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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우리도 교사입니다》:
차별의 굴레를 끊으려는 기간제 교사들의 눈물과 용기

서평자인 조수진 교사는 기간제 교사와 영어회화전문강사 같은 비정규직을 거쳐 정규직 교사가 된 전교조 조합원이다.

“정당한 권리 찾기가 일자리를 뺏는 이유가 된다면 우리는 다시 싸워야 합니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맙시다. 폭풍이 지나간 들녘에 핀 한 송이 꽃이 되기를 기다리는 일은 옳지 않다고 어느 시인이 말했습니다. 차별을 없애기 위해 우리가 맞아야 할 폭풍이 있다면 당당히 맞서 폭풍을 이겨내야 꽃을 피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2019년 5월 1일 세계 노동절에 맞춰 따끈한 책이 발행됐다. 《우리도 교사입니다》는 지난 15년간 ‘땜빵 선생’으로 살아온 어느 기간제 교사가 마음으로 써 내려간 편지 같은 책이다. 저자인 전국기간제교사노동조합 위원장 박혜성 교사는 개인 또는 집단으로 투쟁해 온 기간제 교사들의 삶을 씨줄과 날줄로 촘촘히 엮어 감동적인 이야기를 전한다. 기간제 교사가 일상으로 겪는 차별과 불안을 묘사하는 대목에서는 날카로운 시 한 편을 읽는 듯 숨이 멎고, 기간제 교사가 맞닥뜨린 순간들이 울컥울컥 올라온다.

감동적

이 책의 두드러진 매력은 쉬운 설명과 독자의 이해를 돕는 구체적인 통계 자료다. 저자는 기간제 교사 제도가 어떻게 시작됐고, 규모는 어느 정도인지, 정부는 왜 비정규직 교원 제도를 두고 있는지를 쉽게 설명한다. 불안정한 고용부터 성희롱 성폭력 피해 사례까지 차별과 천대의 실태도 구체적으로 드러낸다.

“학생들의 등굣길부터 하굣길에 이르기까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는” 현실. 저자는 옳게도 “기간제교사의 문제는 곧 모든 비정규직의 문제”임을 강조한다. “기간제교사만이 아니라, 비정규직으로, 계약직으로, 알바로 차별과 멸시를 받으며 불안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작은 위로와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저자의 바람이 책 곳곳에 스며 있다.

차별을 정당화하는 정부나 교육청, 학교의 주장을 조목조목 비판하는 ‘사이다’ 논박을 읽을 때는 답답한 속이 뻥뻥 뚫린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운운하면서도 기간제 교사를 정규직 전환 대상에서 배제하고, 기간제노조설립신고서 마저도 반려한 문재인 정부의 모순을 꼬집을 때는 분노의 주먹이 불끈 쥐어진다. 각 장 끝마다 글쓴이가 덤덤히 던져 놓은 질문에 뇌가 톡톡 쏘이는 재미도 쏠쏠하다.

‘땜빵 선생’이라 아파도 아프다고 말하지 못해 몰래 눈물 흘려 온 기간제 선생님들이지만, 저자는 기간제 교사들을 불안 속에서 차별을 당하기만 하는 수동적 존재로 묘사하지 않는다. 전국기간제교사연합회를 만들고, 성과급 차별 소송에 나서고, 세월호 기간제 교사 순직 인정 투쟁에 나서며 능동적인 투쟁의 주체로서 반짝 빛나던 별과 같은 순간도 함께 보여 준다.

1장에는 기간제 교사가 된 저자의 개인적 경험이 담겨 있다. 저자는 온갖 시행착오를 거치며 교사로서 성장하는 과정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직접 쓴 시를 들고 찾아온 학생을 지도하면서 시를 잘 몰랐던 자신을 부끄러워하고, 혼자 점심을 먹는 친구가 걱정돼 돕는 과정에서도 자신의 오류를 깨닫고 학생에게 배운다.

세계 노동절 계기수업을 하다 얼떨결에 스스로 비정규직임을 고백한 날 “선생님, 힘내세요!” 응원해 준 학생들의 이야기가 나오는 대목에서는 눈시울이 절로 붉어진다. 학생들, 동료 교사들과 부대끼며 성장하게 된 저자의 이야기는 ‘현장 교사에게 필요한 것을 임용시험이 평가하지 못한다’는 진실을 드러낸다.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사명감을 갖고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고마운 나의 동료 박혜성 선생님. 저자가 학생들을 통해 깨닫고 배우며 성장했던 순간은 상처로 빚어 낸 진주 빛처럼 아름답다.

