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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노동자들이 혁명을 전진시키고 있다

내가 지난주 카이로에 도착했을 때 거리는 일상으로 돌아간 듯이 보였다(그것은 잘못된 인상이었다). 카이로 공항에서는 관광객들이 룩소르의 기온과 앞으로 관광 일정에 관해 논의하고 있었다. 거리에는 다른 때처럼 자동차가 가득했다.

그러나 미움을 받던 독재자 무바라크의 축출에 이어 거대한 변화가 진행 중임을 감지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항쟁 당시 주요 길목마다 배치됐던 탱크들은 사라졌다. 내가 탄 택시에는 혁명 열사들을 기리는 플라스틱 표지가 걸려 있었다.

라디오 아나운서는 운전자들이 카이로 순환도로에서 깡패들을 만났을 때 어디로 전화해야 하는지 알려 줬다. 이 깡패들은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서 시위대를 공격했던 자들이다.

1월 25일 무바라크에 맞선 항쟁으로 촉발된 혁명 과정은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

이집트 혁명을 ‘페이스북 혁명’이라고 찬양하는 서방 언론들은 이 점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반무바라크 항쟁에서 각각의 전환점은 새로운 사회적·정치적 과정을 촉발했다.

첫째 국면은 1월 25일 최초의 시위 다음에 시작됐다.

당시 수만 명이 최루탄과 총알에 굴하지 않고 무바라크 하야를 요구하는 시위에 참가했다. 보안군이 시위대를 진압하려 하자 거리 곳곳에서 전투가 벌어졌다.

무바라크 정권은 인터넷와 휴대폰 연결을 끊고 실탄을 지급한 소요 진압 경찰 수만 명을 동원했다. 그러나 시위 참가자의 수는 계속 늘었다.

정권의 통제력이 약해지는 것을 보면서 수십만 명이 시위를 벌였다. 불과 며칠 뒤에는 수백만 명이 행진을 했다. 대다수 시위 참가자들은 고학력자나 영어를 구사하는 블로거나 트위터 사용자가 아니었다. 그들은 교사, 사무직 노동자, 건설 노동자와 학생 등 평범한 이집트인들이었다.

거리 시위 물결은 도도하게 진행됐고, 무바라크 정권은 경찰을 철수해 거리 통제권을 시위대에 넘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정권은 깡패들을 동원해 타흐리르 광장을 시위대의 손에서 되찾으려 했다.

시위 참가자들은 바리케이드를 쌓았고, 돌로 무장한 채 깡패들에 맞서 싸웠다. 깡패들을 물리치자 2월 5일과 6일 시위에 참가한 군중의 수는 더 많아졌다.

무바라크에 맞선 항쟁은 이제 새로운 성격을 띠게 됐다. 무슬림과 가톨릭 교도가 독재에 맞선 혁명적 투쟁에서 단결하게 된 것이다.

파업 물결

그러나 항쟁은 여전히 고비에 서 있었다. 1월 28일 경찰은 거리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이제 군대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비록 군인들이 총구를 시위대를 향해 돌리진 않았지만 사람들은 군인들이 친무바라크 깡패들이 광장에 진입하도록 허용하는 것을 봤다.

2월 8일 거대한 파업 물결이 시작됐다.

이집트 노동자들은 집단적 힘을 사용해 자기 요구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강물에 떨어진 돌이 물결을 일으키고 그 물결이 주변으로 퍼져나가는 것처럼, 파업 물결이 이집트 전역을 휩쓸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졌다. 불과 며칠 뒤에 최소한 노동자 30만 명이 파업을 벌이고 있었다. 대단히 중요한 순간이었다. 이제 혁명이 거리에서 작업장으로 확산되고 있었다.

2월 1일 육군최고평의회는 무바라크를 사임시켰지만 파업은 지속됐다.

또 다른 과정이 파업과 결합됐다. 1974년 포르투갈 혁명 당시 활동가들이 ‘사네아멘투’, 즉, ‘정화’라고 불렀던 과정이 시작된 것이었다. 이것은 사람들의 삶을 지옥으로 만든 ‘작은 무바라크들’을 제거하려는 투쟁이다.

3월 20일 노동자 수백 명이 정부 청사로 통하는 도로를 막고 자기 작업장의 부패한 사장을 내쫓으라고 요구했다.

이 과정은 국가 기구로 확산되고 있다. 최근 기층 압력 때문에 신임 총리는 대중적 혐오 대상인 무바라크의 보안경찰을 해체하겠다고 발표했다.

육군최고평의회의 장군들은 옛 정권 인사들을 재판에 회부하고 옛 정권과 연관된 대기업들의 자산을 동결했다.

물론, 이런 조처 중 일부는 군 지도부를 포함해 아직 남아 있는 옛 정권 인사와 기구들에 대중의 불만이 향하는 것을 막기 위한 술책이다.

그러나 아직 기층 투쟁이 이것을 주도하고 있다.

헌법 개정 국민투표

지난주 토요일[3월 19일] 수많은 이집트인들은 대통령 임기 제한을 포함해 개정된 헌법에 대한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에 참가했다.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혁명적 좌파와 독립 노조 등 다양한 야당 활동가들이 반대 선동을 벌였음에도 이 법안은 77퍼센트 찬성으로 통과됐다.

무슬림형제단이 개헌안을 지지하고 국영 TV가 찬성 여론을 조성한 것이 중요한 구실을 했다.

그러나 작업장과 빈민 주택가에서 벌어지는 투쟁 물결이 혁명의 다음 단계를 결정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