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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전 출교생들의 손해배상 항소:
부당 징계로 빼앗긴 2년을 돌려받아야 합니다

고려대 당국은 2006년 4월에 나와 동료 학생 6명(김지윤, 서범진, 강영만, 주병준, 조정식, 오진호)을 출교시켰다. 우리가 교육 투쟁 과정에서 ‘교수를 감금했다’고 마녀사냥을 하면서 징계를 했지만, 징계의 진정한 이유는 2005년 5월에 있었던 이건희 명예 철학박사 학위 수여 항의 시위에 대한 보복이었다.
그러나 우리 출교당한 학생들은 부당 징계에 굴하지 않고 천막농성 등 힘겨운 투쟁을 이어갔다. 2년간 이어진 이런 투쟁과 소송을 통해 결국 우리는 재판에서 승리하고 2008년 3월에 모두 복학했다.
이후 2009년 10월에 우리는 고려대 당국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시작했다. 1심 재판부는 지난 5월 19일에 우리의 패소를 판결했다. (☞1심 판결문 보러 가기 / PDF)
그러나 우리는 이 판결에 승복하지 않고 오늘(6월 7일) 재판부에 항소를 했다. 아래 내용은 항소 이유서 전문이다.

고려대 출교·퇴학·무기정학 손해배상 소송 항소 이유

스스로를 변호하며

이 글은 2006년 4월 19일 출교, 2008년 2월 14일 퇴학, 그리고 다시 출교, 퇴학 당한 기간을 무기정학 처분 받았던 고려대 학생들이 손해배상 소송 1심에서 패소(5월 19일)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항소하는 이유를 밝히려는 글입니다.

2006년 5월 고려대 출교에 항의하는 학생들

2006년 4월 5일과 19일에 있었던 사건으로 인해 우리 다섯 명의 운명은 크게 바뀌었습니다. 정의감을 중시하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소박한 마음으로 살던 우리들은 하루 아침에 ‘스승을 감금한 패륜아’, ‘폭력적 학생운동의 전형’이 되었습니다. 성영신 전 학생처장(심리학과)은 우리들을 일컬어 “자기네가 왜 살아야 하냐고. 죽어야 될 때가 되면 죽어야지. 왜 살아야 되는데” 하고 말해 우리들에게 쏟아진 비난을 대변했습니다.[1] 그러나 앞뒤 맥락을 제거하고 현상에만 집중하는 것은 늘 기득권에 유리한 처사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인격은 실은 매우 사회적인 것이다. 낮은 계급 사람들의 인격적 결함은 더 쉽게 드러난다. 품위를 유지하기 어려운 거다. 그런데 경제적 정신적 안락을 확보한 사람들은 얼마든지 자신의 인격적 결함을 드러내지 않고 살 수 있다. 둘의 인격을 한 가지 잣대로 볼 수 있는가? 나는 부당하다고 생각한다.[2]

시간적 여유, 행정적 권한, 물질적 풍요 이 모든 면에서 고려대 당국은 학생들보다 앞섰습니다. 학생들에게 가할 수 있는 금전적, 정신적 타격은 훨씬 컸고, 학생들이 여기에 저항할 수 있는 합법적 경로는 모두 차단돼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들이 택할 수 있는 수단은 얼마 없었고, 우리는 그 수단을 최대한 효과적으로 사용하려 했습니다. 그 결과를 법적으로는 ‘사실상 강제 감금’이라고 부를지 몰라도, 우리들은 그것을 ‘저항’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사회적 배경을 떼어놓은 형이상학적 ‘공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습니다. 법정은 또한 당연히 드러난 사실만을 가지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전후 맥락에 비추어 사건을 판단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소를 제기했고, 거듭 승소했으며, 손해배상 소송까지 제기해 진실을 밝혀 보려 했습니다.

그리고 1심에서 패소한 지금, 다시 한 번 이 사건의 맥락을 다루고, 우리가 생각하는 진실을 말하고자 합니다.

자본에 굴종한 대학과 학생들의 반발

오늘날 한국 대학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말해 주는 사건을 꼽으라면 2005년, 고려대가 삼성 이건희 회장에게 명예 철학 박사 학위를 수여한 것과 학생들이 이에 반발한 것(이하 ‘이건희 시위’), 그리고 이 때의 반발을 계기로 학생에게 정치적 보복을 가하던 학교가 다른 사건을 빌미로 학생들을 출교한 사건(이하 ‘출교 사태’)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일련의 사태는 각각 자본에 굴종한 대학(혹은 스스로 자본이 된 대학),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 사이에 살아있는 양심과 지성, 그리고 학교 당국이 이를 다루는 태도를 보여 줍니다.

