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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주의 - 매력은 주지만 대안은 못 주는

모든 위대한 대중 운동에서, 특히 그 운동의 초기 국면에서 두드러진 특징은 대중의 놀라운 자발성이다. 이는 2008년 한국의 촛불 시위, 이집트 민주화 투쟁, 최근의 스페인 청년들의 투쟁 등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런 대중의 자발성은 그들에게 혁명적 잠재력이 있음을 입증해 주는 지표이기 때문에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마땅히 이를 고무하고 찬양한다. 마르크스는 사회주의를 노동자 계급의 자기해방 과정으로 여겼고, 로자 룩셈부르크도 사회주의는 누군가 대중에게 하사하는 선물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즉 노동자 계급은 자신의 힘으로 해방될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한다.

그런데 대중의 자발성을 찬양하는 것이 정당이나 정치단체 들의 개입과 ‘지도’를 거부하는 모종의 자생주의로 나아가기도 한다. 이런 정치 경향을 대변하는 게 자율주의다. 자율주의의 실체를 한마디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반자본주의 사상으로서의 자율주의는 서로 연관된 두 가지 특징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먼저, 앞서 말했듯이 일체의 정당이나 정치 조직의 개입을 거부하는 반(反)정당-반(反)정치주의다. 이런 반정당주의는 그들의 반자본주의 전략(사실은 무전략의 전략)과 연관돼 있는데, 자율주의 조직들은 대개 국가권력을 무시하거나 우회하는 전략을 선호한다.

마르크스주의와 자율주의는 적어도 대중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믿고 고무한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자율주의의 정치는 대중의 잠재력을 극대화하는 데서 커다란 약점이 있다.

대규모 대중항쟁에 참가한 일부 사람들 사이에서 정당 거부 정서가 나타나는 것은 어느 정도는 당연하다. 왜냐하면, 대규모 대중항쟁은 그동안 억눌려 있던, 조직돼 있지 않은 광범한 부문을 투쟁으로 끌어들인다. 이들은 기존 조직을 통해 투쟁에 참가한 것이 아니라 조직과 무관하게 투쟁에 참가한다.

자율주의자들은 대중의 자발성과 지도를 기계적으로 대립시킴으로써 자생성을 옹호하려 한다. 정치 조직의 개입은 필연적으로 운동의 자발성을 질식시킬 것이라는 것이다. 이런 주장에는 어느 정도 합리적 핵심이 있다. 사회민주주의 정당이나 스탈린주의 정당은 운동에 개입해 운동을 체제 내에 묶어두거나, 자신들만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운동을 이용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발성과 지도를 기계적으로 대립시켜 정치 조직의 개입을 일방적으로 거부하는 태도는 커다란 문제가 있다. 자율주의 정치는 대중 운동에 참가한 사람들의 의식이 불균등하고 다양하다는 사실 자체를 있는 그대로 놔두라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운동에 사활적으로 필요한 전략, 전술 논쟁을 회피하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운동의 발전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 이런 태도는 심지어 투쟁 건설을 회피하는 기회주의를 합리화해 주기도 한다.

전략과 조직

자율주의를 받아들인 어느 대학 학생회 활동가는 등록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학생의 의견도 투쟁하자는 학생의 의견과 동등한 가치가 있고, 이 둘은 자연스럽게 수렴돼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운동 안에는 운동을 확대시킬 전략과 쇠퇴시킬 주장이 서로 뒤엉켜 경쟁한다. 이때 운동을 확대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조직돼 있지 않고, 그들이 단호하게 주장하지 않고도, 즉 지도하지 않는데도 운동이 자연스럽게 확대 발전할 것이라고 믿는 것은 몽상이다.

자율주의적 반정치의 정치는 대단히 급진적으로 보이지만 종종 역설적으로 가장 온건한 개혁주의 정당을 강화해 주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2008년 촛불 시위 때 모인 사람들의 상당수가 지금은 ‘미워도 다시 한 번’ 민주당과 그 아류들에게 투표하는 것으로 이명박을 심판하고자 한다. 이런 점은 자생성을 찬양하는 것을 넘어서 정치적 대안이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 준다.

근본적으로 자율주의는 국가 권력에 대해 잘못된 전략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결정적 약점이 있다. 자율주의라기보다는 자유주의자인 진중권은 반값 등록금을 요구하는 시위를 그저 쿨한 “축제”라고 여기는 듯하지만, 운동 그 자체가 운동의 목적이 돼서는 안 된다.

더 나아가 반자본주의 운동처럼 거대한 사회 개혁이나 근본적 사회 변혁을 추구하는 운동은 궁극적으로 자신의 목적을 관철시킬 권력을 창출해야 하고 이는 체제 유지를 그 목적으로 하는 자본주의 국가와 양립할 수 없다.

운동이 체제를 뒤흔들 정도로 강력해지면 국가 권력의 문제는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이런 국면에서 자율주의처럼 국가 권력으로부터 탈주하거나, 무시하고 다중의 자율적 공동체를 만들면 된다는 식의 전략은 무기력할 수밖에 없다. 자율주의 이론가인 네그리는 이집트의 민주화 투쟁을 ‘다중의 반란’이라며 칭송하지만, 정작 이집트 항쟁의 교훈 중 하나는 국가 권력은 무시하는 것을 통해 고사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집트 국가의 가공할 폭력은 타흐리르 광장을 무시하지 않았다.

일찍이 이 점을 가장 잘 이해한 사람은 레닌이다. 소비에트라는 대중의 자치권력과 러시아 국가는 양립할 수 없었다. 이 점에서 당시 레닌과 볼셰비키만이 대중의 혁명적 잠재력을 최대치로 이끌 전략을 가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대중 투쟁의 물결이 고양되고 있다. 중동 민중의 민주화 투쟁, 긴축에 맞서 투쟁하는 유럽의 노동자와 학생들의 투쟁은 분노와 활력으로 충만하다. 부족한 것은 이들의 잠재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전략과 조직이다. 이것을 채우는 것이 지금 사회주의자들의 과제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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