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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와 주류 정치

한국여성단체연합(이하 여성연합)의 상임대표였던 이오경숙 씨의 열린우리당 입당으로 여성연합 안팎에서 논란이 일었다.

‘정치적 중립성’을 표방해 온 주요 시민단체의 대표가 자신이 몸담은 단체의 내부 규약까지 어기며 기성 정치권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여성연합은 현직 대표가 정치권에 진출할 경우 3개월 전에 사퇴하게 돼 있지만, 이오경숙 씨는 열린우리당에 들어간 뒤 사표를 썼다.

그러나 절차가 문제의 핵심은 아니다. 여성연합 사무총장 남윤인순 씨가 말했듯이, 이오경숙 씨의 결정은 “여성연합에서 이미 진행했던 여성 정치세력화의 맥락에서”(사이버여성주의 언론 〈일다〉) 나온 것이다.

여성 운동가들의 부르주아 정치권 진출은 지난 10년 넘게 여성연합이 추구해 온 전략이었다. 여성부 장관 지은희, 환경부 장관 한명숙,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이미경이 모두 여성연합 대표 출신이다. 이 밖에도 1980년대 여성 운동가들이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대거 국가 관료로 변신했다.

여성연합 소속 단체인 한국여성민우회 공동대표 윤정숙 씨는 이러한 변화를 이렇게 묘사했다. “80년대는 여성 운동이 사회 민주화 운동과 함께 거리 투쟁을 함께 했다면, 2000년대 여성 운동은 정부와 함께 정책 대안을 생산하는 파트너로서 그 역할이 변화”했다(〈시민의 신문〉).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성연합을 비롯한 많은 여성단체 활동가들이 기성 정당의 공천을 받아 정치권에 들어가려 하고 있다. 여성 운동 내에서 이오경숙 씨의 열린우리당 입당에 대한 비판이 많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여성 운동가들이 부패하고 비민주적이며 반노동자적인 기성 정당에 들어가는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페미니스트들은 대개 한나라당보다 열린우리당(전에는 민주당)을 선호하지만, 그 당들은 오십보백보다. 열린우리당은 부패, 파병 지지, 파업 비난, 시장 개혁 지지 등 조금도 진보적이지 않다. 그 당의 형편없는 지지도(11퍼센트)는 이 때문이다.

부르주아 정당에 여성들이 참여한다고 해서 부르주아 정당의 성격이 바뀌는 게 아니다. 여성연합 대표였던 열린우리당 의원 이미경은 기성 정치를 변화시키기는커녕 오히려 그 자신이 기성 정치의 일부가 됐다. 그는 한때 우익 정당 한나라당의 국회의원이었고,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시장 개혁을 지지해 왔다. 또 동티모르 파병에 찬성했다.

엘리트

노무현 정부 들어 여성 장관이 넷으로 늘어났지만 대다수 여성들의 삶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노무현이 대를 이어 하고 있는 시장 개혁으로 노동계급 여성들은 해고, 비정규직 증가, 임금 삭감, 생활수준 저하 등을 겪고 있다.

더 많은 여성들이 자본주의 국가와 정당에 참여하면 기성 법과 제도는 좀더 평등하게 바뀔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성 법과 제도 내에서의 평등이 곧 여성 해방은 아니다. 여성을 먼저 해고하지 않고 남성을 먼저 해고하는 게 여성 해방일 수는 없다. 전반적인 실질 임금 수준이 하락한다면 임금 격차 해소도 의미가 없다. 여성들도 남성들과 똑같이 가혹한 조건에서 일하게 되는 것은 해방이 아니다.

주류 정치권에 여성의 진출을 목표로 삼는 전략은 기본적으로 엘리트주의적이다. 여성의 고위직 진출에 힘을 얻는 사람들은 주로 사회 상층으로 이동할 기회가 열려 있는 중간계급 여성들이다. 심각한 여성 차별 속에서 ‘실력’으로 자수성가한 ‘뛰어난’ 여성에 대한 찬양(강금실, 추미애 등)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힘이 되기는커녕 더 큰 소외감을 안겨 줄 뿐이다.

엘리트주의 전략은 종종 평범한 사람들의 반대편에 서게 한다. 법무부 장관 강금실이 파업을 탄압하고 이주 노동자를 추방하고 있는데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그를 계속 지지할 것인가? 의료비를 인상하고 부자 병원을 세우려는 보건복지부 장관 김화중을 여성들은 감싸야 하는가?

지금 자본주의는 위기에 빠져 노동자들의 삶을 공격하고 있다. 실질임금과 복지를 삭감해 가난과 절망을 양산하는 자본주의를 지지하면서 여성 해방을 이룰 수는 없다. 진정한 여성 해방은 자본주의 체제에 맞서 거리와 작업장에서 노동계급과 차별받는 사람들이 단결해 싸울 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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