지금은 퇴임한 문과대 이상신 교수는 이건희 시위 당시 고려대 당국의 태도를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에게 부적절한 명예 철학박사 학위를 과정과 절차를 은폐한 채 전격적으로 수여”. 이 때문에 많은 교수님들이 자존심과 명예에 상처를 입었습니다. 철학과 학생들은 상실감에 휩싸였습니다.

삼성이 생산하는 반도체 공장의 노동자들이 백혈병을 앓는데도 불구하고 산업재해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삼성의 노동탄압 사례를 다룬 《골리앗 삼성재벌에 맞선 다윗의 투쟁》이라는 책이 출판됐을 정도로 삼성의 노동탄압은 노동계에서 유명합니다. 김용철 변호사는 우리가 출교당해 있을 당시 삼성의 부패상에 대해서 폭로한 바 있습니다. 이런 삼성의 회장에게 명예 철학 박사 학위를 수여한다는 것은 대학 당국의 천박함을 드러내는 일 외에 어떤 것도 아니었습니다.

출교 당했던 우리들을 비롯한 1백 50여 명의 학생들은 바로 이런 점에 항의해 시위를 벌였습니다 그런데 고려대 당국은 이 때 우리가 벌였던 시위를 잊지 않고 있다가 출교 1심 판결에 항소하면서 “상벌위원들이 원고들에 대하여 만장일치로 이 사건 출교결정을 내린 것은 … 삼성 이건희 회장의 명예박사학위 수여식 반대 폭력시위사태 … 등 교내의 주요 시위를 모두 주도”하였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사실, 2005년 5월의 이건희 시위 이후 고려대 당국은 학생회를 집요하게 괴롭혔습니다. 2006년 4월의 강한 충돌은 이 때부터 예고돼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출교 직전의 1년 - 정치 탄압의 연속

고려대 당국은 학생회비 분리납부를 일방적으로 시행하고 학생들의 자치 활동에 대해 강의실 대여 기준을 엄격하게 강화하고, 학생회 지원금이 제 때 나오지 않는 등 학생회에 대한 악의적 괴롭힘을 지속했습니다. 이런 와중에 갈등이 커지면서 학생처 직원이 총학생회 간부를 폭행하는 사건까지 벌어졌습니다. 이런 지경이니 학교 당국과 학생들 사이의 불신이 얼마나 깊었을지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입학처를 점거했던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벌어진 사건이었습니다. 고려대 당국은 2006년 2월에 있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신입생들이 참가하는 것을 막으려 한 것으로 보입니다. 고려대 당국은 신입생들의 연락처를 학생회에 제공하기를 거부했고, 이 때문에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 무산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전교 각 과의 대표들 200명 가량이 입학처를 2박 3일간 점거했고, “개인정보 보호법 때문에 연락처를 제공할 수 없다” 하고 말하던 고려대 당국은 연락처를 제공했습니다.

이후 지금까지 5년간 고려대 당국은 매년 신입생들의 연락처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2006년의 사건을 개인정보 보호를 빙자한 정치 탄압으로 보는 까닭입니다.

고려대 당국은 이 때도 징계를 거론했고, 출교 처분을 할 때 근거로 삼았습니다.

2006년 3월의 등록금 책정 당시도 학교 당국은 일방적이었습니다. 학생들이 등록금 인상 철회가 담긴 요구안을 제출했을 때 학생처장은 요구안을 본관에서 제출했다는 이유로 검토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본관에서 항의 시위를 하던 학생을 당시 경영대 학장이 계단에서 잡아 당겨 굴러 떨어지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학교 당국은 “학생이 교수를 폭행했다” 하고 완전히 상반된 보도자료를 배포했습니다. 학내 언론에 학생이 굴러 떨어지는 장면이 녹화돼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왜곡을 일삼았던 것입니다. 이런 사건들로 학생들과 학교 당국 사이의 불신은 최고조에 이르렀습니다.

출교 사건의 핵심이 되는 통합 병설 보건대 학생들의 투표권 문제 역시 이런 정치 탄압의 일환이었습니다.

