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 혁명은 연속혁명으로 발전할 때 혁명이 제기한 과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 연속혁명 연재 두 번째 글에서 에스미 추나라는 1905년 러시아혁명이 마르크스주의 이론에 끼친 영향을 살펴본다.


사회주의자라면 대부분 혁명에 참여하게 되길 꿈꾼다. 혁명가 레온 트로츠키는 두 번 ― 1905년과 1917년 러시아혁명 ― 이나 참여해 지도적 구실을 맡았다.

1905년 혁명은 젊은 트로츠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노동자 운동도 이루 말할 수 없는 영향을 받았다.

1905년 혁명을 촉발한 것은 빠르게 확산된 거대한 파업 물결이었으며 군대의 반란과 농촌의 봉기로 번졌다.

노동자들은 또한 러시아 최초의 민주적 기관인 소비에트, 즉 노동자 평의회를 수립했다. 그들은 소비에트 안에서 전술을 논의하고 노동자 투쟁을 조직했다.

투쟁의 한복판에 있었던 트로츠키는 당시 러시아의 수도인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소비에트 의장으로 선출됐다.

결국 1905년 혁명은 탄압으로 파괴됐지만, 이 혁명은 노동자들이 투쟁의 주역임을 확고히 증명했다.

또, 러시아에서 가능한 혁명은 어떠한 혁명인가를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졌다.

러시아는 당시까지만 해도 전제 군주가 통치하는, 인구 대다수가 농민인 농촌 경제였다.

사회주의자들 대부분은 낡은 질서를 완전히 무너뜨리고 사회주의를 일정에 올리기에 앞서 의회주의적 자본주의 시기를 통과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트로츠키의 견해는 달랐다. 그는 ‘연속혁명’ 이론을 제기했다. 트로츠키는 1905년 경험을 고찰하면서, 노동자들이 혁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자본주의의 틀을 넘어서 사회주의의 가능성을 현실화할 만큼 충분히 강력하다고 주장했다.

트로츠키는 노동자들이 차르(러시아 황제)에 맞서는 성공적인 투쟁을 이끌면서 더 많은 정치적 자유를 얻어낼 수 있는 유일한 집단이라고 주장했다.

자유주의 자본가들은 급진적 변화를 너무 두려워했고 농민들은 변화를 위한 투쟁의 중심에 서기에는 개인적 생산에 너무 매여 있었다.

반대로, 노동자들은 정치적 자유를 위한 투쟁에서는 차르에, 경제적 자유를 위한 투쟁에서는 자본가들에 맞서 싸워야 했다.

따라서 노동자들에게는 자유로운 사회를 향해 혁명을 추진할 힘과 이해관계가 모두 있었다.

불균등결합발전

트로츠키는 러시아의 발전을 세계경제 속에서 분석했다. 자본주의는 서유럽 대부분의 지역에서 등장한 지 한참 뒤에 러시아에 도입됐다. 러시아에서 자본주의의 발전은 서유럽과 똑같은 단계, 즉 소규모 작업장에서 더 크고 선진적인 기업들로 나아가는 과정을 밟지 않았다.

오히려 아직 인구 대다수가 농민인 러시아에 최신기술이 바로 도입됐다. 이 때문에 발전 중인 러시아 경제 한가운데에 응집된 강력한 노동자 집단이 형성된 것이다.

트로츠키는 이 과정을 ‘불균등결합발전’이라고 불렀다. 세계 여러 지역마다 발전의 속도가 제각기 달랐기 때문에 발전 과정은 불균등할 수밖에 없다.

또, 발전은 발전의 여러 단계들이 압축되거나 서로 다른 발전 단계들이 나란히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결합 발전’이었다. 사방으로 자본주의가 확산되면서 세계는 변했지만 불균등결합발전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세계의 질적 특징이다. 

대부분의 남반구 나라에서는 선진적인 기술과 제조 방식이 자급적 농업이나 대규모 슬럼가와 함께 상존한다.

이런 발전의 단계들이 한데 밀집되면서 폭발적인 정치적 혼합 상태가 이뤄진다.

트로츠키는 연속혁명의 발생이 필연이라고 주장하지는 않았다. 연속혁명은 결정론이 아니었다. 그는 러시아든 다른 나라에서든 혁명이 살아남으려면 국제적으로 확산돼야 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파괴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트로츠키의 이론은 1917년 러시아 2월혁명으로 차르가 무너지고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자 그 올바름이 입증됐다.

그러나 그 혁명으로 노동자와 농민이 직면한 문제들, 즉 공장에서의 착취, 농촌의 절망, 제국주의 전쟁이 해결되지는 못했다.

무엇을 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여러 주장들이 난무했다. 10월에 이르자 상황은 양극화됐고 볼셰비키 당으로 조직된 노동자들은 혁명을 전진시켜 노동자 국가를 수립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반동 세력이 운동을 파괴했을 것이다.

10월혁명으로 역사상 유례없는 가장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사회가 출범했다.

러시아혁명을 시발로 유럽과 식민지들에서 투쟁이 급증했다.

그러나 러시아혁명은 독일혁명 등이 실패하면서 국제적으로 고립됐고 외세의 침략, 내전, 기근으로 교살됐다. 덕분에 스탈린이 부상했고 혁명은 파괴됐다.

오늘날에도 트로츠키의 사상은 여전히 매우 유용하다. 연속혁명 이론은 변화를 가져 올 핵심 세력이 노동자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보여 준다.

이 사상은, 진정한 민주주의를 향한 투쟁은 정치적 자유뿐 아니라 경제적 자유를 위한 투쟁이기도 함을 보여 준다.

출처: 영국의 혁명적 좌파 신문 <소셜리스트 워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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