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경제 위기 이후 전 세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자본주의 체제의 정당성을 의심하기 시작했고, 한국에서도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같은 책들이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레프트21〉은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비판하고, 대안을 검토하는 연재를 싣는다.

① 자본주의는 왜 끔찍한 불평등을 낳는가

② 시장은 효율적인가

③ 금융화와 금융자본만이 주된 문제인가

④ 기후변화는 어떻게 막을 수 있는가

⑤ 국가가 시장의 광기를 통제할 수 있는가

⑥ 왜 전쟁은 왜 끊이지 않는가


“시장에 맡겨라. 그러면 ‘보이지 않는 손’이 가장 효율적으로 부를 생산하고 분배하게 해 줄 것이다.” 아담 스미스부터 오늘날 신자유주의자에 이르는 자유시장주의자들의 주장이다.

물론 자본주의 시장 경제가 이전 계급사회와 다르게 생산력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킨 것은 사실이다.

마르크스도 자본주의가 “겨우 1백 년도 못 되는 기간에 과거의 모든 세대를 합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거대한 생산력을 창출해 냈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자본주의 시장 경제는 생산력 발전과 동시에 착취와 빈곤, 엄청난 비효율과 낭비를 낳는다.

이미 1980년대에 세계 인구의 두 배를 거뜬히 먹여 살릴 만큼 생산력이 발달했지만, 여전히 빈곤 때문에 열 살 미만 어린이가 5초에 한 명씩 죽어 가는 것이 시장경제다. 첨단 의학이 발달한 오늘날에도 설사병으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죽어간다.

최근 일본 핵 참사도 자유 시장의 폐해를 극명하게 보여 줬다. 사기업인 도쿄전력은 이윤 논리 때문에 위험을 축소 발표했고 이 때문에 초기 대응에 실패해 재앙이 막대하게 커졌다.

2009년 세계경제 공황을 겪으면서 시장의 신화와 효율성을 의심하는 사람이 더 많아졌다.

이 때문에 장하준 교수처럼 자유시장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장하준 교수는 애초에 “자유시장이라는 것은 없다”고 주장한다.

장하준 교수는 자본주의에서도 모든 것을 자유시장에 맡겨 두고 있지는 않다고 주장한다.

“기업들은 세세한 부분까지 모두 계획을 세우고 그것에 입각해 경제 활동을 한다. … 오늘날 국제 무역량 가운데 3분의 1에서 절반에 해당하는 양이 초국적 기업 내부의 거래”다.

나아가 장하준 교수는 “자유시장 정책으로 부자가 된 나라는 없다”고 주장한다. 한국처럼 많은 국가가 정부가 주도하는 계획을 통해 경제가 발전했다는 것이다.

장하준 교수는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든다고 우리 모두가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하고 주장한다.

실제로 신자유주의가 확산한 지난 30여 년간 부자들은 더 부자가 됐지만 빈곤은 오히려 늘었다.

이처럼 장하준 교수는 ‘자유 시장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신화에 일부 흠집을 냈다.

그런데 장하준 교수는 시장의 효율성 신화 자체를 거부하지는 않는다.

“이윤 동기는 여전히 우리 경제를 돌아가게 하는 가장 효과적인 동기”이고, “시장은 무수한 경제 주체들이 수행하는 여러가지 복잡한 경제 행위들을 상호 조율하는 데 효과적인 메커니즘”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가 제시하는 대안은 “더 잘 규제된 다른 종류의 자본주의”다.

물론 무분별한 이윤 추구가 사람들의 삶을 파괴하지 않도록 시장을 규제해야 한다.

그러나 자유시장이 낳는 비효율과 낭비는 이윤을 위해 경쟁적으로 생산하는 자본주의의 핵심 원리에서 비롯한다. 부분적으로 규제를 한다 해서 이런 문제가 해결되진 않는다.

이윤 경쟁 때문에 기업들은 성과를 공유하지 않고 비슷한 기술을 개발하느라 중복해서 투자한다.

무선 인터넷망을 보더라도, 인터넷망은 전국적으로 설치돼 있지만 기업끼리 공유하지 않기 때문에 같은 지역에 여러 회사가 중복해서 기지국을 설치해야 한다.

또 자본주의에서는 사람들의 진정한 필요를 위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광고, 판촉, 금융투기, 부동산 투기, 군비 지출 등에 엄청난 돈이 든다.

비생산 부문

이런 비생산적인 부문은 점점 늘어, 사이먼 모훈이라는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는 미국에서 이런 비생산적 부문의 임금이 차지하는 비율이 1964년에는 35퍼센트였지만 2000년에는 50퍼센트로 증가했다고 계산했다.

생산적인 부문에서도 더 많은 이윤을 뽑아내려다 보니 낭비가 일상적으로 벌어진다. 예를 들어 병원에서는 하지 않아도 될 CT, MRI 촬영이 이뤄지고, 심지어 한국은 인구 10만 명 당 척추수술 건수가 일본의 일곱 배에 이를 정도로 과잉진료가 심하다.

이윤을 위해 경쟁적으로 생산하다 보니 과잉생산도 항상 벌어진다. 팔려나가지 않아 버려지는 물건과 사고 싶어도 돈이 없어 물건을 살 수 없는 사람들이 언제나 공존한다.

게다가 자본주의는 호황과 불황을 끊임없이 반복해, 발달한 생산력을 끊임없이 파괴해야 하는 체제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윤을 위한 경쟁이라는 동기 부여가 없으면 발전 자체가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까지 모든 발전이 이윤 경쟁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다. 아인슈타인은 “사회 정의와 사회적 책임이라는 열정적 감각”이 자신이 연구하는 동기라고 말했다. 다윈도 수년간 연구해 진화론을 발전시켰지만 이를 전혀 상업적으로 이용하지 않았다.

기후변화에 관해 가장 효과적인 결과물을 낸 사례도 세계적인 협력의 결과였다. 가장 신뢰할 만한 보고를 내놓은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는 1백30여 나라에서 2천5백 명이 넘는 과학자들이 서로 협력하고 자료를 공유하면서 만들었다.

끔찍한 학살 전쟁과 갈수록 커지는 환경 재앙처럼 자본주의가 낳는 비효율과 낭비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것은 없을 것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자본주의 이윤 논리 자체를 거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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