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무사와 양승태 문건이 보여 주는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의 실체
〈노동자 연대〉 구독
전 대법원장 양승태 체제 아래서 상고법원 신설을 위한 재판 거래가 있었음을 증명하는 문건들이 공개된 지 두 달이 지났다. 누구나 공개된 해당 문건들을 볼 수 있지만 정작 해결된 건 거의 없다.
문건들을 보면, 양승태 하의 사법부가 상고법원을 신설하려 한 이유는 현행 정치 구조 속에서 법원의 위상, 즉 지배계급 내 대법원 판사들의 위상을 높이려는 시도였던 듯하다. 상고법원은 대법원의 기능을 쪼개어 신설하는 것이므로, 대법관의 위상을 가진 고위 판사 수가 늘어나고 기존 대법원이 판례를 남길 재판에 집중하게 돼, 헌법재판소와의 위상 경쟁에서 유리하다고 본 듯하다.
그래서 재판의 결과와 시점 등을 상고법원 판사 임명권 등과 거래 항목으로 삼은 것이다.
이런 거래 동기와 양상을 보건대, 양승태 주도의 재판 거래는 일각의 주장과 달리 3권분립을 유명무실하게 만든 게 아니다. 오히려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의 소위 3권분립 구조를 반영하고 동질적 계급 이해관계를 기반으로 해 사법부의 힘을 키우려는 거래였다.
이는 박근혜와의 유착이 대법원보다 더 심했던 헌법재판소가 박근혜를 탄핵한 것이나, 법원과의 거래 능력을 잃은 박근혜·이명박 등의 구속에 법원이 동의한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명박·박근혜의 청와대와 사법부 고위 판사들 사이에 계급적 이해관계가 동질적이지 않았다면, 이런 식의 재판 거래가 가능했겠는가? 게다가 법원조차 정부를 비판하는 민간인을 사찰했음이 드러났다. 그 기간에 벌어졌던 국가정보원이나 기무사 등의 민간인 사찰과 국정 개입도 같은 원리로 이해할 수 있다.
오히려 사태를 ‘사법부의 독립성’ 문제로 보면, 지금 판사 집단이 자기 보호를 위해 영장 기각 등으로 재판 거래 수사를 방해하고, 김기춘을 풀어 주는 등의 도발적 작태를 보이는 상황을 설명하기가 힘들어진다.
최근 법원의 행태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법원을 현행 자본주의 국가 구조
예컨대, 임명권과 인사청문회, 입법권과 위헌법률심사 같은 상호견제 시스템은
따라서 박근혜와 이명박에 대한 대한 사법부의 태도 변화는 박근혜 정권 퇴진 촛불 운동으로 표출된 개혁 염원을 핵심 요인으로 보지 않으면 설명할 수가 없다.
지배자들끼리 벌이는 공개적 견제와 갈등은 대중이 저항에 나설 자신감을 고무하기도 한다. 그리고 대중의 커다란 압력이 지배자들끼리 벌이는 상호견제 과정을 심각한 분열로 이끌기도 한다. 집권당이 분열해 국회가 압도적으로 박근혜를 탄핵한 것이나, 2017년 초 이재용 등의 구속을 놓고 특검과 법원이 갈등을 빚은 것이 그런 사례다.
그런데, 바로 그런 변화를 강제했던 박근혜 정권 퇴진 촛불 운동에 맞서 군대를 동원한 무력 진압을 시도했던 일이 있었음이 드러났다.
선출되지 않는 권력기관들
두루 알다시피, 6월 말 기무사의 계엄령 검토 문건이 폭로됐다. 기무사는 대통령 탄핵 상황에서 통상적 검토 문건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7월 구체적인 실행 계획
기무사가 세월호 유가족 등 민간인을 사찰했다는 점도 드러났다. 군사독재가 끝난 뒤에도 기무사는 도청·미행·연행 등 민간인 사찰을 이어 왔다. 김대중 정부 때도 도청 등을 했고, 이명박 정부 때는 민주노동당 당원 등을 사찰하다 들킨 적도 있었다.
