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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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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의 처지는 더 나빠지고 있다

저는 IMF 때 비정규직으로 사회 생활을 시작했죠. 특근, 야근 다 뛰어도 월 1백만 원을 받아 본 적이 없었어요. 지금도 하루 10시간씩 일하고 한 달에 겨우 두 번 쉴 수 있을 뿐입니다. 예전에는 10명이 했던 일을 지금은 6~7명이 하지만 짤리지 않은 게 다행일 뿐이죠.

얼마 전까지는 건설 현장 컨테이너에서 살았는데 지금은 운이 좋게도 같이 일하는 동료 집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집을 구해야 하기 때문에 생활이 어렵더라도 월급의 절반을 적금 붓고 있어요. 10년을 생각하고 있는데 치솟는 집값을 보면 솟아날 구멍이 안 보입니다.

결혼도 해야 하는데 요즘은 결혼 비용이 최소 3천만 원 정도 든다고 합니다. 제 월급으로는 몇 년을 모아야 되는 돈이죠. 게다가 주변 동료들이 모두 교육비’의료비’ 등 아이들에게 들어가는 돈을 감당하기 힘들다고 하니 돈 없는 사람들에게는 가정을 꾸리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작년에 그토록 가고 싶었던 대학에 붙고도 등록금이 없어서 포기했을 때는 세상이 정말 원망스러웠습니다. 지금은 한 학기 등록금은 모았는데 4년 동안 등록금을 낼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얼마 전 기획예산처는 예산 심의를 하면서 차상위 빈곤층(준 빈곤층)에 대한 교육, 의료비 지원을 전액 삭감했습니다. 노무현은 무고한 이라크인들에게 총부리를 겨눌 파병 결정을 철회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복지 향상을 위해 더 많은 돈을 투자해야 합니다.

손자일(건설 노동자)

이해남 동지를 그리며 ─ 슬퍼하지 말고 투쟁을 조직하자

2002년 5월부터 세원테크 동지들과 기아자동차 노동해방 선봉대와의 연대의 인연은 시작됐다. 기아선봉대는 세원테크 조합원들과 함께 소자보 작업을 하면서 세원 자본의 노조 파괴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2002년 7월 세원테크에 경찰력이 투입된다는 말에 선봉대는 곧바로 지역의 동지들과 함께 공장 사수 투쟁을 전개했다. 주말이 되면서 사수대오가 줄어들 때쯤 마침내 경찰력이 투입됐다.

우리는 세원테크 동지들을 기아차 기숙사로 데려 왔다.

그날 저녁 기숙사 옥상에서 세원테크 조합원들과 함께 우리는 촛불을 밝히며 공장으로 다시 돌아가자는 투쟁 결의를 다지며 소주잔을 기울였다.

그 순간에도 이해남 지회장님은 조합원들이 행여 위축될까 봐 웃음을 잃지 않고 있었으며 나이 어린 조합원들을 일일이 챙겨주던 모습이 생각난다.

지난 8월26일 이현중 열사가 사망했을 때도 기아 선봉대는 대구로 내려갔다. 분향을 마치고 나서 세원테크 동지들과 소주잔을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 나는 눈물이 글썽거렸지만 울지 않았다.

작년에 함께 투쟁했던 소중한 동지 이현중 열사를 잃었지만, 열사는 투쟁하는 모습을 원했지 우는 모습을 원하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는 우리가 어찌 울 수 있을까….

세원그룹 회장 김문기는 두 얼굴을 가진 자다. 노동자들에게는 탄압을 가하면서도 자기 모교인 영남대에는 몇 억씩 기부를 하면서 대구 지역 유지 노릇을 하는 자다. 한나라당 대구시 지부 재정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 자는 개인 재산이 2천억 원 정도라고 한다. 내년 총선에 나온다는 말도 있다.

10월 23일, 핸드폰에 문자 메시지가 왔길래 확인해 봤더니 이해남 지회장님이 분신을 했다는 것이었다. 난 믿지 않으려 했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기아차 선봉대와 함께 투쟁했던 고 이현중 열사는 운명했고 이해남 동지는 사경을 헤매고 있다. 몇 분의 동지는 지금 차디찬 감옥에 있다.

이해남 동지가 유서에 남겼듯이 ‘이 썩어빠진 세상’을 노동자가 주인 되는 세상, 살맛 나는 세상으로 반드시 바꿔야 한다.

그렇다. 이 땅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우리들의 투쟁으로 소수 지배자들에게 대반격을 가하자. 그 길이 바로 열사의 뜻이다.

이우상(기아차 노동자)

노무현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

저희 공부방은 기초생활보호대상자 자녀들을 무료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선생님들은 무보수로 자원한 직장인과 주부들로 이뤄져 있고 후원금과 교사들의 사비를 모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용석 씨는 아름다운 교육자였습니다. 아이들이 결석하면 집으로 찾아다니며 정성을 쏟았습니다. 낮에 근로복지공단에서 하루 종일 일하다 저녁에 퇴근해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다시 야근하러 가곤 했습니다.

이용석 선생님은 언제나 아이들에게 “사람은 떳떳해야 하며 무엇보다 더불어 살 줄 알아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교육자로서 자신이 한 말을 지키려고 한 것 같습니다.

저는 대선 때 노무현 씨가 가장 믿을만한 사람이라고 보고 그를 지지했습니다. 그러나 이용석 선생님은 20명의 학생들과 맺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렸는데, 국민과 약속을 지키지 않는 노무현은 대통령 자격이 없습니다.

배태준(이용석 씨와 동료였던 공부방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