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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효성 연대 파업 10년:
독립적 계급정치와 단결 투쟁의 필요성을 곱씹어야

10년 전 경제 위기 고통전가에 맞선 대표적 투쟁을 앞장서 이끌다가 쓰라린 패배를 당했던 효성 노동자들 일부가 최근 새롭게 민주노조를 설립했다.

“2001년 파업 패배 이후 10년간 죽어지냈습니다. 하지만 해도 해도 너무한 사측을 보며 더는 참을 수 없었습니다. 노조 설립신고를 하고 나니 만감이 교차하고 들뜨네요.” 황태윤 지회장은 10년 전 파업의 기억을 잊지 않고 있었다.

1987년 이후 최대 규모의 가두시위가 벌어진 2001년 6월의 울산

효성 노동자들이 강력한 파업을 벌인 2001년은 경제 위기 속에서 곳곳에서 구조조정 사태가 이어지던 때였다. 당시 정부와 재계는 IMF 위기 고통전가의 연장에서 노동자들에게 뼈저린 고통을 강요했다. 김대중 정부가 약속한 개혁은 완전히 누더기가 됐고 지배계급 내부의 갈등도 깊어져 정부의 정치 위기가 어느 때보다 심각했다.

기름

2001년 5월 28일, 효성 노동자들은 사측의 대량해고에 맞서 13년 ‘무쟁의’를 깨고 전면 파업에 돌입했다. 사측은 가스총·전기봉으로 무장한 용역깡패를 투입해 노동자들을 위협했지만, 그것은 불에 기름을 부었을 뿐이다.

바로 한 달 전에 맨몸으로 저항하던 대우차 노동자들에게 몽둥이 세례를 퍼부은 김대중 정부는 효성 노동자들에게도 경찰 병력 4천여 명을 투입해 무자비한 폭력을 휘둘렀다.

6월 5일, 울산지역을 중심으로 경찰 투입에 항의하는 시위가 시작됐다. 효성에 이어 태광·고합 노동자들이 파업에 가세하면서 이 투쟁은 전국적 초점을 형성했다. 현대차 노동자들도 자발적으로 잔업을 거부하고 가두 투쟁에 나서는 등 연대가 확산됐다. 울산 시내에선 노동자 1만여 명이 모여 1987년 이후 최대 규모 가두시위를 매일같이 벌였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김대중 정권 퇴진’ 구호를 내걸었고, 단병호 민주노총 위원장은 “효성 투쟁은 총노동과 총자본의 싸움”이라며 연대 투쟁을 호소했다.

그러나 민주노총 지도부는 진지하게 대중파업을 조직하지 않았다. 정부의 위기를 활용해 강력한 싸움에 나설 기회였는데 말이다. 지도부가 투쟁을 연기하고 김대중 정부와 타협을 타진하는 동안, 투쟁 규모는 점점 작아졌다. 냉전 우파에 맞서 남북 대화를 추진하는 김대중 정부를 몰아세우지 말고 대화해야 한다는 논리도 작용했다.

특히 현대차 노조 이상욱 집행부는 사측에게 임금 인상을 약속받고는 연대 파업 전선에서 이탈해 버렸다. 효성 노동자들의 절규를 외면하고 투쟁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다. 이상욱 집행부가 당시 대표적인 좌파 노조 지도부였기에 실망감은 더욱 컸다.

그러는 동안 지배자들은 “한국 경제를 위협하는 불법적 이기주의를 중단하라”며 비난을 퍼붓고 강경 대응을 지속했다.

결국 1백13일이나 지속된 효성 파업은 끝내 성과를 내지 못하고 좌절을 겪었다.

사측은 파업이 끝나자마자 대량 징계와 해고를 밀어붙였고, 노조 대의원대회에 개입해 민주노총 탈퇴를 강요했다. 친사측 우파 노조 집행부는 사측의 탄압과 구조조정을 묵인·방조·합의했다. ‘숨 막히는’ 공장에서 수많은 노동자들이 고통을 겪었고, 노동자 두 명이 자살하는 비극도 벌어졌다.

“회사는 수년 동안 비정규직을 늘리고 공장의 개별 라인을 도급화했습니다. 언양 공장에서만 2001년 4백50명이었던 정규직이 3백30명으로 줄었습니다. 10년 동안 임금도 거의 동결됐습니다.”

이런 노동자의 희생 속에서 사측은 엄청난 이윤을 챙겼다. 사장 조현준은 회삿돈을 빼돌려 미국에 호화스런 주택을 네 채나 구입하는 등 횡령도 서슴지 않았다.

이 때문에 노동자들의 불만도 차곡차곡 쌓여 왔다.

“요즘 출근 홍보전 때 노조 소식지를 받아가는 동료들의 눈빛이 달라졌습니다. ‘수고한다’, ‘고생 많제’ 하며 인사를 건네는 동료들을 보면 뭉클합니다. 복수노조가 시행되면 우리와 같이 하겠다고도 말합니다.

“2001년에 파업을 이끌었던 박현정 위원장이 올해 2월에 사망했습니다. 그 동지와 함께 품었던 꿈을 이제 하나 하나 만들어 갈 것입니다.”

황태윤 지회장은 노조를 설립하자마자 2개월 정직을 당하는 등 탄압에 직면했지만, “10년 만에 다시 세운 민주노조 깃발을 다시는 내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면 대결

2001년 효성·태광 연대 파업은 다시금 경제 위기 고통전가가 전개되는 오늘날 우리에게 뼈아픈 교훈을 던지고 있다.

김대중 정부에 맞선 정면 대결을 회피하고 대화·협상을 앞세워 투쟁을 외면했던 민주노총 지도부의 대응은 고통전가를 막아내지 못했다. 보수 우파에 맞서 개혁 정부를 지켜야 한다는 논리도 투쟁의 걸림돌이 됐다.

현대차 조합원들의 임금 인상에만 만족해 부문의 담벼락 안에 안주한 현대차 노조 지도부의 협소한 태도는 전국적으로 이어진 구조조정, 비정규직화, 고용불안 심화를 막지 못했다. 이상욱 집행부의 그 같은 태도는 좌파 노조 지도부에만 의존해서는 투쟁이 전진하기 힘들다는 점도 보여 줬다.

10년 전의 쓰라린 기억을 교훈삼아 경제 위기 고통전가에 맞서 노동자들의 독립성을 지키며 정치적으로 대응하고, 부문을 뛰어넘는 단결과 투쟁을 건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