이는 기무사가 한국전쟁 전후로 악명을 떨친 특무부대, 전두환의 보안사령부 등을 전신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대공 수사권까지 갖고 있는 막강한 기관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기무사는 국방장관에 대한 항명을 불사하며 버티고 있다. 결국 문재인은 기무사 “해편”이라는 신조어까지 동원해 ‘군사안보지원사령부’라고 이름과 내부 구조만 바꾸는 기만적인 개혁을 용인할 태세다. 과거 안전기획부가 이름만 국가정보원으로 바꾸고 거의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것을 떠오르게 한다.
올 3월부터 폭로된 군부의 문건을 보면, 청와대와 기무사뿐 아니라 수도방위사령부
이들은 촛불 초기부터 군대 투입을 고민했으나 12월 초까지 촛불의 규모와 기세가 파죽지세로 성장해 순식간에 국회 탄핵 국면까지 가면서 기회를 못 잡았다. 이후 태극기 집회로 우파가 결집을 유지하고 규모를 키우면서 마지막 모험수를 생각해 본 듯하다.
문건은 어느 쪽이든 헌재의 탄핵 심판에 대한 반발로 치안이 마비될 때를 군대가 나서는 기회로 삼는다고 명시했지만, 실제로는 박근혜 파면으로 치안이 불안해질 개연성이 없었으므로, 사실상 탄핵 기각 시 항거에 나설 퇴진 촛불을 진압할 친위 쿠데타 기획이었던 것이다. 계엄을 당시 여당의 협조로 유지한다는 문건의 계획이 이런 성격을 보여 준다.
군부가 출동을 논의했다는 폭로가 나온 3월에, 본지는 촛불 진압을 위해 군부가 나섰다면 그것은 전격적인 유혈 쿠데타 시도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당시 촛불의 기세가 조성한 세력균형상 국회가 계엄령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고, 대중도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았을 것이므로, 처음부터 계엄 선포와 함께 국회 봉쇄, 방송국
7월에 공개된 계엄 실행
따라서 만약 박근혜와 군부가 오판했다면 5·16의 재판
우파 친박 군부의 쿠데타 모의는 혁명적 수준에 전혀 이르지 못했던 촛불 운동이 군부의 주관적 오판을 계기로 혁명적 수준으로 고양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오늘날 세계적 경제 위기 조건에서 벌어질 대중 저항이 내포한 “혁명의 현실성”을 보여 준다.
또한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군부가 언제든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를 중단시킬 잠재적 위험 세력이라는 것도 오랜만에 보여 준다. 문재인 정부는 기무사 문건이 통상 2년마다 갱신하는 합동참모본부의 계엄실무편람과 다르므로 당시 구체적으로 기획된 문건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군이 늘상 계엄 실행 작전계획을 갖고 있고 주기적으로 갱신한다는 것 자체가 국내 억압 기구로서 군대의 성격을 보여 준다.
그런데 군부는 헌재의 결정과 자신들의 결행 의지를 연동시켜 놓았었다. 결국 헌재는 강력한 저항을 달래어 체제 안정을 이루려고 만장일치로 박근혜를 탄핵해 버렸다. 이런 실제 상황의 경과를 봐도, 군부 등 반동 집단의 음모를 막는 힘은 노동계급의 저항에 내재한 혁명적 잠재력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안착
이런 점에서 대법원 사법 농단 파동을 3권분립의 확립 등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개혁의 관점에서 보는 것의 부적절함도 새삼 확인된다. 법원은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아래서도, 아래로부터 대중이 통제할 수 없는 권력을 쥐고 선출된 좌파 정부를 무시하거나 대중의 절절한 개혁 염원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
개혁과 혁명
양승태의 재판 거래 문건과 기무사의 계엄 모의 문건이 공개된 것은 아마도 우선회를 시작한 문재인 정부가 우파의 위험이 여전함을 환기시켜, 지지층 이탈을 최소화하려는 시도일 개연성이 높다.
아마 법원과 기무사 측 모두 강력하게 몽니를 부리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기득권의 핵심 구조를 건드리지 않아 온 문재인 정부가 불리해지니 이중플레이를 하는 것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그런데 사안 자체가 국가 기강을 흔든 문제로 커지면서, 문재인 정부의 책략이 꼬인 것 같다. 문재인 정부는 자신들이 풀어놓은 체제의 비밀을 감당하기 힘들어 한다.
적폐 구조와 세력을 건드리지 않고 적폐 청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