총학생회 선거 유세 기간 내내 보건대 학생들의 투표권에 대해 한 마디도 없던 학교 당국이 투표를 앞둔 시점에 갑자기 “보건대 학생들은 고대생이 아니기 때문에 투표에 참여하게 되면 불법이다” 하고 선언합니다. 이 말은 총학생회가 불법화된다는 말이었습니다.

유세 기간이 끝나고 투표를 앞둔 시점에서 이런 제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학생들을 위해 성실하게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가 아니었음은 너무나 명백합니다.

여기에 학벌주의적 차별이 더해졌습니다. 출교생들을 다룬 다큐멘터리 〈REDS〉에서 당시 보건대 학생회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학생처장을 뵈러 갔습니다. 제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학생처장은 저보고 나가라고 합니다. 그 이유인 즉슨, 보건대 학생은 본인에게 어떤 명령이나 어떤 지도를 받을 권리가 없다. 그래서 나가라고 합니다.

학생들은 심각한 불신과 불안 속에서 적어도 학생들이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남기기 위해 항의 서한을 접수하려 했습니다. 이 항의 서한을 받지도 않으려고 버티는 학생처장 이하 처장단이 보건대 학생들에게 “너희 학교는 폐교 됐다”, “2년제와 4년제가 어떻게 같냐” 하는 등의 막말을 퍼붓는 속에서 비키라는 처장들과 비킬 수 없다는 학생들의 대치 상태가 16시간 가량 지속했던 것입니다.

이후 거짓으로 가득한 소위 ‘감금 일지’가 웹 상에 공표되고 엄청나게 신속한 출교 조치가 취해진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더욱 불행한 것은 이런 사태가 2006년 이래 오늘날까지 각기 다른 양태로 변주되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중앙대 등 정치 탄압으로서의 징계 사례

중앙대는 두산 그룹이 인수한 후 구조조정 방안으로 내홍을 겪었습니다. 이 때 가장 반발했던 것은 인문학 관련 학과들이었습니다. 애초에 경영대생으로 정원의 절반을 채우겠다던 중앙대 당국의 계획은 학생과 교수들의 반발로 인해 수정됐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불행하게도 3명의 학생들이 퇴학과 무기정학을 당했습니다. 정확히 이건희 시위와 출교 사태의 변주였습니다. 이 학생들은 우리와 똑같이, 1심에서 승소했지만 징계 양정을 약간만 낮춘 징계(무기정학과 유기정학 12~18개월)를 다시 받았습니다.

2006년에도 비슷한 사례가 많았습니다. 동덕여대와 한신대 학생들은 등록금 인상 반대 투쟁 와중에 무기정학 징계를 당했습니다. 한국외대의 한 학생은 노조를 탄압하는 학교 당국에 항의하다가 무기정학 징계를 당했습니다.

학교 당국의 잘못된 정책에 항의했다는 이유로 징계를 하는 것은 대학 당국의 흔한 수법이었던 것입니다. 학생들의 항의 방식이 과격했건 그렇지 않았건 징계권은 사용됐습니다. 한국외대 학생이 징계를 받은 이유는 단지 유인물을 배포해 학교 당국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것이었습니다.

항의 방식이 다소 거칠었다고 해도 이해할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각 대학 당국은 문제 상황이발생했을 때, 성실한 대화와 민주적 방식(정책에 대한 토론과 민주적 투표 등)으로 해결하려 하기 보다는 대화에 불성실하게 일관하면서 학생들에게 직접 영향을 미칠 정책을 일방적으로 결정하곤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들이 택할 수 있는 수단은 많지 않습니다. 결국 점거 등의 수단을 사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서울대 법인화 문제

최근에 서울대 학생들이 서울대 본관을 점거하고 있습니다. 정확히 같은 패턴을 보여 줍니다. 정부 여당이 서울대 법인화 법을 작년 말 국회에서 날치기 통과할 때부터 이런 투쟁은 예고돼 있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높아가는 등록금에 대한 엄청난 불만 속에서 등록금 폭등을 부추길 수 있는 국립대 법인화 방안은 서울대 학생들이 잘 지적하고 있듯 ‘국립대 기업화’ 방안입니다.

학생들은 온갖 대화 요청에 만나 주지도 않는 학교 당국을 대하면서 좌절했을 것이고, 돌파구를 여는 마지막 카드로 본관 점거를 택했습니다.

