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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쓰나미 사태가 말한다. 핵의 위험성과 에너지 독립의 필요성을

[필자는 일본 핵발전소 참사 후 일본을 방문한 바 있다.]

일본 핵발전소 참사는 체르노빌 사건의 트라우마를 자극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무분별한 핵발전소 건설을 반대하는 시위가 번져가고 있으며, 시민들은 지역 단위 위주로 시위를 벌이면서 "모든 핵발전소 운영을 정지할 것"과 "일본의 에너지 정책을 바꿀 것"을 요구했다.

집회는 일본 핵실험금지국민회의 등 단체들에서 조직했고, 참가자들은 도쿄전력회사 본부를 거쳐 히비야 공원에 이르렀다. 시위대는 현재 일본이 직면한 가장 중요한 문제는 후쿠시마 제1핵발전소 문제가 아니라, 시즈오까 핵발전소의 운명이며 일단 대지진이 발생하면 시즈오까 핵발전소의 위험성은 후쿠시마 핵발전소보다 더 클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밖에도 언론에 공개되진 않았지만, 코우엔지에서 핵발전 반대 시위가 열렸다. 이 시위는 우리나라 대학가의 운동과 닮은 꼴을 지니고 있었다. 확성기를 통한 토론으로 시작해 경쾌한 음악으로 다함께 행진을 하며 진행됐다.

지난 달 31일부터 1백여 명의 대학생과 시민 활동가들이 도쿄전력 본사 앞에서 후쿠시마 제1핵발전소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는데, 행진을 벌이던 도중 일본 경찰이 갑자기 시위대에 진입해 시위를 주도한 일본의 운동단체인 ‘중핵파’ 활동가 세 명을 전격 체포했다. “천천히 걸어서 행진을 정체시켜” 공안조례법을 위반했다는 이유였다.

일본 공안당국이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태를 계기로 일고 있는 일본 내 반핵 여론을 얼마나 두려워 하는지 잘 보여 주는 사례다.

일본 공안당국의 ‘과민반응’에도 반핵 움직임은 위축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지난 4월 10일 도쿄의 대표적 젊음의 거리인 ‘고엔지’역 일대에서는 2만여 명이 모여 핵발전소 반대 거리행진을 벌였다고 한다.

고시엔 근처에서 재활용품 가게 ‘아마추어의 난’을 운영하는 시민운동가 마쓰모토 하지메가 인터넷과 트위터를 통해 집회 참가를 요청하자 예상을 넘는 많은 사람이 참가했다. 《가난뱅이의 역습》의 저자로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마쓰모토는 한국에 시위를 전파하기 위해 지난해 10월 한국에 입국하려다 한국 정부의 입국금지 인사 명단에 올라 강제 귀국조처를 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천 명 단위의 집회가 드문 일본에서 1만여 명이 넘는 규모의 집회가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태에 대한 일본인들의 위기감을 잘 보여 주는 것이다.

퍼레이드 차량에서 록, 레게 음악 등이 연주되는 가운데 방호복을 입은 사람, ‘NO NUKES’(반핵) 등의 구호가 적힌 팻말을 든 젊은이들이 “원전은 더는 필요없다” 등 구호를 외치며 행진했다. 두 살, 여섯 살짜리 아이들과 함께 참가한 한 여성은 “트위터를 통해 집회를 알게 됐는데, 핵발전을 멈출 수 있는 때는 지금밖에 없다. 이 아이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싶다”고 말하며 행진했다.

도쿄를 중심으로 각 지역에서는 반핵 단체 열 곳이 ‘반원전-긴급 데모행진’을 주최했다. 여기에는 1천여 명 이상이 참가했는데, 이것은 이례적인 규모다.

대체 에너지

현재 일본의 상황은 우리나라와 무관치 않다. 일본 동해에서 쓰나미가 발생할 경우 한국에 미칠 영향은 적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동해 근처에 있는 울진·월성·고리 원자력 발전소가 입을 피해는 일본이 잘 보여 주고 있다.

핵 폐기물을 처리할 방안도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핵 폐기물은 대부분 땅 속 깊이 매장하는 방식으로 처리된다. 나중에 지진이나 지반 침하가 발생할 경우 방사성 물질이 누출될 수 있다. 이제는 핵발전이 아닌 대체 에너지 기술이 절실히 필요하다. 최근 대체 에너지로 떠오르고 있는 신재생에너지는 석유에너지에 맞춰진 현재의 에너지 시스템을 바꿀 핵심적 친환경기술로 이슈가 되고 있다.

생명 있는 것은 끝없이 커지거나 끝없이 작아질 수 없다. 모두 다 나름의 크기를 가지고 거기에 알맞은 활동공간을 갖는다. 우리는 소켓에 플러그를 꽂으면 전기가 흐르고 수도꼭지를 열면 물이 나오는 세상에 살고 있다. 모든 것이 한없이 커질 수 있다고, 끝이 없다고 착각하고 산다. 그리고 뭔가 거대한 것에 붙어 있어야만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전기공급과 같이 말이다.

