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점령에 반대하면서도 리비아에 비행금지 구역을 설정하는 것 외에 다른 대안은 없다고 생각한다.

서방 정부들은 이런 생각을 부추기고 있고, 유고슬라비아에 대한 인도주의적 개입이 ‘성공’한 것은 그런 생각의 올바름을 입증하는 증거라고 주장한다.

1980년대 말에 불황이 닥치자 유고슬라비아의 여러 지도자들은 다양한 민족 집단들 사이의 긴장을 부추겨 증가하는 노동자 저항 물결을 잠재우려 했다.

그들은 결국 나라를 내전으로 몰아갔고 유고슬라비아는 몇 개의 소국으로 쪼개졌다. 당시 TV 영상은 “인종 청소” 과정에서 민간인들이 공격당하고 자기 집에서 쫓겨나는 모습을 방송했다.

나토는 이 민간인들을 구한다는 명분으로 이른바 ‘인도주의적 개입’이라는 군사 작전을 감행했다.

이 개입은 두 단계로 나눠서 진행됐다.

1993~1995년 사이 진행된 첫째 단계인 ‘데니 플라이트’ 작전에서는 분쟁 당사자 모두를 대상으로 비행금지 구역을 설정했지만, 특히 세르비아 쪽을 표적으로 삼았다.

이 작전은 전투기 비행을 거의 완전히 중단시켰지만 감시하기 힘든 헬리콥터의 움직임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이 기간에 딱 한 번 벌어진 공중전에서 미국 전투기는 세르비아 비행기 다섯 대를 격추했다.

그러나 이런 정책이 저격수나 박격포 공격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전쟁은 갈수록 격화됐고 희생자 수도 늘었다.

1994년에 이르면, 나토는 작전 목표를 지상군 표적, 특히 고라즈데와 사라예보에서 전투를 벌이던 탱크를 공습하는 것으로까지 확대했다.

1999년에 시작된 2단계 개입은 1단계가 끝난 곳에서 시작됐다. 미국과 영국 공군은 코소보 민간인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세르비아를 78일 동안 공격했다.  

이들의 전투기는 9천3백 번 출격해 군사 표적을 공격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기차, 다리, 벨그라드의 중국 대사관과 TV 방송국도 파괴됐다.

나토는 코소보에 대한 세르비아의 지배를 중단시켰고, 코소보는 유엔 보호령이 됐다.

서방 지도자들은 이것을 비행금지 구역 정책의 ‘성공’ 사례로 자주 거론한다.

그러나 이것은 비행금지 구역 정책이 아니었다. 많은 민간인을 죽인 노골적인 제국주의 힘자랑이었을 뿐이다.

그럼에도, 미국 합참부의장 조셉 랄스톤은 이것에 만족했다. 그는 1999년 9월 이렇게 말했다. “떨어뜨린 폭탄의 양에 비교하면 세르비아 민간인 사망자 수는 아주 적다. 1천5백 명도 되지 않는다.”

비행금지 구역은 본격적인 폭격 작전으로 확대됐을 뿐 아니라 그 자신이 설정한 목표를 성취하지도 못했다.

서방 지도자들은 자기들이 보호대상인 민간인들을 공격한 점은 별로 기억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제국주의 힘자랑

한 번은 서방의 공습으로 피난 행렬 속에서 트랙터를 타고 있던 60명이 죽었다.

이 사건을 두고 당시 나토 대변인 쥐세페 마라니 장군이 한 말은 나토가 그리는 ‘인도주의적 개입’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우리 조종사가 자동차들을 공격했을 때, 그것은 군용 자동차였다. 나중에 그것들이 알고 보니 트랙터로 밝혀지더라도 그것은 다른 문제다.”

세르비아에서 독재자 슬로보단 밀로셰비치를 몰아낸 것은 나토 공습이 아니라 민중 항쟁이었다. 오히려 나토 공격은 코소보에서 알바니아인에 대한 ‘인종 청소’가 발생하는 계기가 됐다. 나토가 그것을 막겠다는 명분으로 개입했음에도 말이다.

‘인도주의적 개입’은 보호하겠다던 사람들을 보호하기는커녕, 지역 군벌, 독재자와 깡패 들이 지배하는 나라를 작위적으로 건설하고 지원했다. 따라서 차별과 억압은 전혀 사라지지 않았다.