서울대 최갑수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어제 그렇게 학생들이 모인 것은 정말 민주주의의 절차를 정확하게 밟은 거예요. 그거에 비해서 본부는 절차적 정당성을 완전히 상실한 거죠. 아니 국회에서 날치기 처리됐는데, 총장이 유감 표명 한 번이라도 했으면 우리가 이렇게 못 싸우죠. 현재 서울대법인화 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그러지만 우리는 통과했다고 하지 않아요. 날치기 처리됐다고 하지. 이건 서울대의 정체성을 바꾸는 거예요. 이건 구성원들의 의견을 반드시 물어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절차적 정당성이 없다고 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본부는 지금 비민주적이에요. 지금 이것은 민주와 반민주의 싸움이예요.[3]

이런 상황에서 점거를 택한 학생들이 ‘반지성적’이라고 누구도 단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2011년 고려대 등록금 인상 문제

고려대에서도 2004년 이후 올해 처음으로 학생들이 본관을 점거하고 농성을 했습니다. 1월부터 학생들은 성실하게 등록금 심의위원회에 참가했으나 그 자리에서 학생들은 예결산에 대한 꼼꼼한 검토를 전혀 할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총장님이 등록금 결정해야지 학생들이 한다는 건 공산주의” 따위의 발언을 들어야 했습니다. 그 결과로 학생회 최고의결기구인 학생 총회에서 압도 다수 학생들이 거점 농성을 지지하고 의결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고려대 당국은 이런 점거마저 2006년 4월 5일에 있었던 우리들의 시위와 같은 취급합니다. 손해배상 소송 1심 당시 고려대 당국이 제출한 참고 서면에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현재 원고들 중 한 명인 원고 김지윤은 등록금 문제로 고려대학교의 본관을 점거하고 있습니다. … 위 본관 점거의 행위가 비록 이 사건과 관련은 없지만, 학생들이 학교당국과 의견의 마찰이 있고 자신들이 원하는 목적이 달성되지 아니하는 경우 점거 농성 등 물리적 수단을 이용해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세 및 행동을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사건 사안에서 문제되고 있는 교수들에 대한 감금 행위와 성격상 별반 다르지 아니하다고 판단됩니다.

즉, 고려대 당국이 문제 삼는 것은 사실 2006년 4월 5일 당시 ‘감금’ 사건이 아닙니다. 학교 당국의 정책 결정에 반대해 민주적이고 합법적인 경로로 의사를 반영하려던 학생들이 의사 결정에 조금도 참여할 수 없게 됐을 때, 어쩔 수 없이 내몰려 마지막으로 택하게 되는 행동 그 자체만을 문제 삼는 것입니다.

판결의 부당함

이런 정황에 비추어 볼 때 손해 배상 소송 1심의 판결은 여러 모로 불합리하게 여겨집니다.

판결의 핵심 취지는 고려대 당국의 ‘과도한’ 징계가 고의성이 없었으며, 법률 전문가가 아닌 이상 실수할 수 있는데 ‘과도한’ 징계는 실수였다는 것입니다.

징계의 발단이 된 사건에 이르기까지 학교 당국의 책임

앞서 다룬 바와 같이 학교 당국이 학생들 의사를 고의적·악의적으로 무시한 채 어떤 의사 반영 통로도 열어 두지 않는 것은 다양한 사건에서 반복됐습니다. 출교의 발단이 된 사건은 이러한 사건들의 변주에 불과했습니다. 따라서 징계의 발단이 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된 경위마저도 이미 학교 당국의 ‘고의성’이 내포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출교의 고의성

특히 2006년 4월의 징계는 어떤 의미에서도 ‘비전문가의 실수’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첫째, 출교 당한 7명의 학생들은 정확히 2004년부터 학교 당국의 다양한 정책에 앞장서서 항의해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4월 5일 당일에 한 역할만으로 판단을 했다면 그 7명이 출교당할 이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이는 2006년 4월 5일 시위에는 단순 참가했을 뿐이며 2006년 2월 8~10일 입학처 점거에는 아주 잠깐 방문하기만 했던 강영만이 출교 당한 것으로 입증이 되고도 남습니다.

둘째, 출교 징계와 유기정학 1월 사이의 간극이 너무나 큽니다. 이 둘 사이의 간극을 단지 반성 여부로만 판단했다고 하는 것은 이미 출교 1심 판결에서 거부당한 바 있습니다. 유기정학 1월 처분을 받은 5명과 견책 1주일을 받은 7명이 모두 자신들은 상벌위원회 자리에서 반성한 바 없다는 점을 재판부에 자필 문건으로 제출했기 때문입니다. 징계 대상자 19명 중 출교 7명을 표적 징계했다고 보는 것이 오히려 설득력있습니다.