그런데 독일의 한 조그만 마을이 전력회사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필요한 에너지를 1백 퍼센트 자력으로 충당하고 있다. 펠트하임이라는 주민 1백45명의 조그만 마을이다. 베를린에서 남쪽으로 약 60여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이 마을은 온수와 전기를 재생에너지로 1백 퍼센트 자력 공급하고 있다. 다른 지역의 이장, 면장뿐만 아니라 세계방방곡곡에서 이 마을의 에너지 체계를 배우러 오고 있다. 가격도 기존의 가장 저렴한 에너지공급자가 공급하는 에너지보다 10∼20퍼센트 싸다.

1996년 풍력발전기 몇 대로 시작해 지금은 태양열 전기, 바이오 가스, 자체 변압기, 충전기 등 자력 공급을 위한 시스템을 완벽하게 구비한 상태다. 'Energiequlle' 라는 회사로 시작해 지금은 주민이 모두 주주이며, 이 마을에는 실업도 없다. 자력 전력 생산으로 창출된 일자리가 무려 70개다. 에너지 독립이 불가능하다고? 그것은 거짓말이다.

돈 중심 가치관과 '저탄소 녹색성장’이라는 거짓말

일본 핵발전소 참사가 지금 외치고 있는 것은 단지 핵발전 정지만이 아닐 것이다. 핵발전이 환경문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잘 알려주기 위해 일본의 핵발전소가 경고를 한 셈이다.

핵발전의 위험성에 대해 논란이 있는 가운데 핵발전의 대안으로 '저탄소 녹색성장', 배출권 거래제도가 거론되고 있다. 힘 있는 나라와 기업을 중심으로 녹색에 중점을 둔 성장을 하겠다며 준비를 서두르고 정책들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각 나라에 탄소배출권을 제한하고 이러한 배출권을 사고 파는 등 돈으로 일원화돼 있는 우리 사회 사람들의 가치관이 바뀌지 않는 이상, 나는 저탄소 녹색성장이 잘 될 것 같지는 않다. 돈이 된다면 몰라도, 돈이 안 된다면 절대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탄소를 적게 쓰자, 성장을 녹색으로 하자고 하지만 "저비용 고효율"이라는 말에서 나타나듯이 들어가는 시간과 노력과 돈에 견줘 수지 타산이 맞을 때나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돈 중심 가치관과 저탄소 녹색성장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성장을 왜 해야 하는지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성장 맹목주의'쯤 될 텐데, 사람들은 성장이라면 그냥 조건 없이 좋은 것이라 여긴다.

하지만 성장은 그다지 좋은 것이 아니다. 성장은 경쟁을 통해 인간성을 상실한 결과이기도 하며, 성장에는 사람이나 짐승이 흘리지 않아도 됐을 피와 땀이 스며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가격경쟁력 때문에 단감이나 귤 생산하는 농민들은 죽어나고, 경쟁의 톱니바퀴에 끼여서 산업재해로 사람들이 엄청나게 죽거나 다치며, 이러한 사건의 전말은 은폐되고 돈이라는 자물쇠로 다시 채워진다. 싼 값에 노동력이 거래되기 때문에 우리 사회 소비 능력은 갈수록 줄어들고 결과인 재화는 골고루 나눠지지 못하고 한 쪽에만 쌓인다.

자본의 집적·집중을 위한 덧없고 부질없는 무한순환을 위해서가 아니라면, 성장은 이제 더는 필요 없다. 지금 성장이 안 돼서 문제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성장은 이제 멈춰도 좋다. 핵심은 고르지 못한 데 있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굶어 죽거나 아파 죽을 지경에 놓여 있다. 이런 현실을 타개하는 방책은 성장이 아닌 분배라고 생각한다.

돈 말고 다른 무엇을 중심으로 삼는 가치관이 있을 수도 있다. 성장이 전부는 아니다. 이런 것을 제도 교육이 가르칠 수 있지 않는 이상, 나는 저탄소 녹색성장은 불가능한 거짓부렁이라고 생각한다.

가난하게 사는 즐거움과 보람, 화려해 보이는 성장 뒤에 숨겨진 아픔, 상처, 좌절, 절망, 괴로움, 고통, 쓸쓸함, 외로움 따위를 우리 사회가 일러주지 않고 받아주지 못 하는데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일본 민주당이 집권공약으로 내세웠던 원자력 발전소 추가건립 의지를 멈추지 않겠다고 한다. 그들 또한 이번 사태를 통해 회고할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 후 광우병으로 국민들의 규탄을 받은 것처럼, 한국 시민들은 지구온난화로 심각한 경제난이 오면 이명박을 탓할 것이다. 녹색성장은 쓸모 없다. 사람들은 진정으로 효율적인 방법들과는 반대되는 삶을 살고 있다.

이번 쓰나미는 일본과 여러 나라들에 전한다. ‘환경이 파괴되면 이 사회의 민주주의도, 노동자와 계급의 문제도, 모두가 바라는 진정한 좋은 사회도 없을 것이다’ 라고 말이다. 그리고 촉구한다. ‘저탄소 녹색 성장보다 중요한 것은 에너지 독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