나토는 냉전 당시 소련과 바르샤바 조약 기구의 위협에 대응한다는 명분으로 설립된 기구다.

냉전은 끝났다. 그러나 나토는 해체되지 않았고 이제 노골적으로 서방 제국주의 도구 구실을 하기 시작했다.

과거 정치인들이 뭐라고 말했건, 나토가 유고슬라비아에 개입하기로 결정한 것은 전략적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서방 열강은 러시아의 영향권 아래 있던 지역으로 자신의 힘을 확장하고 싶었다.

2001년 ‘테러와의 전쟁’이란 이름 아래 진행된 서방 열강의 군사 공격은 인도주의적 개입 정책에서 이탈한 것이 아니라 그것의 연장이었다.

그것은 리비아에서 반복되고 있다. ‘인도주의적 개입’은 여전히 서방 열강의 침략 도구다. 그들이 리비아에 개입하려는 것도 석유 생산에 대한 통제권을 유지하려는 목적에서다.

사람 잡는 ‘정밀’ 폭격

미국과 영국이 발사한 토마호크 미사일이 연일 리비아를 강타했다.

영국 공군은 스톰섀도우 순항 미사일도 발사했다. 이 미사일은 발사 전에 표적에 관한 정보가 제공되기 때문에 ‘발사 후 망각’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이들은 멀리 떨어진 고정된 표적을 공격하는 데 쓰인다.

전 세계 최대 군수업체 중 하나인 영국의 BAE가 이 무기들을 생산한다. 주류 언론과 정부는 이런 무기들이 매우 정확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서방 정부들이 죽인 민간인 숫자를 세어 보면, 이런 주장이 거짓말임을 단번에 알 수 있다.

이라크 전쟁 동안 이런 미사일들이 민간인 수천 명을 죽였다. 1991년 2월 13일 미국 스텔스 전폭기가 바그다드의 ‘지하 군사 시설’에 폭탄을 떨어뜨렸다.

그러나 이곳은 대피소였고 어린아이를 포함해 최소한 5백 명이 죽었다. 불과 사흘 뒤에 영국 폭격기 공격으로 민간인 1백30명이 죽었다.

리비아에서 사용될 이런 미사일과 폭탄 들은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에서와 마찬가지로 정확하지 않다. 이들은 죽이고 파괴하기 위해 만들어진 전쟁 무기다.

리비아인 수백 명이 혁명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 이들은 미국과 영국 미사일에 의해 자기 가족이 죽기를 바라면서 목숨 걸고 싸우지는 않았을 것이다.

유엔 ─ 살인마들의 모임

많은 이가 유엔 안보리가 리비아에 대한 비행금지구역 설정을 결의한 것을 근거로 서방의 공습이 정당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유엔은 언제나 열강의 도구였다.

유엔은 제2차세계대전 후 승자들이 자기들에게 유리한 조건을 조성하려고 만든 기구다.

유엔은 팔레스타인 분단을 정당화했고 콩고의 급진 지도자 파트리스 뭄바를 살해하는 것을 도왔다.

또, 소말리아를 포함해 많은 나라에 살육과 파괴를 가져 왔다.

유엔 안보리는 비토권을 가진 다섯 나라 ―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 ― 로 구성돼 있다.

안보리는 비상임이사국 열 나라를 포함하며, 보통 미국을 핵심으로 하는 열강이 쉽게 자기 뜻을 관철시킬 수 있다.

유엔을 관통하는 무자비한 힘의 논리를 보면, 열강이 서로 협의해 결정을 내리는 것이 더 좋은 결과를 낳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열강과 그 동맹은 엄청난 대학살을 저지르고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아 왔다.

미국은 베트남, 이라크와 수많은 다른 나라를 끔찍한 고통에 빠뜨렸지만 유엔은 수수방관했다.

러시아는 헝가리·체코슬로바키아·아프가니스탄·체첸을 침략했지만 유엔은 이에 책임을 묻지 않았다.

유엔을 구성하는 살인마들을 믿어서는 안 된다.

출처: 영국의 혁명적 좌파 신문 <소셜리스트 워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