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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 파업 일기 (6월 19일):
연대의 정과 동지애로 훈훈한 농성장

이 글은 유성기업 아산 공장 생산1과 조합원이 쓴 파업 일기다. 〈레프트21〉이 이 동지의 일기를 연재한다.

평화로운 주일의 아침을 맞았다.

비록 비닐하우스에서의 휴일이지만, 특별한 일정이 없어 모처럼 만에 긴장감조차 잊은 채 평안한 시간을 보냈다.

여전히 푹푹 찌는 날씨에 비닐하우스 안은 한증막이 따로 없다. 땀으로 옷을 적셔도 그동안의 피로에 코를 고는 조합원, 윷놀이 게임에 그동안의 긴장을 풀고 웃고 즐기는 조합원, 빨래와 개인 물품을 정리하며 그동안 못 했던 정비를 하는 조합원….

식당은 어제 집회에서 모금된 돈으로 수육을 하느라 부산하고, 가대위 텐트 앞은 부침을 부치는 가대위의 정성으로 부산하다.

모처럼 만에 아내와 아들들의 손을 잡고 하우스 뒤편 밭길을 걸었다. 어느새 무지 커버린 듯한 아이들의 뛰는 보습을 보며 기쁨은 잠시였고, 마음은 걱정으로 어두울 수밖에 없었다. 애써 밝은 웃음을 짓고 집안일은 걱정 말라는 아내의 말에 손만 꽉 잡았다. 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다시 하우스로 돌아왔다. 하우스 앞마당에선 옹기종기 모여 앉은 사람들이 조촐한 잔치를 벌였다. 가대위의 부침과 수육은 좋은 술안주가 됐고,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웃음 소리에 하우스의 저녁은 정말 흥겨웠다. 모든 것이 불편할 수밖에 없는 하우스 생활이지만, 갈수록 깊어 가는 정이 그 불편함조차 느끼지 못하게 한다.

어느새 한 무리씩 하우스 안으로 들어가고, 떠들썩했던 마당은 고요하게 밤이 깊어간다.

여기서, 잠깐! 하우스 안의 풍경을 소개하겠다.

하우스는 총 4개 동이다. 모내기가 지나, 다행히 크기나 공장과의 거리를 따져도 우리가 쉴 공간으론 손색이 없다.

우리에게 하우스를 빌려준 분은 쌍용차지부 투쟁 당시 부인들이 가족대책위를 꾸려 삼보일배를 하는 모습을 TV에서 접하고 가슴에 담아 두었다고 한다. 유성기업 투쟁이 터지자, 그때 기억으로 우리에게 장소를 제공해 주었다고 한다.

하우스 바닥에 파레트를 깔고 그 위에 스티로폼이나 단열제를 깔고 나니 눕기에는 그럴 듯하다.

시커먼 만국기?

삼시 세끼는 걱정 없다. ‘손 맛’ 좋은 조합원들이 자청해 주방조를 꾸렸다. 식단은 간단하다. 흰 쌀밥, 김치, 간이 제대로인 국. ‘짬장’님의 국물 맛은 제대로다. 배식할 때는 그야말로 질서정연하다. 수백 명의 장정들이 함께 생활하면서도 다툼 한 번 생기지 않았다.

이른 아침이면 먼저 일어난 조합원들이 어김없이 주변 청소를 한다. 쓰레기를 줍고, 쌓인 빈 페트병을 치운다. 물론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조합원도 있다. 그러나 밉지 않다.

항상 인파가 몰리는 곳은 정해져 있다. 그중 제일 인기 많은 곳은 ‘간이 노조 게시판’이다. 노조 간부가 언론 기사들을 스크랩해서 유성 투쟁 소식들을 복사해 붙여 놓는다. 조합원들은 유심히 쳐다보고, 고개도 끄덕인다.

씻는 게 걱정일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노동자들이야 못 하는 게 없지 않겠나. 천막을 둘러간이 목욕탕을 후다닥 만들었다. 세수는 임시로 만든 하우스 앞 주방 곁에서 하면 된다. 지하수라, 더울 땐 그 물에 잠시 담그면 계곡이 부럽지 않다.

하우스에 별도의 리모델링도 했다. 우리 투쟁을 지지하는 현수막이 군데군데 둘러쳐 있고, 연대 메시지로 만든 만국기가 천막을 가로 질러 널려 있다. 이 만국기는 6월 10일 청계 광장에서 개최된 ‘반값 등록금’ 집회에 우리 조합원들 일부가 참가해 시민들과 학생들한테 받은 메시지들로 만들었다. ‘야자·야노 철폐’, ‘노동자들의 승리는 우리의 승리입니다. 꼭 승리하세요!’라는 발랄한 내용부터 ‘야간노동하는 노동자 입장에서 동지들의 투쟁을 마음 졸이며 지켜보고 있습니다. 투쟁!’ 등 노동자들의 바람까지 멋들어진 내용들이 가득하다.

만국기 밑으로 시커먼 또 하나의 만국기(?)도 널려 있다. 우리 조합원들의 속옷과 작업복 들….

하우스 안은 한낮이면 발을 딛을 수 없을 정도로 덥다. 하우스 안의 열기가 뜨거워질수록 경운기 등 창고 앞에 사람들이 속속 모인다. 그늘과 바람을 제공해 주는 유일한 곳이기 때문이다. 별도의 교육장과 운동장이 없는 터라, 가끔 교육도 이뤄지는 일석이조의 공간이다.

마침 제일 배부른 소리가 들려온다. “식사하세요!” 짬장님의 소리는 언제나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