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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에 대한 좌파의 태도는 어떠해야 하나

경제 위기 고통전가로 양극화가 심화하면서 복지에 대한 열망이 높아지고 있다. 이로 인해 심지어 자본가 정당인 민주당마저도 '복지'를 주요 슬로건으로 채택해야 할 정도로 복지 담론이 확산되고 있다.

그런데 학생운동 주요세력 중 하나인 전국학생행진(이하 행진)이 복지를 비판하는 입장을 내면서 눈길을 끌고 있다.

이들은 주간 웹 소식지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 메이데이 특별호③(이하 〈특별호〉)에서 "정말 '복지'하면 우리가 잘살게 되나요?" 라며 "복지? 빛 좋은 개살구!"라고 썼고, 4월 30일 집회 연설에서 "복지는 대안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행진은 복지 담론 비판을 매우 강조하고 있는 듯하다. 《121주년 노동절맞이 대학생 대안찾기 교양 자료집》에서도 투쟁방향 중 하나로 "2012년 총·대선을 앞두고 노동자 운동의 열망이 지배계급의 '복지국가' 담론으로 흡수되고 있는 것을 경계하며, 노동자·민중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노동권'임을 밝"히자고 제시했다.

이는 최근 민주당 등 자유주의 자본가 정당이 복지를 당론으로 채택하면서, 복지를 기준으로 한 선거 연합이 민주대연합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행진은 "복지국가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정권교체가 불가피하고, 따라서 '복지'를 중심으로 개혁적 성향을 지닌 세력들과 정당들이 뭉쳐(민주대연합) 진보적 정권교체를 이루어야 한다"는 개혁주의 진영의 주장에 우려를 표하며 "무분별한 야권연합(을) 비판"한다.(《행진》5호)

의미 있는 문제의식이다. 복지는 '계급 정치'의 문제이다. 지배계급의 손실을 보전하려는 거대한 국가 투자로 재정적자가 심화된 지금, 복지를 늘리려면 자본가들의 부를 사회를 위해 쓰도록 강제해야 한다.

(야권연대 정책합의문을 어기고 한-EU FTA를 합의했듯) 자본가 계급에 기반한 정당인 민주당은 집권 이후 '복지'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을 것이다. 자유주의적 정권 교체로는 복지도 쟁취할 수 없기에, 정권 교체에 기대지 말고 독립적 노동자 투쟁을 건설해 나가도록 주장하는 것이 필요하다.

복지= 빛 좋은 개살구?

그러나 "무분별한 야권 연합 비판"과 "장기적이고 치밀한 '변혁 전략'"(《행진》5호)이라는 옳은 문제의식에 비춰 봐도 노동자·서민의 복지 염원 자체를 폄하하는 듯한 행진의 태도는 적절치 않다.

심지어 박근혜마저도 복지 담론에 동참하는 배경이 무엇인지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지배계급 정치인들이 앞다투어 '복지의 세계'에 뛰어드는 것은, 행진도 지적하듯 "날로 높아지는 민중들의 삶에 대한 불만"이 복지 요구로 표현되고 있고, 이를 무시했다가는 "사회 유지와 통치의 위험요소"(〈특별호〉)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노동계급의 복지 염원은 이미 상수이고, 이것은 지배계급을 위협하고 있다.

좌파의 구실은 노동계급이 염원을 달성할 수 있는 전략과 전술을 제시하고 현실과 투쟁 경험 속에서 좌파적 정치의 유효성을 입증받는 것이다. 지배계급 일부마저도 수용하는 쟁점이라고 해서 종파적 태도를 취한다면, 오히려 이 문제에 대한 주도권을 지배계급과 개혁주의에 넘겨주고, "어떤 식으로든 관리 하는 것"(〈특별호〉)을 돕는 셈이 될 것이다.

한편 행진은 "노동유연성을 그대로 두면서도 사회보험제도 등을 통해 소득을 보전해 준다는 것은 결국 노동자·민중에게 병주고 약주는 꼴"(〈특별호〉)이라며 노동권과 복지 요구를 대립시키고 있다.

물론 진보진영 일부의 '역동적 복지국가론'은 사실상 경제성장론을 받아들이며 '유연안전성'을 주장한다는 점에서 일관되지 않다. 이런 식의 주장은 노동자들의 자신감을 오히려 떨어뜨리고, 복지 확대에도 효과적이지 않다.

그러나 ‘역동적 복지국가론’의 문제점이 복지 자체를 폄하할 근거가 되지는 못한다.

복지 삭감에 맞선 투쟁

우선, 진보진영 전체가 ‘역동적 복지국가론’을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또, 복지를 위한 투쟁은 노동권을 위한 투쟁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 예컨대 유럽에서 벌어진 복지 삭감에 맞선 투쟁은 구조조정에 맞선 투쟁과 결합되고 있다.

G20 정상회의에서 드러났듯 재정긴축은 지배계급이 경제 위기의 고통을 전가하는 주요 수단 중 하나다. 부자들을 위한 투자로 생긴 재정 적자를 복지를 축소하는 것으로 해결하려 하면서, 유럽에서 복지 삭감은 거대한 노동자 투쟁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최근 이명박은 재정건전성을 강화하겠다며 건강보험료 인상을 운운했다. 여전히 끝나지 않은 경제 위기로 인해 한국에서도 복지 삭감 흐름은 계속될 것이다.

따라서 복지 삭감에 대한 저항이 건설돼야 하고, 또 그럴 수 있다. 주류 정치인들이 앞다투어 '복지'를 선언하는 지금, 같은 지배계급의 분열은 오히려 투쟁에 좋은 토양을 마련해 줄 것이다.

행진이 이런 투쟁에 동참하지 않으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러나 복지 자체를 폄하하는 지금 같은 태도로는 '복지 삭감'에 맞서 벌어질 대중투쟁을 발전시키지도, 대중의 "불철저한 인식을 바로 잡"(《행진》5호)지도 못할 것이다.

복지에 대한 좌파의 올바른 태도는 ‘복지 비판’이 아니라 복지 염원 실현을 위한 전략·전술 제시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