셋째, 징계 양정이 학교 당국의 호명 순서와 일치합니다. 질서정연하게 맨 앞에 들어간 7명은 견책, 중간에 들어간 5명은 유기정학 1월, 마지막에 들어간 7명은 출교를 받았습니다. 반성 여부가 학교 당국의 호명 순서와 정확히 일치하는 것을 누가 자연스럽다고 여길 수 있겠습니까? 사전에 징계가 거의 결정돼 있었다고 볼 수 있는 강력한 정황증거입니다.

퇴학의 고의성

퇴학 역시 실수로 볼 수 없는 명백한 증거가 있습니다. 아래는 고려대 당국이 제출한 퇴학 결정 당시 상벌위원회 속기록을 일부 인용한 것입니다.

간호대 학과장: 출교한다고 해도 파장이 적지 않을 것이고 출교를 안한다고 하면 출교하는 것보다 파장이 조금 더 커질 것입니다. 이래도 문제가 되고 저래도 문제가 (됩니다.)

사실 이전의 출교결정하신 분들이 곤란해질 수 있다.

조형학부 부학장: 전국적으로 선례가 되는 케이스. 600여일을 투쟁하면서 자기들이 받은 정신적, 재정적인 고통에 대한 손해배상이라든지 또는 전에 흔히 있어왔던 학생처 점거, 총장실 점거 이런 일들이 눈에 보이듯이 예상. … 앞으로 올 일들을 생각하면 혼란이 야기될 것 같고 …

학생처장: 출교재심처분에 대한 법적 검토를 부탁. 결론적으로 1안 퇴학처분이 선택되면 학생들은 다시 소송을 제기할 것이고 학생 신분을 잃게 됩니다. 물리적인 항의를 재시도할 우려. 2안 무기정학을 선택할 경우에는 비위정도에 상응한 징계처분으로써 여타 학생들이 유기정학을 받은 점에서 그보다 비위정도가 무거운 학생들에 대한 무기정학 처분은 징계양정의 합리성이 확보될 것으로 생각은 된다. 3안 유기정학을 선택할 경우에는 벌써 유기정학 받은 학생들이 있으니까 걔들에 비해서 650일 2년 동안 고생했다면 학생들의 반발이 너무 심해질 것이다.

상벌위원회 속기록 일부를 인용한 것이지만, 전체 내용에서 당일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우리 출교생들의 자기 변호를 성실하게 다룬 내용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당시 상벌위원회가 가장 밀도있게 고민한 부분은 선례, 투쟁의 재발, 손해배상 소송, 앞선 결정자들의 위신에 대한 걱정입니다. 이를 어떻게 실수로만 볼 수 있을 것이며, 악의적 징계가 아니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무기정학의 고의성

고려대 당국은 교육적 견지에서 학생들이 학업을 이을 수 있도록 무기정학 재징계 처분을 하지 않고, 과거를 소급해 징계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러나 출교와 퇴학의 악의성에 비추어 본다면 ‘교육적’이라는 말이 얼마나 궁색한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출교 무효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진 지 고작 2주일 남짓 만에 고려대 당국은 퇴학 징계를 내린 데 반해, 무기정학 처분은 12개월 만에 나왔습니다. 이미 끝난 일을 1년이 지난 후에 갑자기 물고 늘어지는 것이 고의가 아니라면 무엇일까요? 졸업생까지 생긴 마당에 징계를 하는 것이 무리라는 것은 조금만 주의를 기울인다면 충분히 알 수 있는 일이었는데 말입니다.

아울러 무기정학 징계를 내릴 때까지도 고려대 당국은 출교 당했던 우리들이 주장했던 4월 5일 당일의 사실관계에 대해 전혀 재논의를 하지 않았습니다. 법원에서도 사실인지 확인할 수 없다고 판결한 ‘감금 일지’를 무기정학 징계 당시에도 모두 다 사실로 전제하고 논의했습니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다면 법원이 ‘감금 일지’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을 알 수 있는 상황이었고, 출교당했던 우리들 역시 ‘감금 일지’가 조작됐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에 기반해 무기정학 재징계를 한 것은 어느 모로 보나 고의적입니다.

징계권의 목적에 대한 가치 혼란

한가지 더 안타까운 사실은 징계가 그 본래 목적과 달리 정치 탄압의 수단으로 사용될 때 더욱 신속하고 강력하다는 것입니다. 현재 사회적 물의를 빚고 있는 고려대 의대생들의 동료 학생 특수 성추행 사건을 고려대 당국은 너그럽게 다루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지켜 보노라면 징계권이라는 것의 본래 목적이 무엇인가 하는 가치 혼란마저 오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입니다.

