ 스리마일 : 1979년 3월, 미국 스리마일 섬에 있는 원자로 일부가 냉각 시스템 이상으로 녹아 내렸다. 스리마일 섬을 정화하는 데 14년이 걸렸고, 그 비용은 1조 원이 넘는다. 이 사고 후 미국에서 51개 원자로 건설이 취소됐고, 유럽에서는 대규모 반핵 시위가 벌어졌다. 

■ 윈즈케일 : 1957년 10월, 영국 윈즈케일에서 핵 무기를 위한 플루토늄 생산용 원자로에서 방사능이 누출됐다. 원자로의 노심에서 불이 났고 화재는 이틀 동안 계속됐다. 지금도 이 노심은 여전히 열을 내뿜고 있다.

■ 첼랴빈스크 : 1957년 러시아의 핵 폐기물 저장소에서도 사고가 났다. 50만여 명이 방사능에 노출됐고, 최소한 2백 명이 사망했다.

■ 도카이무라 : 1999년 일본 도카이무라 공장에서 기술자의 실수로 감마선과 중성자선이 대량 방출됐고, 기술자들은 결국 사망했다. 4백 명 넘는 직원들이 방사능에 노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