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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소련은 과연 사회주의였는가?》:
소련은 사회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였다

이 책은 1993년에 책갈피 출판사가 《소련 국가자본주의》라는 제목으로 출간한 후 절판된 것을 오역들을 바로잡고 참고할 만한 논문들을 추가해서 다시 출판한 것이다.

이 책이 한국에서 처음 출판된 1993년 당시는, 구소련과 동유럽이 몰락하면서 그런 사회가 사회주의적 대안이라고 믿었던 한국의 좌파들에게 큰 혼동과 사기저하가 찾아온 시기였다. 전 세계적으로도 이른바 ‘사회주의’ 국가가 몰락하고 자유민주주의가 승리를 거둔 것처럼 보였던 시기였다.

그래서 많은 좌파들이 혁명적 전망을 포기하고 서구에서는 이미 한물간 사조들(포스트마르크스주의, 포스트모더니즘 등)이나 기웃거리고 있었다. 따라서 옛 소련과 동유럽은 사회주의가 아니라 서방 자본주의와 본질상 다를 바 없는 국가자본주의 체제라는 내용을 담고 있는 이 책이 1990년대 초반에 한국에서 출판된 것은 사회주의 전망을 다시 세울 기회를 제공한 셈이었다.

《소련은 과연 사회주의였는가?》 토니 클리프 지음, 책갈피, 496쪽, 2만 2천 원

사실 이 책의 핵심 내용을 담은 저술이 처음 등장한 때가 1948년이었는데, 이때도 전 세계 혁명적 좌파는 혼란과 방향감각의 상실에 부딪혀 있었다.

그 당시에 소련 사회를 사회주의로 볼 것인지, 사회주의가 아니라면 어떤 사회로 규정할 것인지 그리고 스탈린주의 체제의 구실은 무엇인지에 대한 혼란이 전 세계 좌파를 지배하고 있었다.

동유럽의 여러 국가들이 스탈린의 탱크에 의해 소련과 같은 사회로 변모하면서 이런 혼란은 극에 다다랐다.

그 당시 정설 트로츠키주의자들은 스탈린주의를 반혁명적 세력으로 봤지만 그럼에도 러시아는 사회주의라고 여겼다. 그런데 제2차세계대전 직후 동유럽 국가들이 노동자 혁명이 아닌 반혁명 세력에 의해 ‘사회주의’가 되는 황당한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동유럽 국가들을 사회주의라고 규정하면 사회주의가 노동계급의 자주적 행동 없이도 가능하다고 보게 되는 모순이 생겨났다. 이때 토니 클리프는 소련이 사회주의가 아닌 국가자본주의라고 주장하면서 혁명적 정신을 유지한 채 이런 모순을 피해갈 수 있었다.

자기 해방

토니 클리프는 소련 사회가, 생산수단을 실질적으로 소유·통제하는 관료 지배계급이 서방과의 군사적·경제적 경쟁 압력 속에서 노동자들을 억압·착취하는 자본주의의 한 형태라고 분석했다.

‘혁명적 이론이 없으면 혁명적 실천도 없다’는 레닌의 경구를 되새겨 볼 때, 소련이 국가자본주의라는 이론은 혁명적 좌파에게 중요한 실천적 지침을 제공해 줬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옛 소련과 동유럽이 몰락한 지 20년이 지났고, 중국은 이미 시장으로 향하는 길을 너무 많이 걸어온 이때 왜 옛 소련에 천착해야 할까? 올해가 옛 소련이 붕괴한 지 20주년이 되는 해라서?

2008년부터 시작된 세계 자본주의 위기 때문에 주류 언론과 자본주의 옹호자들은 20년 전 옛 소련이 붕괴한 사건을 축하할 여유가 없었다. 옛 소련의 붕괴로 자유시장경제가 승리했고 ‘역사의 종말’이 왔다고 외치던 사람들은 신용을 잃었다.

이 상황에서 이 책의 옮긴이인 정성진 교수는 후기에서 “이제 소련 붕괴 20주년을 맞아 다시 출간하는 클리프의 이 책이 오늘날 세계 대공황 국면에서 분출하고 있는 반자본주의 대중투쟁과 결합해 야만적이고 자기파괴적인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서는 진정한 마르크스적 의미의 사회주의 대안을 모색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적고 있다.

사실 신자유주의가 아닌 대안에 대한 논의들은 다양하지만, 그중에서도 변혁적 입장을 견지하는 사람들에게 꼭 거쳐야 할 쟁점이 있다면 그중 하나가 바로 옛 소련의 성격에 관한 문제다. 왜냐하면 한국(또는 세계 그 어느 나라든) 사회의 변혁을 주장할 때 어떤 사회를 지향하는가 하는 문제가 뒤따르기 때문이다.

사회주의적 대안을 주장하는 과정에서 불거지는 핵심 반론이 바로 ‘옛 소련에서 사회주의 실험은 이미 실패했다’는 주장이다. 결국 신자유주의든 아니면 자본주의 체제든 간에 이런 사회에 대한 대안사회를 논의할 때 옛 소련을 사회주의라고 볼 것인가 하는 문제가 이론적으로뿐 아니라 실천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것이다.

이 책에 부록으로 실린 알렉스 캘리니코스와 데렉 하울의 논문은 토니 클리프가 주장한 국가자본주의론의 핵심 내용을 계승하면서도 그가 보인 약점을 보완하고 있다. 토니 클리프가 강조한 국제적 차원의 경쟁 압력뿐 아니라 소련 내부의 임금 노동 관계를 통해서도 가치법칙이 작동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옮긴이인 정성진 교수가 쓴 《마르크스와 트로츠키》(한울)의 제5장 ‘소련 사회의 성격: 마르크스주의적 설명’과 제13장 ‘국제사회주의의 정치경제학: 토니 클리프를 중심으로’를 함께 읽어 볼 것을 권한다. 정성진 교수는 한국에서 국가자본주의론을 선구적으로 소개했는데, 이 논문들은 그 연구 성과가 집약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마르크스는 사회주의가 노동자 계급의 자기해방이라고 주장했는데, 평생을 혁명가로 살아온 토니 클리프의 이 책은 바로 그 정신이 녹아들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