결론

‘불순한’ 학생들이 있고, 자율적 판단 능력이 없는 다수의 학생들이 있어 ‘불순한’ 학생들이 나머지 학생들을 조종하는 것이 오늘날 대학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러 가지 갈등의 원인일까요? 그렇게 본다면 이 갈등을 영원히 해결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학생들이 금전적, 정신적 피해를 입는 것이 명확한 정책을 학교 당국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학생들은 그 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어떠한 절차적 수단도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 바로 오늘날 대학 내에서 점거 등의 투쟁 상황이 발생하는 핵심적 원인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학생들은 오직 저항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2006년 4월 5일 출교의 발단이 됐던 시위와 오늘날 서울대, 한신대, 인하대 등에서 반복되고 있는 투쟁이 공유하고 있는 근본 원인입니다.

성영신 전 학생처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운동권 학생의 가장 큰 특성이 뭐냐면, 자기 의견을 접을 줄 몰라요. 그런 걸 우리가 한국말로 떼쓴다고 하죠. 떼를 써요. 떼쓰는 건 미성숙한 사람의 표본이다. 언제 떼 써요 여러분. 철 들기 전에 떼썼죠? 엄마 슈퍼 따라가서 사탕 안 사준다고 뒤집어져서 나뒹굴어서 발버둥치면서 사탕 사 줘 사탕 사 줘 하던 게 떼잖아요. 자기 요구를 들어 달라 안 들어 주면, 그러면 드러눕는 거 아니에요. 기물 파괴, 통신망 훼손, 점거, 교수 감금 이게 다 떼쓰는 걸로밖에 안 보이고 떼쓰는 건 미성숙하기 때문에 난 성숙한 학생만이 고대에 다닐 자격이 있다고 보는 거다. 미성숙한 사람은 미성숙한 대학으로 가라. 그게 출교의 의의다”[4]

“저 친구들은 뭔가 달성하려는 목적이 없어요. 그건 내가 알고 있어. 고려대에서 저 친구들 코드를 읽고 있는 사람이 몇 없는데 나는 읽고 있다고. 인제 파악했어 내가. 그 친구들은 목적이 없어요. 주장하는 피켓에 있는 내용은 다 수단에 불과해.

그러니까 왜 살아야 하는데 걔들이?

[감독 : 그러니까 그런 식의 목적이 있지 않느냐 이런.]

그러니까 자기네가 왜 살아야 하냐고. 죽어야 될 때가 되면 죽어야지. 왜 살아야 되는데. 누굴 위해서. 누굴 위해서 살아야 되나?”[5]

사태의 원인을 밝히려는 노력은 없이, 자신의 잘못된 정책에 걸림돌이 되는 학생들을 마녀사냥하고 징계로만 대처하려 했던 것이 바로 오늘날 한국 사회 대학의 자화상이었습니다.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은 대학 당국

올해 등록금 인상 문제로 인한 본관 점거를 문제 삼으면서 2006년 4월 5일의 시위와 별반 다르지 않은 행위라고 한 데서 알 수 있듯이 고려대 당국은 과거에서 배운 바도 없고, 본질적으로 변한 것도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전 출교생들은 학생들이 조금이나마 자신들의 금전적, 정신적 피해를 줄이고 좀더 민주적으로 그 의사를 정책에 반영할 수 있도록 하는 통로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모든 민주적 절차가 무시당했을 때 마지막으로 택할 수밖에 없는 저항권을 마음 놓고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조금이라도 도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앞서 투쟁한 자의 의무이며 도리입니다.

대학 당국들이 여전히 학생들의 저항권 행사를 탄압하는 수단으로 징계권을 남용할 수 있는 현실에서 대학의 책임자가 단 한 번이라도 징계라는 수단보다는 대화를 통한 민주적 의사 결정이라는 수단을 고려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본 소송의 의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1] 선호빈 감독, 〈REDS〉, 2011, 1:06:10~44 부분

[2] 김규항, http://www.gyuhang.net/644

[3] 〈게릴라 관악〉, 2011. 6. 3.

[4] 선호빈 감독, 〈REDS〉, 1:09:05~31 부분

[5] 선호빈 감독, 〈REDS〉, 1:06:10~44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