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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미래의 진보》, 이정무, 민중의소리:
변함없는 유시민과 원칙 없는 이정희

민주노동당 당권파와 이정희 대표가 참여당과 통합을 노골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지금, 이정희 대표와 국민참여당 대표 유시민이 6개월간 만나 대담한 내용을 엮은 책 《미래의 진보》가 나왔다.

이 대표는 그냥 “궁금증” 때문에 이 책을 냈을 뿐이라며 눙치지만 이 책은 누가 봐도 참여당과의 통합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이 대표는 이 책에서 “[두 당 사이에] 야트막한 꽃길을 꾸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갈 수도 있을 것이고, 아예 꽃길을 밖으로 내고 길 폭을 넓혀 함께 걸을 수도 있을 것”이라며 통합을 암시한다. 또, “계급정당의 틀에 갇”혀서는 안 된다며 민주·개혁세력과의 연합을 강조한다.

이 대표와 민주노동당 당권파의 계급연합 전략이 낳은 이 책의 탄생은 유쾌하지 않지만, 이 책은 두 사람의 본심을 들여다 보는 데는 유용하다.

우선, 유시민이 했다는 ‘반성’의 실체를 알 수 있다.

[노무현은] 기왕 할 거라면 내가 집권하고 있을 때 협상을 하는 것이 … 낫[다는] … 사명감”과 ?“도전정신”을 가진 “용감한 분”이라는 게 한미FTA에 대한 그의 이른바 ‘반성’이다. 그러면서 FTA 반대파나 찬성파 모두 “각자 자성이 필요하다”며 물타기한다.

화물연대 파업, 전교조의 네이스 반대 투쟁 등에 대해서도 “각자가 진솔하게 돌아보고 성찰”하자며 책임 소재를 흐려 버린다.

무상의료는 의사와 병원의 반발 때문에 어렵고, 주택 가격 통제는 시장원리를 부정하기 때문에 안 되고, 반값 등록금도 사립대학 학생들에겐 적용하기 힘들다는 게 유시민의 입장이다.

파병에 대해서도 “누구라도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생각”하고, 만약 자신이 대통령이 된다 해도 파병을 할지 말지는 “딱 잘라서 말하기 어렵”다고 가능성을 열어 둔다.

사학법과 국가보안법, 법인세 감세에 대해서 기업주들과 한나라당에 굴복한 것에 대해서도 역시 제대로 된 반성 한 줄 없다. 그저 “여야 관계가 너무 나빠질 것 같아서“, ‘국가 운영하는 입장은 다르다’는 식의 변명 나열하기뿐이다. 하지만 우파의 반발을 이유로 개혁 실패를 정당화한다면 왜 굳이 개혁세력이 집권해야 하는가. 그는 이 문제에 대해 답하지 않는다.

변명 나열하기

‘과거를 묻지 않겠다’며 유시민과 거리를 좁히는 이정희 대표 무원칙한 태도가 반감을 일으키고 있다. ⓒ사진 출처 국민참여당

그런데도 대담을 진행한 〈민중의 소리〉 이정무 편집장은 “유시민은 바뀌는 중인 것 같”다며 칭찬한다. 게다가 이처럼 유시민이 별로 변한 게 없는데도, 이정희 대표와 유시민은 “여러 면에서 … 서로 통했”고 “쉽사리 합의에 도달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결국 유시민이 변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변한 것 아닌가. 이것은 이정희 대표가 과연 진보의 원칙들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 의심케 한다.

실제로 이 대표는 지난 지방선거 야4당 정책연대에 대해서 “민주당과 합의할 수 있는 것들을 주의 깊게 골라”냈다고 말한다. 이렇게 민주당 수준으로 눈높이를 낮추다 보니, 한미FTA 폐기 당론이 갑자기 “독소조항에 대한 전면 검증”으로 후퇴했다. 심지어 이 대표는 이 책에서 “이왕 있는 FTA는 잘 활용하자는 입장”이라고 말한다.

참여정부의 개혁 실패 이유도 “진보진영이 참여와 비판의 방법을 고루 활용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평가한다. 즉, 진보진영이 참여정부에 맞서 정면 투쟁을 벌인 게 문제였다는 유시민의 물타기에 슬쩍 동조하는 것이다.

이정희 대표의 주장에서는 진보의 원칙뿐 아니라 투쟁의 관점도 찾아보기 어렵다. 이정무 씨의 평가처럼 이정희 대표는 “아주 온건”하다. 가령, 이 대표의 노사 관계 해법은 “노사 간의 대화 주선”이다. 현대 재벌에 맞서는 “유일한 방법”도 “정몽준도 한 표, 노동자도 한 표”라며, 아래로부터 투쟁을 강조하진 않는다. 그는 한나라당에 대해서도 “싸우고 싶지 않”고, “설득할 수 있다고 믿”는다. 국회에서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몇 번이나 질질 끌려나온 경험이 있으면서도 말이다.

사실 이 대표와 민주노동당 당권파에게는 유시민의 반성과 변화 여부가 중요치 않아 보인다. “과거에 대해 반성을 요구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보지 않”기 때문이다. 이정무 씨 역시 “‘구동존이’는 상대가 ‘당장 변화하기’를 요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처럼 집권이라는 목표 아래 통합 상대의 과거도, 계급도, 사상도 묻지 않겠다는 ‘실용주의’가 민주노동당 당권파의 생각을 지배하고 있다.

이들이 이런 ‘묻지마 통합’을 합리화하는 명분은 딱 하나다. “극악한 보수세력에게 지는 것보다 백배는 낫”고, “선거의 승리로 얻어지는 권력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명박은 패배해야 하고, 한나라당의 재집권은 막아야 한다. 이를 위해 진보세력이 진보대통합을 이루고 진보 개혁을 염원하는 대중의 지지를 결집시킬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진보의 원칙과 가치를 훼손하는 계급연합으로는 이명박 정부에 맞선 제대로 된 대안을 창출할 수 없다. 진보가 노무현의 실패를 반복하려고 집권하려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미래의 진보》는 계급연합이 어떻게 진보정당의 역사와 가치와 정체성을 갉아먹고, 진보적 노동자당과 자유주의적 친자본가당의 차이를 흐리는지 보여 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