ⓒ이미진

2장에서는 기간제 교사로 일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상세히 다룬다. 각 소제목을 읽는 것만으로도 고용 불안, 임금 차별, 쪼개기 계약, 업무 폭탄, 성폭력 등 온갖 차별에 고통받아 온 기간제 교사의 아픔과 설움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방학 월급을 반납하세요’, ‘선생님은 B등급입니다’, ‘기간제교사는 제외’, ‘9일만 아파야한다’, ‘이 업무 하기 싫어? 그럼 그만둬’, ‘희망고문, 내년에는 정규직’, ‘2월이 싫어요’, ‘내 덕에 채용되었잖아’, ‘사실대로 쓰라는데 뭐가 문제야’, ‘나랑 연애하자’.

차별과 고용 불안에 시달리면서도 3.8 여성의 날, 5.1 노동자의 날, 12.10 세계인권의 날 등 중요한 절기마다 계기수업을 하고 교과 내용을 사회문제나 학생들의 실제 삶과 결합시키려고 노력해 온 저자의 이야기는 아찔하면서도 흥미롭다.

일례로, 2013년 민영화에 반대하는 철도 파업 때, 계기수업을 진행한 저자에게 민원이 제기된다. 관리자가 진술서를 쓰라고 압박하고 때는 마침 재계약을 코앞에 둔 상황. “진술서가 정 필요하면 교감선생님이 직접 쓰세요. 그럼 저는 가보겠습니다.” 속으로는 떨렸지만, 당당함을 보여 주기 위해 출구를 향해 씩씩하게 걸어갔다는 후일담에서는 그 통쾌한 맛에 한참동안 배꼽을 잡으면서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미운털이 박히면 재계약이 안 될 수도 있는데 선생님은 어떻게 됐을까?’

통쾌한

3장은 기간제 교사의 차별을 세상에 드러낸 세월호 희생교사 고 김초원, 이지혜 교사의 이야기를 다룬다. 학생들을 살리고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지만 비정규직이라 순직 인정에서 제외되고, 고작 몇천 원밖에 안 하는 사망보험에도 가입돼 있지 않았던 비정규직의 굴레. 살아서 온갖 차별을 받은 기간제 교사가 죽어서도 차별받는 참담한 현실이 뭍으로 떠오른다. 말미에 담긴 고 김초원 교사의 아버지 김성욱 씨의 응원과 ‘직장갑질119’에서 활동하는 윤지영 변호사의 메시지는 기간제 교사들에게 건네는 위로이자 자신감을 불러일으키는 활력소다.

4장에는 기간제 교사의 정규직화를 둘러싼 첨예한 논쟁이 등장한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만들겠다던 문재인 정부가 기간제 교사를 정규직 전환 대상에서 제외시켰던 현실, 비정규직 폐지와 정규직화를 요구해 온 노동조합 활동가들도 이 쟁점에서는 혼란을 겪고 흔들린 문제들을 저자는 찬찬히 되짚는다.

정규직 교사들이 다수 속해 있는 전교조 집행부의 입장이 나오는 대목은 더 나은 삶과 교육을 위해 투쟁하고 연대하는 모든 이들이 곱씹어 볼 만한 지점이다. 저자의 글을 읽다 보면 기간제 교사의 정규직 전환이 비정규직 교사뿐 아니라 정규직 교사들에게도 이롭다는 것, 무엇보다 교육의 질을 높여 학생들을 위한 일이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

마지막 장에 이르면 가수 윤도현 밴드의 어느 노래를 흥얼거리는 자신을 발견할 지도 모른다. “날개를 활짝 펴고 세상을 자유롭게 날거야, 노래하며 춤추는 나는 아름다운 나비~ 워우워어~~~”. 껍질을 깨고 나와 이제 막 날개를 편 기간제 교사들, 혼자라고 생각하며 숨죽이고 있었던 기간제교사들이 함께 뭉쳐서 날갯짓을 할 때 불러일으킬 나비효과를 상상하면 행복한 웃음이 번진다.

기간제 교사로 “매학기 또는 매년 이별을 반복하는 것이 익숙해질 만도 한데 언제나 마음 한 편이 쓰리다”는 저자. 2019년 어느 봄날 저자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건넨 이 편지의 마지막에 다다르면 이 책에 담긴 첫 마디가 울컥울컥, 그럼에도 뚜벅뚜벅 올라온다.

“우리도 교사입니다.”

일상의 차별과 천대를 투쟁으로 승화시킨 진솔한 이야기인 《우리도 교사입니다》는 마땅히 존중받아야 할 기간제 교사들의 빛나는 용기가 우리에게 따듯한 위로를 건넨다.

이 책을 사서 자신이 읽거나 옆자리 동료 교사에게 선물하거나, 책 읽기 모임에서 함께 읽어도 좋다. 학교 도서관에도 신청해 두면 학생, 교사, 직원들도 함께 나눌 수 있다. 학교에서 일하는 교육 노동자가 아니어도 쉽게 이해하며 두루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기간제 교사들의 아름다운 비행을 응원하는 모두에게 일독을 권한다.

“이 책이 마중물이 되어, 학교의 진정한 구성원인 교사 직원 학생이 더 나은 교육과 행복한 학교를 위해 손을 맞잡게 되길 희망해본다.”